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와 거지
걸인이 부처요, 부처가 걸인이니
처지를 바꾸어 공평히 보면 모두가 한 몸이라.
불상 아래 뜰 앞에서 사람들은 떠받드는데
걸인과 부처 중에 누가 진짜인 줄 알리오?
乞人如佛佛如人 걸인여불불여인
易地均看是一身 역지균간시일신
佛下庭前人上揭 불하정전인상게
乞人尊佛辨誰眞 걸인존불변수진
- 권섭(權燮, 1671~1759), 『옥소고(玉所稿) • 시(詩)』 13 「거지라고 업신여기지 말라[乞人不可慢視]」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우리 사회는 안 그래도 심해지던 양극화 현상이 더욱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2020년 8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임금노동자 11만 3천 명이 줄었다고 합니다. 특히 고용 안정성이 취약한 비정규직, 그 가운데서도 한시적 노동자의 피해가 커서 한시적 노동자는 17만 7천 명이나 줄었다고 합니다. 임금 격차도 확대되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는 152만 3천 원으로 통계를 낸 이래 가장 큰 차이를 보였다고 합니다. 재난은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입증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앞세우며 사회적 약자의 피해에 눈을 감을 것인가? 아니면 사회 전체가 함께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 파이를 나누는 지혜를 모을 것인가? 코로나 상황이 나빠질수록 처지가 악화되는 소외계층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걸까요? 이와 관련하여 옥소(玉所) 권섭(權燮)의 「거지라고 업신여기지 말라(乞人不可慢視)」는 작품은 소외된 이들에 대한 우리의 생각, 공존과 공생에 관한 우리의 태도를 다시 한 번 점검하게 합니다.
이 작품을 쓴 권섭(權燮, 1671~1759)은 본관이 안동이고, 자가 조원(調元)입니다. 호는 옥소(玉所) · 백취옹(百趣翁) · 무명옹(無名翁) · 천남거사(泉南居士) 등을 썼습니다. 우암 송시열(宋時烈)의 수제자였던 권상하(權尙夏)의 조카로, 19세 되던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 때는 소두[疏頭 : 연명(連名)하여 올린 상소문에서 맨 먼저 이름을 적은 사람]가 되어 상소를 올리는 등 한때 시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으나, 송시열을 위시한 주변 인물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유배되는 참극을 겪은 뒤에는, 일체의 벼슬을 마다하고 전국 방방곡곡 명승지를 유람하면서 보고 겪은 바를 창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조선후기 한시 쇄신을 이끈 백악시단의 일원으로 3,000여 수의 한시는 물론, 75수나 되는 시조와 2편의 가사 작품도 지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주제, 소재, 시어, 기법 면에서 대단히 참신하고 파격적인 면모를 보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작품은 일곱 자, 네 줄로 이루어진 칠언절구입니다. 첫 번째 구에서 시인은 ‘걸인여불불여인(乞人如佛佛如人)’ 곧 걸인이 부처와 같고 부처가 걸인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시인은 작심하고 시의 첫머리에 파격적인 언명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이어 처지를 바꾸어[역지(易地)] 고르게 보면[균간(均看)] 부처나 걸인이나 한 몸[시일신(是一身)]이라고 합니다. 시인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작가는 걸인의 구걸을 부처의 탁발과 겹쳐서 사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탁발은 부처가 세상에 있을 당시, 불법의 구현을 위해, 깨달음의 실천을 위해, 그리고 사회적 관계에의 참여와 중생제도를 위해 행했던 수행의 한 가지입니다. 그런데 후대에 이 탁발은 구걸의 의미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구걸을 뜻하는 말로 흔히 사용하는 ‘동냥’이 실은 탁발을 위해 스님이 ‘방울을 흔들다’, 즉 ‘동령(動鈴)’ 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이러한 면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작가는 이런 생각 위에서 부처님도 탁발에 의지하여 일상생활을 했고, 걸인도 구걸에 의지하여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으니 서로가 같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시인과는 사뭇 다릅니다. 시적 정황은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부처가 모셔진 전각의 뜰 앞에서 연신 절을 올리며 부처를 떠받듭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부처에게 복을 빌러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구걸을 하는 걸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부처에게 절을 올리며 자기 복만 구할 뿐, 정작 한 줌의 쌀과 한 푼의 돈이 귀한 걸인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시인의 눈에는 이 모습이 부조리한 것으로 비칩니다. 그래서 시인은 마지막 구에서 뼈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걸인과 존귀한 부처 가운데 누가 과연 진짜일까?’ 하고 말입니다. 시인의 생각은 여기에 모아져 있습니다. 진정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고, 복을 구하고자 한다면 과연 누구를 신경 쓰고 누구에게 마음을 전해야 할 것인가? 앞으로 있었으면 하는 미래의 복을 구하기 위해 부처에게는 아낌없이 시주하면서, 곁에서 당장의 도움을 호소하는 걸인은 무시하는 이 부조리한 상황을 두고 시인은 걸인이 곧 부처요, 부처가 곧 걸인이니 없는 부처보다 당장 급한 걸인에게 자비를 베풀라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천한 걸인과 존귀한 부처라는 극단적 대비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존재의 의미와 가치, 나아가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1997년 IMF 사태 이후, 비정규직이 급등하고 소득분배가 악화되면서 저출산이 심화되고, 노인 빈곤이 확산되며, 자살률이 급등하는 등 지속적인 사회 양극화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추세는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통과하는 사이 더욱 증폭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사회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 새로운 가치를 모색한다면 과연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까요?
그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존 공생의 가치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회 양극화는 필연적으로 더 많은 소외계층을 양산하기 마련이며, 이러한 현상은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건강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가로막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심각하게는 우리 사회의 토대가 붕괴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나만 잘살면 된다거나, 개인의 행복은 각자 알아서 하라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논리보다는 국가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에서, 그리고 개인적 차원에서 함께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한 때라 생각합니다.
부자들은 초호화 의료서비스를 누리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병원비가 없어 속절없이 죽어야 하는 아무개 나라들을 우리는 반면교사 삼아야 합니다. 옥소 권섭이 형상화한 것처럼 배고픔에 자비를 구걸하는 걸인은 놔두고 부처에게 복을 비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로 내가 그들이었을 수 있으며, 그들이 곧 나였을 수 있다는 생각, 현재 나의 처지는 우리 사회의 누군가를 대신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나도 그들도 모두 함께 살아야 할 구성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글쓴이 : 김형술
전주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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