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봄날 북한산에 오르며

백광욱 2025. 2. 14. 19:28

 

봄날 북한산에 오르며

객지의 회포는 늘 언짢은데
세상일은 분분하여 끝이 없네
봄빛이 관부로 들어오건만
공문서는 높이 쌓여 있네
어찌 울적하게 오래 머무랴
가서 남쪽 물가에서 노닐리라
아우들 나의 안색을 알고서
나에게 산행하자 권하누나

 

客懷常不愜        객회상불협
世故紛未已        세고분미이
三春入官府        삼춘입관부
簿書來相委        부서래상위
安能欝久稽        안능울구계
去將遊南汜        거장유남사
羣弟知我色        군제지아색
勸我山行李        권아산행리

- 임상덕(林象德, 1683~1719) 『노촌집(老村集)』 권1 「삼각산(三角山)」

 

요즘은 평일이고 주말이고 할 것 없이 북한산 주변에는 등산객이 넘쳐난다. 울긋불긋 단풍이 든 가을 산이 사람들을 유혹하여 산을 싫어하는 사람도 한 번쯤은 가을 산에 오르지만, 이른 봄의 산도 제법 경치가 좋다. 겨우내 숨어 있던 싹이 제 몸을 짓누르던 무거운 추위를 밀어내고 하나둘씩 세상에 나와 봄 내음을 풍기고, 높고 그늘진 곳엔 아직도 잔설이 남아 있어 겨울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에게 겨울 풍경을 선사한다.

  이 시는 노촌(老村) 임상덕(林象德, 1683~1719)이 1707년(숙종33) 봄날 사헌부 지평 재직 중에 쓴 시의 첫 부분이다. 이보다 2년 전인 23세 때, 비교적 이른 나이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임상덕은 전적, 겸설서 등을 거쳐 지평에 제수되기까지 청요직(淸要職)의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객지 생활에 싫증이 나고 공문서가 쌓여 우울하였다. 이런 그의 답답한 심정을 어떻게 알았는지 아우들이 삼각산(三角山 지금의 북한산)에 오르자고 권한다. 시인은 객지에서의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고, 마침 따뜻한 봄도 찾아와서 아우들의 의견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이렇게 해서 이들의 북한산 산행이 시작된다.

  이 글은 산행 일기나 기행문이 아니어서 지명이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다. 그래서 정확한 등산 경로는 알기 어렵지만, 시의 내용을 바탕으로 짐작해보면 다음과 같다.
 
구기탐방지원센터→구기계곡→승가사→비봉능선→문수사→태고사(숙박)→중흥동 근처 유람→북한산계곡→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북한산에 오르는 길은 다양한데, 시인은 ‘도성 동쪽 칠팔 리는, 계곡이 무척이나 맑고 아름답네.[城東七八里, 溪壑頗淸美]’라고 등산 초입을 설명하였다. 뒤의 내용을 통해 짐작하면 구기동 구기계곡을 말하는 듯하다. 이후 승가사 쪽으로 방향을 틀었던 것 같다. ‘이제야 숲속 절인 줄 분별하겠네.[始辨林間寺.]’라는 구절이 이를 말해 준다. 절 근처에서 산나물에 점심을 먹은 뒤, 두어 명의 승려를 불러 문수사(文殊寺)로 향한다. 아마도 비봉능선을 타고 갔으리라.

  문수사는 북한산 내 사찰 중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답다고 소문난 곳이다. 시인은 문수사에 올라 ‘활짝 트인 동천이 있는데, 만고토록 하늘 무너지지 않았네.[呀然一洞天, 萬古穹不圮.]’라고 하고, ‘조물주의 공로는 참으로 위대하고, 부처의 힘 또한 크구나.[化功諒偉哉, 佛力亦荒矣.]’라고 하며, 신이 만든 듯한 주변 경치와 사찰의 풍경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문수사에서 잠시 쉬었다가, 저녁에 원증국사(圓證國師) 보우(普愚)가 창건했다는 태고사(太古寺)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에서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지은 「원증국사탑비(圓證國師塔碑)」를 보고 굳이 이교(異敎 불교)를 기록할 것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철저한 유학자의 인식이다. 이곳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밝은 달을 보며[惠好明月値]’ 술을 가득 따라 일행과 마음을 나누며 하룻밤을 묵는다.

  이튿날 멀리서 북한산의 주봉(主峯) 백운대를 보고 한참을 감상하면서, 이곳이 제왕(帝王)의 거처가 되고도 남을 만큼 위용이 대단하다고 느낀다. 아마도 커다란 바위로 이루어지고 까마득히 높은 데다, 인수봉과 만경대가 곁에서 보좌하고 있어서였으리라. 시인 일행은 백운대에 오르지 않고 태고사와 중흥사(中興寺)가 있는 중흥동 근처에서 노닌다. 아마도 ‘희미하게 햇빛이 머물러 있고, 옅게 봄기운이 숨어 있는[矓矓日光逗, 瑣瑣春氣閟.]’ 곳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북한산계곡을 따라 내려오며 고려 충렬왕 때 문신 민지(閔漬, 1248~1326)가 소요하였다는 ‘민지암(閔漬巖)’이라는 바위에 앉아서 그가 조용히 책을 읽던 모습을 상상하고, 고려 우왕 때 왜구에 대한 방비책으로 최영(崔瑩) 장군이 수축하였다는 중흥산성에서 그 옛날 땀을 흘리며 산성을 쌓던 모습을 그려 본다. 유적은 남아 있지만 옛사람은 가고 없어, 시인은 인간 세상이 변한 데 대한 비애를 느끼는데, 따라간 아우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마냥 즐거워할 뿐이라고 끝을 맺는다.

  길고 길었던 겨울도 어느덧 지나가고 이제 봄이 찾아왔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따뜻한 봄기운과 함께 조금씩 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럴 땐 시인처럼 좋아하는 사람과 가까운 산을 찾아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을 몸소 느끼는 것도 좋을 듯싶다. 아직 겨울옷을 벗지 못한 나무들 사이로 봄이 온 줄 알고 저만치 피어 있는 이름 모를 들꽃을 찾는다거나, 얼음 사이로 졸졸 흐르는 계곡물과 그 위에 매달린 고드름을 찾는다면, 일찍 찾아온 봄과 아직 떠나지 못한 겨울이 공존하는 자연의 신비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높은 곳에 올라서 봄을 맞아 분주하게 봄 일을 준비하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내려다보면, 지루했던 일상에 조금이나마 활력이 생기지 않을까?

 

 

 글쓴이   :  최이호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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