교육/고전의 향기 871

그 옛날 SNS

그 옛날 SNS 숙천제아도서(宿踐諸衙圖序) - 한필교(韓弼敎)그림은 사물을 본뜬 것이다. 하늘이 덮어주고 땅이 싣고 있는 것 중 그림으로 그 오묘함을 전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천년 전의 사물과 만리 떨어진 사물을 아직까지 그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으니 생각건대 그림의 도움이 또한 크도다.畵者所以象物也. 天之所覆、地之所載, 莫不以畵傳其妙, 故千載之久、萬里之遠, 尙能有想得其髣髴者, 畵之爲助, 顧亦大矣. 나는 정유년(1837, 헌종3)에 처음으로 벼슬을 하면서 쉬는 날이면 화공에게 예전에 재직했던 관아를 그리고 전도(全圖)의 첩을 장정하라고 명하고서 그 옆에 장소와 맡은 직임을 기록하였는데 한 관아를 옮길 때 마다 다시 그렇게 하였으니, 훗날의 고찰에 대비해서였다. 제수되었으나 사은숙배하지 않은 곳과 나..

겨울의 뒷모습

겨울의 뒷모습  눈 속에서도 꽃은 피고봄이 왔건만 잎은 차네어찌 비춰 볼 등불 없어서랴달빛 속에서 보고 싶어서라네   雪裏花猶發       설리화유발春來葉尙寒       춘래엽상한豈無燈下影       기무등하영宜向月中看       의향월중간 - 이명한(李明漢, 1595~1645), 『백주집(白洲集)』 「화분의 매화를 노래하다[詠盆梅]」  이번 겨울은 심술이 참 대단했다. 올 땐 기척도 없이 찾아오더니 갈 땐 눈치도 없이 무거운 엉덩이를 한참 뭉갰다. 긴 겨울을 보내며 날 풀리면 뭘 해야지 하는 생각이 참 많았는데, 막상 봄이 되니 내가 뭘 하려고 했었지 멍한 상태가 된다. 새봄을 맞이하는 일은 자각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어리석음을 다시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한 것 같다. 남도에서부터 꽃 소식이 들려오니 슬..

고통을 견녀낸 성공

고통을 견녀낸 성공  고통을 참고 견뎌내야 즐거운 시절이 온다. 공부를 조금 하다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  忍辛耐苦, 方有快活時節. 乍做工夫, 不耐辛苦而止者, 難乎有成.인신내고, 방유쾌활시절. 사주공부, 불내신고이지자, 난호유성.  유범휴(柳範休, 1744~1823), 『호곡집(壺谷集)』 권9, 「졸수잡록(拙修雜錄)」   ‘고생 끝에 낙(樂)이 온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도 그렇다.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거야’라는 희망의 메시지로 읽어 왔는데, 인생의 낙을 맞이하려면 그 전에 반드시 고생을 겪어봐야 한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고생을 해봐야 그보다 나아진 상황이 좋은 것임을 절실히 느낄 수 있을 터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고생이라는 것은 장..

이름 모르는 노인의 죽음에 부쳐

이름 모르는 노인의 죽음에 부쳐 지금 이 유 씨 노인은 한 해가 다 가도록 한 걸음도 길에 나다니지 않았지마는그가 한 일은 오로지 세상에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今叟亦終年未甞一步行於路, 而其所業亦惟所以行者也.  금수역종년미상일보행어로, 이기소업역유소이행자야. - 이건창(李建昌, 1852~1898), 『명미당집(明美堂集)』 제19권「유수묘지명(兪叟墓誌銘)」 영재(寧齋) 이건창(李建昌)이 쓴 「유수묘지명(兪叟墓誌銘)」에는 이름도, 출신도 알려지지 않은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이 담담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유 씨는 일찍이 세상을 떠돌다 40대 때부터 영재의 이웃 윤여화의 집에서 30여 년간을 객으로 지냈는데, 일정한 직업이 없어 신을 삼는 것으로 생계를 꾸려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거의 두문불출한 채 조용히 ..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 이익(李瀷)의 《서경질서(書經疾書)》 서문 - 《서경》은 설명하기가 가장 어렵다. 오래된 경문(經文)으로는 《역경》, 《시경》, 《서경》만한 것이 없는데, 《역경》과 《시경》의 글은 모두 문왕(文王)의 시대에 기원하였다. 천 년 뒤에 정씨(鄭氏: 정현(鄭玄))가 《역경》을 주석하고 모씨(毛氏: 모형(毛亨)과 모장(毛萇))가 《시경》을 주석하였는데, 그 언어와 문장은 고금이 매우 달라 소리 값이 같다고 하여 바꿔 읽기도 하고 글자가 잘못되었는데 알지 못하기도 하였다. 그리도 또 천 년 뒤 송(宋)나라 학자들의 경우에는 한(漢)나라의 문자도 간혹 이해하지 못하였으니 더욱이 경문의 본뜻에 바로 부합하기를 어찌 바랄 수 있겠는가. 《서경》은 요순(堯舜) 시대에 기원..

봄날 북한산에 오르며

봄날 북한산에 오르며 객지의 회포는 늘 언짢은데세상일은 분분하여 끝이 없네봄빛이 관부로 들어오건만공문서는 높이 쌓여 있네어찌 울적하게 오래 머무랴가서 남쪽 물가에서 노닐리라아우들 나의 안색을 알고서나에게 산행하자 권하누나   客懷常不愜        객회상불협世故紛未已        세고분미이三春入官府        삼춘입관부簿書來相委        부서래상위安能欝久稽        안능울구계去將遊南汜        거장유남사羣弟知我色        군제지아색勸我山行李        권아산행리 - 임상덕(林象德, 1683~1719) 『노촌집(老村集)』 권1 「삼각산(三角山)」 요즘은 평일이고 주말이고 할 것 없이 북한산 주변에는 등산객이 넘쳐난다. 울긋불긋 단풍이 든 가을 산이 사람들을 유혹하여 산을 싫어하는 사람도 ..

팔꿈치의 시간

팔꿈치의 시간  팔꿈치가 이 책상을 떠나지 않도록 공들이며 여러 해를 보냈다.엄격한 선생님을 마주하듯이 온종일 공경하고 두려워한다.  肘不離此, 功以歲計. 如對嚴師, 終日敬畏.주불리차, 공이세계. 여대엄사, 종일경외. 강정일당(姜靜一堂, 1772~1832), 『정일당유고(靜一堂遺稿)』, 「책상에 새긴 글[案銘]」 시간은 만져지지 않는 채로 흘러가지만, 시간을 뚫고 살아낸 사람의 몸에는 흔적이 남는다. 예컨대 주름과 주근깨, 흉터와 굳은살 같은 것들. 몸 어딘가에 새겨진 짙은 얼룩은 그 사람이 어떤 사물과 얼마나 오랫동안 마찰하며 살아왔는지 세월을 가늠하게 한다. 살갗이 갈색빛으로 물든, 직선의 자국들이 이리저리 교차해 남아 있는 어떤 이의 팔꿈치를 바라본다. 책상 모서리에 팔꿈치를 대고 오랫동안 앉아 있..

평이하여 난해한 전아(典雅)의 경지

평히하여 난해한 전아(典雅)의 경지- 죽남 오준의 글씨를 보다 동고(東皐) 선생의 서릉시필록(西陵試筆錄)을 읽고 감회가 일어 짓다 동고 선생 나 데리고 서원(西園)에서 강학하며문단의 온갖 시끄러운 새소리 씻어 내라 하실 제몇 번이고 거친 말로 종이*를 망쳤어도잘 헤아려 아름답게 다듬어 주시곤 하였지너른 바다 엿볼 수 없는 좁은 소견 안타까워근본을 닦아 자기 터전 마련해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으나머리가 세어서도 실수가 많은 이 제자*는선생께 의지하며 책에 써주신 말씀만 되뇔 뿐이네 나는 을사년(1605, 선조38, 오준 19세)부터 동고 선생(최립崔岦) 문하에 유학하며 한유(韓愈)의 문장과 두보의 시를 배웠는데, 선생은 나를 비루하게 여기지 않고 퍽 열심히 이끌고 격려해 주셨다. 나를 위해 《권학서(勸學序)..

목표를 향해 갈 때

목표를 향해 갈 때  깎아지른 절벽에서 우뚝한 소나무 굽어보고서다시금 돌층계 밟으며 마른 지팡이 짚는다네도리어 우스워라! 와 노는 사람의 조급한 마음 한 번 와서는 가장 높은 봉우리 오르려 하네   已臨絶壑俯長松       이림절학부장송更踏層梯策瘦筇       갱답층제책수공還笑遊人心太躁       환소유인심태조一來欲上最高峯       일래욕상최고봉  - 진화(陳澕, ?~?), 『매호유고(梅湖遺稿)』,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던 고려가요 을 보면, “니정언 딘한림 솽운주필”이란 대목이 나온다. 정언 이규보(李奎報, 1168~1241)와 한림 진화(陳澕, ?~?), 이 둘이 운자를 부르는 대로 붓을 휘날려 시를 짓는다는 뜻이다. 당대 제일의 문호(文豪)였던 이규보와 함께 일컬어질 정도라면, 진화 이 ..

말을 하지 않는 이유

말을 하지 않는 이유 대각(臺閣)은 임금의 눈과 귀이니 침묵하는 습성을 경계해야 합니다.  臺閣, 人主之耳目, 而緘默之習, 可戒也.대각, 인주지이목, 이함묵지습, 가계야.  조현명(趙顯命 1691~1752), 『귀록집(歸鹿集)』 권6, 「사직응지소(辭職應旨䟽)」   ‘대각(臺閣)’은 사헌부와 사간원을 가리킨다. 두 관서는 임금에게 간언(諫言)하여 임금이나 신료, 정책의 잘못을 바로잡거나 나아갈 방향을 조언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이 제대로 활동하지 않으면 마치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임금은 나라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반대로 이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나라는 잘 다스려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