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1374

부처와 거지

부처와 거지 걸인이 부처요, 부처가 걸인이니 처지를 바꾸어 공평히 보면 모두가 한 몸이라. 불상 아래 뜰 앞에서 사람들은 떠받드는데 걸인과 부처 중에 누가 진짜인 줄 알리오? 乞人如佛佛如人 걸인여불불여인 易地均看是一身 역지균간시일신 佛下庭前人上揭 불하정전인상게 乞人尊佛辨誰眞 걸인존불변수진 - 권섭(權燮, 1671~1759), 『옥소고(玉所稿) • 시(詩)』 13 「거지라고 업신여기지 말라[乞人不可慢視]」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우리 사회는 안 그래도 심해지던 양극화 현상이 더욱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2020년 8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임금노동자 11만 3천 명이 줄었다고 합니다. 특히 고용 안정성이 취약한 비정규직, 그 가운데서도 한시..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가는 사람이라도 붙들고 물어야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가는 사람이라도 붙들고 물어야 학문의 길은 다른 길이 없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가는 사람이라도 붙들고 물어야 한다. 學問之道無他. 有不識, 執塗之人而問之, 可也. 학문지도무타, 유불식, 집도지인이문지, 가야. -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연암집(燕巖集)』권7 별집 「북학의서(北學議序)」 1781년(정조5)에 연암 박지원은 초정 박제가의 『북학의』에 서문을 써 주면서 그 첫마디를 이렇게 시작했다. 박제가는 1778년 이덕무와 함께 중국을 다녀왔다. 『북학의』는 그 견문의 기록이다. 박제가의 중국 전략보고서인 셈이다. 박지원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780년에 중국을 다녀왔다. 그의 『열하일기』는 이후 대표적인 연행록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두 사람은 중국..

스타벅스 커피 이름과 로고

스타벅스 커피 이름과 로고 한국인들도 즐겨 마시는 커피체인 스타벅스(starbucks)의 상호가 미국의 소설가 허먼 멜빌의 장편소설 모비딕(白鯨)에 나오는 1등 항해사 '스타벅'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일등 항해사 스타벅은《모비딕》에서 가장 이상적이고 차분한 인물입니다. 아마도 스타벅스 창업자 하워드 슐츠가 '스타벅스' 로 상호를 지은 것은 커피 한 잔이 주는 차분함을 상징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미국인들이 성경 다음으로 좋아하는 책이 허먼 멜빌의 소설《Moby Dick》이라 합니다. 국내에서는 "백경" 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던 이 작품은 미국 상징주의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힙니다. 일단 줄거리부터 살펴보면, 이 소설은 삶에 염증을 느끼고, 신비스러운 고래를 만나기 위..

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

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 내가 풍악산에 유람 갔을 때이다. 하루는 혼자 깊은 골짜기로 몇 리쯤 걸어 들어가다가 작은 암자 하나를 만났는데, 가사를 입은 노승이 반듯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내가 말했다. “불가의 묘처는 유가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왜 굳이 유가를 버리고 불가에서 찾으십니까?” “유가에도 마음이 부처라는 말이 있습니까?” “맹자가 성선을 논할 때 반드시 요순을 말씀하셨지요. 이것이 ‘마음이 부처’라는 말과 무어 다르겠소. 다만 우리 유가의 이치가 현실적일 뿐이오.” 노승이 수긍하지 않고 한참 있다가 말하였다. “비색비공(非色非空)은 무슨 말이오?” “이 또한 지나간 경계입니다.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뛴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것은 색입니까. ..

다 때가 있는 법

다 때가 있는 법 모든 생물의 생장은 다 때가 있다. 앞서 빨리 된다고 어찌 기뻐하며 뒤져 더디 된들 어찌 원망하랴. 凡物早晩 各有其時 其先而速也奚喜焉 其後而遲也奚怨焉 범물조만 각유기시 기선이속야해희언 기후이지야해원언 - 하수일(河受一, 1553〜1612), 『송정집(松亭集)』3권 「초당삼경설(草堂三逕說)」 하수일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태이(太易), 호는 송정(松亭)이다. 과거에 급제하여 영산 현감(靈山縣監), 호조 정랑(戶曹正郎) 등을 역임하였지만 크게 현달하지는 못하였다. 문장은 의리(義理)에 근거하여 전아(典雅)하고 조리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용문의 출처는 「초당삼경설」이다. 음력 2월에 초당을 지은 하수일은 국화와 해바라기를 심었다. 상추는 그보다 늦은 3월 초에 심었는데, 채 20일이..

여름

여름 사람 사는 땅을 멀리 벗어난 듯하니 시냇물이 콸콸 쏟아지는 때로다 향기로운 석류꽃 내음은 늦모종을 재촉하고 똑똑 오동나무 물방울은 새 시를 적시누나 이어진 장마에 소와 양은 늘어져 있고 궁벽한 시골 마을에 열매는 더디 익는다 맑게 갠 한낮의 한바탕 꿈 남들은 참말로 몰라야지 㢠似離人境 형사리인경 溪聲最壯時 계성최장시 榴薰催晩稼 류훈최만가 桐溜滴新詩 동류적신시 積雨牛羊倦 적우우양권 窮村蓏果遲 궁촌라과지 一回淸晝夢 일회청주몽 端不許人知 단불허인지 - 황현(黃玹, 1855~1910), 『매천집(梅泉集)』 제1권 「갠 여름날[夏晴]」 참 많이 예민한 시절이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보건위기에 더해 날은 또 무덥고 습하다. 무리와 어울려 운치 있게 탁족하는 맛도 시원한 휴양지의 여유도 언제 일인지 모르겠..

나의 이름은 (4)

나의 이름은 (4) 아, 흥하고 망하는 것은 운수이고 만나고 만나지 못하는 것은 행운이 작용한다. 어찌 사람만 그렇겠는가. 산천과 누정이라도 역시 그렇다. 예전의 황폐한 구릉과 끊긴 언덕이 지금 화려한 건물로 변하여 빼어난 사람들과 글 짓는 이들이 머무는 곳이 되었으니, 운수가 그 사이에 없었던 적이 없다. 그러나 이 누정이 나를 통해 이름을 얻은 것은 만났다고 할 수 없고 나의 시가 또 정채를 발휘하지 못하였으니, 어찌 이 누정의 불행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나의 이번 일을 계기로 함께 영원토록 남을 것이니, 만났다고 하지 않을 수 없고 또한 행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나의 조악한 시가 부질없이 장독을 덮을 만하다 한들 또 무슨 문제이겠는가. 噫, 興廢, 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