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르는 노인의 죽음에 부쳐
지금 이 유 씨 노인은 한 해가 다 가도록 한 걸음도 길에 나다니지 않았지마는
그가 한 일은 오로지 세상에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今叟亦終年未甞一步行於路, 而其所業亦惟所以行者也.
금수역종년미상일보행어로, 이기소업역유소이행자야.
- 이건창(李建昌, 1852~1898), 『명미당집(明美堂集)』 제19권「유수묘지명(兪叟墓誌銘)」
영재(寧齋) 이건창(李建昌)이 쓴 「유수묘지명(兪叟墓誌銘)」에는 이름도, 출신도 알려지지 않은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이 담담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유 씨는 일찍이 세상을 떠돌다 40대 때부터 영재의 이웃 윤여화의 집에서 30여 년간을 객으로 지냈는데, 일정한 직업이 없어 신을 삼는 것으로 생계를 꾸려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거의 두문불출한 채 조용히 살아갔던 탓에 영재는 그가 70대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끝내 얼굴조차 알지 못하였다고 적고 있다.
노인의 삶은 읽는 이에게 많은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그에게는 찾아오는 가족도, 친구도 없었지만 이따금 동네 사람들이 그에게 들러 한두 켤레씩 신을 받아 가곤 했던 모양이다. 어떤 이들은 신을 가져간 이후에도 오래도록 값을 치르지 않았음에도 순박하고 좀처럼 말이 없던 유 씨는 굳이 그들을 찾아가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평소 자신이 삼은 신을 직접 팔지 않고 그가 기거하는 집 주인이 처분하도록 맡겨 두었기에 윤여화가 신을 팔아 쌀을 장만하면 끼니를 잇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여러 날을 그저 굶으며 지내야 했다.
영재는 ‘내가 일찍이 슬퍼한 것은, 옛날 성현은 종신토록 한 가지 일도 세상에 행하지 못하였지마는 그들의 학업은 다 세상에 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쓰며 세상의 인정과 부름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성현들의 삶과 유 씨 노인의 삶을 쓸쓸한 심정으로 떠올리고 있다. 이웃의 범부와 성현을 나란히 놓고 서술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의문을 가질 이도 있겠으나, 이는 그만큼 유 씨 노인의 삶이 지닌 가치의 무게를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는 뜻일 게다. 영재는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자신의 뚜렷한 세계를 구축하고 담담히 한 세상을 살아갔던 이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그는 연고 없이 세상을 떠난 유 씨 노인이 묻힐 땅을 내어주고 손수 붓을 들어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기렸다. 생전에 입신하여 이름을 드날리는 길을 걷지 않았을지라도 성현이 고요히 갈고 닦은 학업이 후세에 전해져 결국 세상에 행해지듯이, 유 씨 노인은 세상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신만 삼다가 세상을 떠났으나 나름의 방식으로 이웃들의 곤고한 삶에 작은 도움을 보태었다.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하는 조그마한 풀꽃일지라도, 하늘만은 언제나 그를 바라보아주고 바람만은 그를 쉼 없이 보듬고 흔들어 키워준다. 삶은 누군가가 알아줄 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음 그 자체로서 아름다움과 절대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조선 시대의 한 선비는 이름 모를 풀꽃처럼 살다 간 이웃 촌로의 삶에 애정 어린 눈길을 주었고, 그것을 몇 줄의 글로 기록하였다. 그 몇 줄이 남기는 뭉클함이 문득 다시금 내 주변 이웃들의 삶에 대한 경외심을 일깨운다.
글쓴이 : 구설영
'한국고전종합DB' 활용 공모전 고전명구 부문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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