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1374

닭아 미안해

닭아 미안해 첫 번째 첫닭 울고 둘째 닭 울더니 작은 별, 큰 별 떨어지는데 문을 들락거리며 조금씩 행인은 채비를 하네. 其一 一鷄二鷄鳴 일계이계명 小星大星落 소성대성락 出門復入門 출문부입문 稍稍行人作 초초행인작 두 번째 나그네 새벽 틈타 떠나렸더니 주인은 안된다며 보내질 않네. 채찍 쥐고 주인에게 감사 인사를 하니 닭만 괜스레 번거롭게 했구나! 其二 客子乘曉行 객자승효행 主人不能遣 주인불능견 持鞭謝主人 지편사주인 多愧煩鷄犬 다괴번계견 - 이병연(李秉淵, 1671~1751), 『사천시초(槎川詩抄)』 권상 「일찌감치 떠나려다가(早發)」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1671~1751)은 본관이 한산(韓山)이고 자(字)가 일원(一源)이며 사천(槎川)이라는 호를 썼습니다. 사천 이병연은 1696년 겨울, 동생 이..

결국 사람이다

결국 사람이다 산천은 천지간의 무정한 물건이다. 그러나 반드시 사람을 기다려서 드러난다. 山川者 天地間無情之物也 然必待人而顯 산천자 천지간무정지물야 연필대인이현 - 소세양(蘇世讓, 1486-1562), 『양곡집(陽谷集)』 권14, 「면앙정기(俛仰亭記)」 소세양이 송순(宋純 1493-1582)의 면앙정에 쓴 기문의 일부로, 명인(名人)과 명문(名文)을 통해 명승(名勝)이 되는 상관관계를 나타낸 문구로 더 유명하다. 소세양은 그 사례로 중국의 난정(蘭亭)과 적벽(赤壁)을 거론하였다. 난정은 절강성 소흥에 있는 어느 연못의 작은 정자였다. 동진(東晉)의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가 우군장(右軍將)으로 부임해 벗들과 시회(詩會)를 열었으며, 「난정집서(蘭亭集序)」를 지은 곳으로도 이름났다. 적벽은 호북성 황강..

나를 위한 휴식

나를 위한 휴식 내가 젊을 때부터 말로 다른 사람 이기기를 좋아해서 매양 다른 사람과 시시비비를 논쟁하거나 농담과 해학을 하면 바람이 몰아치고 벌떼가 일어나듯 하였는데 기발한 생각을 재빨리 꺼내 항상 좌중에 있는 사람들을 압도하곤 하였소. 내가 젊을 때부터 술 마시기를 좋아해서 마을의 술꾼들과 무리를 이루어 거나하게 마시며 주정을 부려 더러는 한 달 동안 멈추지 않고 마셨고 쇠해가는 나이인 지금까지도 쉬지 않고 마셨다오.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젊을 때부터 사람들과의 교유를 즐겼고, 약관의 나이에 사마시에 입격하여 태학에 선발되어 들어갔더니 사방에서 태학으로 온 사람들이 해마다 수백 명이었는데 교유하지 않은 사람이 없어 심지어 뼈와 살을 나눈 형제 같은 자 또한 적지 않았었소. 이것이 젊..

모두에게 봄이 따뜻한 것은 아니다

모두에게 봄이 따뜻한 것은 아니다 팔딱거리며 냇물에서 물고기들 뛰어놀고 지천으로 산새들 울고 있는데 나만 홀로 무슨 일 때문에 묵묵히 괴로운 마음 품고 있는가 끝없는 아득한 천지처럼 쌓인 이 한 어느 때나 평온해질까 회옹(晦翁)께서 하신 말씀 세 번 되뇌어본다 “결국 죽느니만 못하다” 潑潑川魚戱 발발천어희 得得山鳥鳴 득득산조명 而我獨何事 이아독하사 默默抱苦情 묵묵포고정 穹壤莽無垠 궁양망무은 積恨何時平 적한하시평 三復晦翁語 삼복회옹어 終不如無生 종불여무생 - 어유봉(魚有鳳, 1672~1744), 『기원집(杞園集)』 4권, 「한식이 지난 후 풍덕의 묘소로부터 서울로 돌아오다가 시절을 느끼고 슬픔이 일어 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말 위에서 두보(杜甫)의 시구 ‘面上三年土 春風草又生’으로 운을 나누어 읊조리다..

책 향기가 난초 향기보다 향기롭다

책 향기가 난초 향기보다 향기롭다 다행스러운 것은 먼지 묻고 좀이 슨 책에 실려 있는 성현이 남긴 향기가 사람에게 난초 향기가 스며드는 것보다 더 향기롭다는 것입니다. 惟幸塵編蠹簡 聖賢遺馥 不啻如蘭臭之襲人. 유행진편두간 성현유복 불시여란취지습인. - 이황(李滉,1501~1570) 『퇴계집(退溪集)』 17권 「답기명언(答奇明彦) 갑자(甲子)」 이 편지는 퇴계 선생이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1527~1572)에게 갑자년인 1564년(명종19) 12월 27일에 보낸 편지로 『퇴계집』에는 절략되어 실려있고, 『양선생왕복서(兩先生往復書)』 2권에 좀 더 완전한 모습으로 실려 있다. 이때 퇴계 선생은 고향에 물러나 있었는데, 고봉이 서울의 벼슬살이를 그만두고 광주로 내려갈 생각을 전해오자 쓴 편지이다. 이 편지..

완전한 혼자라는 신화

완전한 혼자라는 신화 나는 그대가 언젠가 펼쳐질 것을 안다. 굽어 있던 것이 펼쳐지는 것은 이치의 형세이다. 吾知子之伸有日. 旣屈則伸, 理之勢也. 오지자지시유일 기굴즉신 이지세야 - 서경덕(徐敬德, 1489~1546),『화담선생문집(花潭先生文集)』권2 「김사신자사(金士伸字詞)」 ‘화담 서경덕은 별다른 스승 없이 자연과 홀로 마주하여 씨름하며 학문을 깨우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늘의 이치를 궁구하기 위해 天 글자를 벽에 붙이고서 면벽 수행을 하듯 깊이 파고들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한 그가 사망한 뒤 30년가량이 지나 조정에서 추증 문제가 거론되었다. 선조는 서경덕의 저서를 살펴보니 기수(氣數)에 관해 논한 바는 많으나 수신에 대해서는 미치지 못했고 ..

파자시 (破字詩)에 담아낸 신라 멸망과 고려 건국

파자시 (破字詩)에 담아낸 신라 멸망과 고려 건국 창근(昌瑾)의 거울 갑(甲)보다 사흘 앞서 팔(八)과 근(斤)을 폈네 실 하나로 그물을 엮어서 마침내 옹(雍)에서 현(玄)을 부수었네 불길은 거친 언덕에 번져 풀을 태우고 시내를 마르게 하였네 숭(嵩)에서 산(山)이 달아나고 쇄(灑)에서 수(水)가 빠졌네 동(同)이 수레[車]에 앉아 있고 수레[車]를 세니 수레[車]가 없네 밝은 해가 위에 있고 유(由)에서 싹을 전부 뽑았네 근(謹)에서 언(言)을 줄이고 옥을 바탕으로 삼네 사람이 태양 아래에 서서 강한 사내를 얻은 것을 기뻐하네 인(仁)에서 인(人)이 돌아가고 사(詐)에서 언(言)이 빠졌네 관(管)이 관(官)을 맡지 않고 부(府) 깊숙한 곳에 거처하네 주(周)에서 용(用)을 버리고 오직 영(令)을 따를 ..

혼조(昏朝)의 권신(權臣)에서 절신(節臣)으로

혼조(昏朝)의 권신(權臣)에서 절신(節臣)으로 이조가 아뢰기를, “충청도 진천(鎭川)의 유학(幼學) 박준상(朴準祥)의 상언(上言)에 대해 본조가 복계(覆啓)하였는데, 그 8대조 박승종(朴承宗) 및 그 아들 박자흥(朴自興)의 관작을 회복시키는 일을 대신(大臣)에게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윤허하셨습니다. 우의정 조두순(趙斗淳)은 말하기를, ‘박승종은 혼조(昏朝)의 고굉지신(股肱之臣)이자 폐부(肺腑)와 같은 인척으로서 16년을 지냈습니다. 만약 그가 임금의 과실을 바로잡고 이의를 제기하여 잘못이 없는 곳으로 임금을 인도하였다면, 실로 생사를 함께하여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윤리와 기강이 무너지고 사라진 때를 당하여 한마디 말이라도 내어 천지의 경상(經常)을 지킨 일이 있었습니까..

오늘날 염치는 삽사리 뱃속에

오늘날 염치는 삽사리 뱃속에 열네 번째 오늘날 보건대 염치는 삽사리 배속에나 있네. 늘 제 밥그릇이나 긁을 뿐 부엌을 향해서는 앉지도 않네. 其十四 今日看廉恥금일간염치 靑狵肚裏存청방두리존 尋常櫟釜際심상력부제 不欲向廚蹲불욕향주준 - 김창흡(金昌翕, 1653~1722), 『삼연집(三淵集)』 권15 「갈역에서 이것저것 읊다(葛驛雜詠)」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1653~1722)은 자가 자익(子益), 호가 삼연(三淵), 시호는 문강(文康)입니다. 서릿발 같은 기상으로 청에의 굴복을 반대했던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이고, 영의정을 지낸 김수항의 셋째 아들이며,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이었던 김창집(金昌集)과 조선후기 낙론(洛論)을 이끌었던 김창협(金昌協)의 동생입니다. 부친과 큰형이 사화로 죽은 뒤로..

말과 소리

말과 소리 군자는 되도록 어눌하려고 노력한다. 어눌함만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렇게 하는가? 아니다. 이치에 맞는 말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蓋君子之欲訥於言者 非徒貴其訥也 貴其言而得中也 개군자지욕눌어언자 비도귀기눌야 귀기언이득중야 - 조긍섭(曺兢燮, 1873〜1933), 『암서집(巖棲集)』 20권, 「눌재기(訥齋記)」 조긍섭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중근(仲謹), 호는 심재(深齋)다. 경남 창녕군 고암면 출신이다. 생몰년에서 나타나듯 그는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라는 격변기를 살아간 인물이다. 당대 영남의 대표 선비였던 곽종석(郭鍾錫)에게 수학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성리학과 문학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용한 글은 조긍섭이 눌재(訥齋) 김병린(金柄璘, 1861〜1940)에게 지어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