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1374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일은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일은 대장부의 이름은 마치 푸른 하늘의 밝은 해와 같아, 사관이 책에 기록해두고 넓은 땅 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구차하게도 원숭이나 너구리가 사는 수풀 속 돌에 이름을 새겨 썩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아득히 날아가 버린 새의 그림자만도 못한 것이니, 후세 사람이 과연 무슨 새였는지 어찌 알겠는가? 大丈夫名字 當如靑天白日 太史書諸冊 廣土銘諸口 區區入石於林莽之間 㹳狸之居 求欲不朽 邈不如飛鳥之影 後世果烏知何如鳥耶 대장부명자 당여청천백일 태사저저책 광토명저구 구구입석어림망지간 오리지거 구욕불후 막불여비조지영 후세과오지하여조야 - 조식(曺植, 1501-1572), 『남명집(南冥集)』 권2, 「유두류록(遊頭流錄)」 남명 조식은 1558년 4월 10일부터..

이를 뽑다

이를 뽑다 내 나이 쉰네 살에 오른쪽 잇몸 첫 번째 이가 아무 이유 없이 흔들리니 통증을 견딜 수 없기에 의원에게 뽑게 하였다. 느낀 바가 있어 다음과 같이 쓴다. 내 나이 세 살에 네가 처음 나서 내 입의 빗장이 된 지 오십여 년이구나, 분쟁과 우호가 너에게 달려 있었고 음식의 맛을 너를 통해 알았지. 내가 한창 강건할 때는 너 역시 튼튼해서 말린 고기와 딱딱한 떡도 칼처럼 잘랐었다. 내가 항상 옥보다 더 귀중히 여겨 이불을 물어뜯지도 돌로 양치하지도 않았지. 吾年五十四, 右車第一齒無故動搖, 痛不可忍, 令醫拔之, 感而有作. 吾生三歲, 汝始生焉, 爲我口關, 五十餘年. 興出戎好, 職汝所爲, 酸鹹甘苦, 由汝得知. 吾方強健, 汝亦堅牢, 乾肉勁餠, 截之如刀. 吾常寶愛, 不啻珙璧, 不曾..

양화에서 눈을 밟다

양화에서 눈을 밟다 강변 물새들의 자취는 사라지고 천상의 옥가루가 선장(仙掌)에 날린다 공중에 어지럽게 흩뿌리다 별안간 바람 따라 날리더니 평지에 가득 쌓여 어느새 한 길 높이가 되었네 몇 말이나 되는 술이 집집마다 가득하고 온갖 데에는 눈꽃이 촌죽(村竹)을 누르고 있구나 옷 전당 잡히고 마신 술의 취흥이 온천지에 횡행하니 백년 인간사가 한 순간이로다 江邊鷗鷺絶影響 강변구로절영향 天上玉屑霏仙掌 천상옥설비선장 空中散亂乍隨風 공중산란사수풍 平地彌漫忽盈丈 평지미만홀영장 十千斗酒盈比屋 십천두주영비옥 滿目瓊花壓村竹 만목경화압촌죽 典衣醉興橫八荒 전의취흥횡팔황 百年人事一瞬息 백년인사일순식 - 성임(成任, 1421~1484),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3권, 「한성부 십영 양화답설(漢城府 十詠 楊花踏雪)」..

강물은 흘러도 돌은 구르지 않는다

강물은 흘러도 돌은 구르지 않는다 고을 수령이 되는 자는 아침에 바뀌고 저녁에 갈려서 자리가 따뜻해질 겨를이 없는데 구실아치들은 젊을 때부터 늙을 때까지 변함없이 일을 맡으므로, 마음대로 부려서 늘였다 줄였다 함이 오로지 그들 손에 달려 있으니, 단지 장부를 숨기고 재물을 훔치는데 그치지 않는다. 세속에서 이른바 ‘강물은 흘러도 돌은 구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爲官者朝更暮遞 席不暇暖 而胥輩從少至老 任事自若 操縱伸縮 專在其手 非止絶簿書盜財物而已 俗謂江流石不轉以此 위관자조경모체 석불가난 이서배종소지로 임사자약 조종신축 전재기수 비지절부서도재물이이 속위강류석부전이차 - 이수광李睟光,1563~1629), 『지봉유설(芝峯類說)』 16권 「잡설(雜說)]」 강류석부전(江流石不轉), ‘강..

일상에서 만나는 우리말 바로 알기

일상에서 만나는 우리말 바로 알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쓰는 말, 혹시 내가 자주 사용했던 말이 누군가를 차별하는 말이라면? 의도적이지 않았더라도 누군가에겐 차별이 될 수 있는 말을 행복한가와 함께 알아볼까요? ‘소외’란, 어떤 무리에서 기피하여 따돌리거나 멀리한다는 뜻인데요. 모두 함께 어울려 살고 있으니까 소외계층이 아닌 ‘취약계층’으로 불러야 하는 게 맞습니다. 현재 ‘조금 일찍 태어난 아기’를 ‘미숙아(未熟兒)’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차별적인 언어로 ‘조금 일찍 태어나다’라는 뜻을 그대로 반영한 ‘조산아(早産兒)’로 바꿔 부르도록 시정 제안 중입니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은 흔히 ‘독거노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독거’라는 뜻에는 감방 하나에 죄수 한 사람만 홀로 지낸다는 뜻도 있기 때..

절밥과 까마귀

절밥과 까마귀 자리에서 일어나 한가로이 걷노라니 산이 깊어 누가 다시 이 길을 지났으랴! 산그늘은 온통 안개 낀 듯 어둑한데 숲속 눈은 절로 꽃으로 피었구나. 괴이해라! 소나무는 바위에 서려 늙어가고 가련해라! 부처는 암자 벽화 속에 많구나. 종 울리니 절밥이 다 됐나 보다 까악까악 까마귀들 쪼아대는 걸 보니. 睡起吾閒步 수기오한보 山深誰復過 산심수부과 峰陰渾欲霧 봉음혼욕무 林雪自開花 임설자개화 石怪盤松老 석괴반송로 菴憐畵佛多 암련화불다 鐘鳴齋飯熟 종명재반숙 啼啄有寒鴉 제탁유한아 - 박태관(朴泰觀, 1678~1719), 『응재유고(凝齋遺稿)』 권상 「관음사에서[觀音寺]」두 번째 수[其二] 이 시를 쓴 분은 박태관(朴泰觀; 1678~1719)입니다. 박태관은 자(字)가 사빈(士賓)이고 호(號)는 응재(凝齋..

현진국과 김달봉

현진국과 김달봉 예산현(禮山縣)의 출신(出身) 현진국(玄鎭國)은 집안에서는 효도하고 우애하며 어려운 사람을 보면 잘 도와주었습니다. 작년 8월에 큰비가 내렸을 때 입암면(立巖面)의 들판이 온통 물에 잠겨 근처에 사는 백성들이 장차 물에 빠져 모두 죽을 염려가 있었는데 현진국이 사람들을 모으고 배를 빌려서 1000여 명을 구해내었습니다. 그러고는 물이 빠지기 전까지 5, 6일 동안 음식을 마련하여 먹이고, 물이 빠진 뒤에는 빚을 얻어 곡식을 구해다가 집집마다 나누어 주어 각기 편안히 살게 해 주었습니다. 전후로 들어간 비용이 거의 수천 금이 넘었습니다. 또 춘궁기에는 밥과 죽을 공급하고 돈과 쌀을 계속 나눠주어 원근에서 칭송하고 있습니다. 그는 평소 이름난 부자가 아닌데도 이렇게 의로운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