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871

안전하게 취하는 방법

안전하게 취하는 방법   기쁠 땐 술 마시지 말아야 하니너무 즐거우면 실수가 많아지네걱정스러울 땐 술 마시지 말아야 하니취하고 나면 깊은 근심이 되네아무 일 없는 때라야술 마시기 좋으니마음이 편안한 뒤에술도 오래 즐길 수 있네시원한 바람 북쪽 창에서 불어오고밝은 달은 남쪽 창으로 슬며시 비추네한가로운 흥취에 은자는 고무되어술독 열어 새로 빚은 술 담아 오네술잔 들어 홀로 마시니어찌 친구가 꼭 필요하랴얼근하게 기분 좋으면 그만이니몇 잔을 마시는지는 따질 것 없네피부는 술 때문에 매끈해지고마음은 술 때문에 너그러워지네질박하게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여유롭게 제 수명대로 살아야지쩨쩨한 선비들 자질구레한 규범에 구애되어침 흘리면서도 구미 당기지 않는 척하고방탕한 자들 끝내 술독에 빠져머리끝까지 흠뻑 취한 저 모습..

나의 상처 보듯 너를 본다

나의 상처 보듯 너를 본다 천심을 닮아 이 인(仁)을 본성으로 간직하니몸에 가득한 것은 모두 살리기를 좋아하는 봄뜻이라오벽에 써 붙인 여상의 글자 보기 부끄러우니서(恕)를 미루어 나가려면 우선 차마 못하는 마음 가져야지 克肖天心性此仁 滿腔都是好生春 壁間愧視如傷字 推恕須從不忍人극초천심성차인 만강도시호생춘 벽간괴시여상자 추서수종불인인- 성혼(成渾, 1535년∼1598년) 『우계집』 우계선생속집권지일(牛溪先生續集卷之一)「이몽응에게 주다〔贈李夢應〕」  녹록하지 않은 세상살이에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해사한 표정과 목소리라는 사회적 가면을 쓰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거나 차마 남에게 밝힐 수 없는 상흔이 있다. 지난여름, 마구 찢기어 상처투성이었던 마음으로‘삶은 종잇장 같은 것’이라..

병인양요를 되돌아보며

병인양요를 되돌아보며 융서촬요서(戎書撮要序)  《주역(周易)》 췌괘(萃卦)의 상전(象傳)에 “군자가 이를 통하여 뜻밖의 사태에 경계한다.”라고 하였고 기제괘(旣濟卦)의 상전(象傳)에 “근심을 생각하여 미리 방비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학산(鶴山) 위료옹(魏了翁, 1178~1237)*이 “내가 어려서 《주역(周易)》 을 읽었는데, ‘문을 겹으로 설치하고 목탁을 치며 밤에 순찰을 하여 도적에 대비한다.’와 ‘좋은 활과 화살로 천하에 위엄을 보인다.’라는 구절을 보고, ‘분위기가 이미 조성되어 민심이 쉽게 동요하니, 황제(皇帝)와 요순(堯舜)일지라도 일에 앞서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이 있구나.’라고 매번 탄식하였다.”**라고 한 적이 있으니, 이것이 무비(武備)를 창제(創制)한 이유이다. 말세에 내려..

지도자 되기

지도자 되기  그대는 보지 못했나영험한 시초의 온 줄기가 환히 빛나고 그 아래 있는 신령한 거북이 미래를 알았던 것을 그대는 보지 못했나 달은 보름이면 둥글게 가득 차지만가득 찬 뒤 이지러지는 게 바로 보름 다음 날인걸 신라와 백제가 흥하고 망한다는 글자 분명한데 어리석은 사람 상서요 재앙 아니라고 거꾸로 풀어 상서요 재앙 아니라고 근심 도리어 기뻐하다가 백마강 나루 어귀의 낙화를 재촉하였지. 君不見                    군불견 靈蓍百莖光燁燁         영시백경광엽엽 下有神龜逆知來         하유신귀역지래 君不見                    군불견 金精十五輪正滿         금정십오륜정만 物極將虧生魄哉         물극장휴생백재 分明羅濟興亡字         분명라제흥망자 癡人..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사람의 근심은 남을 모르는 데 있지 않고 자신을 모르는 데 있다.오직 자신을 알지 못하므로 남이 칭찬하면 기뻐하고 남이 헐뜯으면 슬퍼한다. 人之患, 不在於不知人, 而在於不知己. 惟其不知己, 故人譽之而以爲喜, 人毁之而以爲慽.인지환, 부재어부지인, 이재어부지기. 유기부지기, 고인훼지이이위희, 인훼지이이위척. 이천보(李天輔, 1698∼1761), 『진암집(晉菴集)』권6, 「자지암기(自知菴記)」  이천보(李天輔)는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 1564∼1635)의 후손으로 조선 영조 때의 문신이다. 그는 황해도 관찰사, 부제학, 대사성, 예문관제학, 병조 판서, 영의정 등을 지냈으며, 노론과 소론의 격렬한 대립 속에서 사도세자(思悼世子)와의 의리를 지킨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남유용(南有容),..

정조의 마지막 금속활자, 정리자(整理字)

정조의 마지막 금속활자, 정리자(整理字)  지금의 생생자와 정리자는 모양이 고르고 반듯하며 나무로 새기거나 금속으로 주조한 것이 정교하여 이전의 위부인자나 한구자와 비교할 때 종이를 물에 축여서 활자 면에 밀착시켜야 하는 불편함과 글자가 비뚤거나 흔들리게 인쇄될 염려가 없다. 인쇄가 간편하고 빠르며 비용과 인력을 줄일 수 있어 그 효율이 중국의 취진판식(聚珍板式)보다 더 나은 편이니, 실로 책을 간행한 이래로 보지 못한 새로운 비법들이 여기에 다 모여 있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그것은 글자체가 너무 모나서 부드러운 느낌이 없다는 점이다.   今之生生字整理字, 均齊方正, 刻鑄精工, 視衛夫人韓構諸字, 無濕紙墊排攲斜挑動之患. 擺印𥳑捿, 省費省勞, 比之中國聚珍之式, 反復勝之, 誠刊書以來不發之祕, 悉萃于玆, ..

나라가 망해가는 한(恨)도 모르고

나라가 망해가는 한(恨)도 모르고「함지(咸池)」와 「육영(六英)」, 「소(韶)」와 「호(濩)」의 소리를 모두가 기리는 까닭은그때의 세상이 도타웠기 때문이지 음악이 공을 세워서가 아니며,「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와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을 모두가 미워하는 까닭은그때의 임금이 방탕했기 때문이지 음악이 죄를 지어서가 아니다.  咸英韶濩之音, 人皆贊之者, 時世雍和也, 非樂之功,玉樹後庭花ㆍ霓裳羽衣曲, 人皆惡之者, 時君放蕩也, 非樂之罪也.함영소호지음, 인개찬지자, 시세옹화야, 비악지공,옥수후정화ㆍ예상우의곡, 인개오지자, 시군방탕야, 비악지죄야. 성현(成俔, 1439~1504), 『허백당집(虛白堂集)』 제7권 서(序) 「악학궤범서(樂學軌範序)」 에드워드 양(Edward Yang, 楊德昌, 1947~2007) 감독..

중요한 것은 꺾여도 계속하는 마음

중요한 것은 꺾여도 계속하는 마음 배우는 자가 걱정할 바는 오직 뜻을 세우는 것이 성실치 못한 데 있는 것으로,재주가 혹 부족한 것은 걱정할 바가 아니다. 學者所患惟在立志不誠 才或不足非所患也학자소환유재입지불성 재혹부족비소환야 - 김성일 (金誠一, 1538~1593), 『학봉집(鶴峯集)』「학봉선생문집부록(鶴峯先生文集附錄)」 권2 〈행장(行狀) 인터넷과 SNS 사용이 활발해지면서 우리는 일상에서 누군가의 성공담을 너무나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세대에 접어들었다. 어디를 보아도 온통 성공, 성공뿐이다. 그러나 만연해진 성공보다도 더 흔해진 것은 자포자기다. 사람들은 도통 무언가를 쉽사리 해 보려 하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들과 자신은 아예 다른 부류라고 섣불리 못박아놓는다.   이는 SNS 속에서 목격되는 성공의..

선현의 공간을 기리는 단아한 존경

선현의 공간을 기리는 단아한 존경- 곡운 김수증의 포천 옥병동 예서(隸書) 석각〈이양정 벽에 쓰다[題二養亭壁]〉 〈이양정 벽에 쓰다〉 이따금 산새 소리 짤막히 들려오고적막한 책상엔 책들만 여기저기볼 때마다 딱하도다, 백학대 앞 맑은 물이이 산 벗어나자 흙탕물 되는 것이 題二養亭壁제이양정벽 谷鳥時時聞一箇      곡조시시문일개匡牀𡧤*𡧤散羣書     광상적적산군서每憐白鶴臺前水      매련백학대전수纔出山門便帶淤      재출산문변대어 *𡧤(적): 고요할 寂(적)의 이체자. 𡧘으로도 씀 - 박순(朴淳, 1523~1589), 『사암집(思菴集)』 권2 칠언절구(七言絶句), 〈제이양정벽(題二養亭壁)〉 사암(思菴) 박순(朴淳, 1523~1589)의 칠언절구 〈이양정 벽에 쓰다〉이다. 이양정(二養亭)은 그가 말..

밤을 수확하며 드는 생각

밤을 수확하며 드는 생각  팔월이라 서리 내리려 할 제동산의 밤이 비로소 벌어졌네어제는 반쯤 푸르던 것이오늘은 벌써 다 누레졌구나산바람이 한 번 살짝 불자주운 밤이 바구니에 한가득종에게 나무 위로 올라가 따게 했더니잽싸게 긴 장대를 휘두르네공중에서 밤톨이 비 오듯 떨어져떼굴떼굴 굴러 땅에 가득 빛나네언덕 미끄러워 쉬이 굴러가고풀 무성하여 잘도 숨누나크고 작은 것 쓰임 구별하여한데 모았다가 따로 담아서안 좋은 것은 안주로 삼고좋은 것은 제사에 올린다네일일이 동복에게 타이르네쉬지 말고 부지런히 수확하라고  八月霜欲降        팔월상욕강園栗初坼房        원율초탁방昨日半靑者        작일반청자今日已全黃        금일이전황山風一微過        산풍일미과動手拾盈筐        동수습영광課奴上樹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