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부러운 날의 위로

백광욱 2021. 10. 19. 00:02

 

부러운 날의 위로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을 아껴 여룡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여룡도 여의주를 가졌다 하여 스스로 뽐내면서 저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螗蜋自愛滾丸, 不羨驪龍之如意珠. 驪龍亦不以如意珠, 自矜驕而笑彼蜋丸.

당랑자애곤환, 불선여룡지여의주. 여룡역불이여의주, 자긍교이소피낭환. 

 

-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청장관전서(靑莊舘全書)』 권63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

 

 

이 글은 박지원의 「낭환집서(蜋丸集序)」에 거의 같은 구절이 실려 유명하지만 이덕무의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에 먼저 보인다. 「낭환집서」에는 “말똥구리는 자신의 말똥을 아끼고 여룡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으며, 여룡도 여의주를 가졌다 하여 저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蜣蜋自愛滾丸, 不羡驪龍之珠. 驪龍亦不以其珠, 笑彼蜋丸.]”로 되어 있다. 「선귤당농소」는 이덕무가 20대 중반에 쓴 수필집이다. ‘선귤당에서 크게 웃는다’는 제목처럼 일상 속의 크고 작은 생각들을 섬세하게 담았다.

 

   이덕무는 왜 이 글을 썼을까? 그는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서얼이었고 가난했으며 몸이 약해 공부하기 어려웠지만 어릴 때부터 매일 책 읽을 양을 정해 1시간에 10번, 하루에 50번씩 읽었다. 담벼락에 해시계를 그리고 공부할 시간이 되면 아이들과 놀다가도 들어와 반듯한 자세로 책을 읽었다. 평생 읽은 책이 약 2만 권, 베껴 쓴 책도 수백 권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신분의 한계, 물질과 건강의 어려움은 그의 평생 숙제였다. 30대 후반에 규장각 검서관으로 임용될 때까지 직장이 없었고 서얼에 너그럽지 않은 시선은 다재다능한 그에게 큰 짐이었다.

 

   청년 이덕무는 묵직한 삶의 무게를 책읽기와 글쓰기로 이겨낸 사람이다. 자신의 재능과 상황을 ‘말똥’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숱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여룡은 온 몸이 검은 용이다. 흑룡(黑龍)이라고도 한다. 여의주를 지닌 여룡처럼 환경이나 장점이 자신보다 돋보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 삭였을 그가 정갈한 필체로 한 자 한 자 눌러 썼을 글에는 흔들리는 마음과 꿋꿋한 당당함이 묻어난다. 그의 스승이자 벗이었던 박지원도 그 마음을 읽고 「낭환집서」에 인용하지 않았을까. 「낭환집서」는 역시 서얼이었던 유금(柳琴)의 문집 서문이다.

 

   말똥구리는 말똥을, 여룡은 여의주를 소중하게 여긴다. 말똥구리와 여룡 둘 다 ‘내게 있는 것’에 자족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처럼 이름만으로도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과 사귀면서 행복한 순간도 많았지만 한편으론 부럽다 못해 남모르는 그늘이 있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때마다 읽고 쓰고 외우면서 꼼꼼하고 섬세한 장점을 지혜롭게 풀어냈을 옛사람의 발자취가 마음을 맑힌다.

 

글쓴이  :  김혜진
장당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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