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1385

명당과 발복

명당과 발복어떤 이가 “땅을 고르는 방법에 길지를 추구하고 흉지를 피한다는데 무슨 말입니까? 화복을 인력으로 이룰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내가 응답하기를, “길지를 추구하고 흉지를 피하는건 자식된 마음이고 선인에게 복을 내리고 음란한 이에게 화를 내림은 천도의 고정된 법이니 사람의 일을 하면 천리가 응한다. 만물의 이치는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느끼니 그러므로 하늘이 길지를 감춰뒀다가 선한 사람에게 주는 것 또한 천도에 합치됨이요 인력으로 이룰 수 있는 바가 끝내 아니다.”라고 하였다.或問曰: “擇地之法, 有趍吉避凶, 何謂也? 禍福可以力致歟?” 余應曰: “趍吉避凶, 人子之情也; 福善禍淫, 天道之常也, 人事修而天理應矣. 凡物之理, 同聲相應, 同氣相感, 故天藏吉地, 以與 善人, 卽亦天..

가을의 문턱에서

가을의 문턱에서  무심히 문득 나를 내려놓으니나를 미혹하는 일 더 이상 없네연밭에 이슬 미끄러져 내리더니난초 잎은 가을에 먼저 시드네풀벌레 소리 여기저기서 들리는데산을 머금은 달그림자 외롭네흰 갈매기와 옛 약속 지키러다시금 강호에 돌아와 앉았노라마음속 천근만근 근심도맑은 밤엔 한 점 남아 있지 않네바로 세속의 때 씻어낼 수 있으니영고성쇠를 어찌 따지고 싶으랴학이 잠들자 섬돌 더욱 깨끗하고구름 깃드니 골짜기 외롭지 않네연꽃 핀 십 리에 달빛 비추고가을 생각은 남쪽 호수에 가득하구나  嗒然忽忘吾          탑연홀망오        妄吾事更無          망오사갱무        荷叢露已滑          하총로이활        蘭葉秋先枯          난엽추선고        繞壁蟲聲亂         ..

바로, 오늘이다 !

바로, 오늘이다 !사람이 오늘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나서부터 세도(世道)가 잘못되었다.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직 않았으니, 어떤 일을 하고자 하면 오직 오늘에 있다. 自人之不知有當日而世道非矣. 昨日已過, 明日未來, 欲有所爲, 只在當日.자인지부지유당일이세도비의. 작일이과, 명일미래, 욕유소위, 지재당일. 이용휴(李用休, 1708∼1782), 『탄만집(𢾡𢿜集)』, 「당일헌기(當日軒記)」  혜환(惠寰) 이용휴(李用休)는 조선의 대표적인 문장가이다. 그는 매우 어린 나이에 부친을 여의고 숙부인 성호(星湖) 이익(李瀷)에게 수학하였다. 천재적인 인물로 알려진 이가환(李家煥, 1742∼1801)이 그의 아들로, 문장은 물론이고 천문학, 수학에도 정통한 인물이다. 그러나 1801년 신유사옥(辛酉史獄..

범 같은 정의

범 같은 정의사람들이 바른 선비를 사랑함은 호피를 좋아하는 것과 같다.살아 있을 때는 죽이려 들고 사후에 아름다움을 칭송한다. 人之愛正士 好虎皮相似 生則欲殺之 死後方稱美인지애정사 호호피상사 생즉욕살지 사후방칭미    - 조식(曺植), 『남명집(南冥集)』 권1 「우음(偶吟)」  대학에선 진실과 정의가 중요하지만, 사회에서는 이를 중요시하면 어리석다는 핀잔을 듣곤 한다. 사회는 현실적이라 진실보다 이기는 것, 이득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소중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가령 소송할 적에도 진실을 밝히는 변호사보다 승소율이 높은 변호사를 선호한다. 소송으로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기보다 진실을 은폐하여 패소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알 파치노 주연의 옛 영화 (1979)에서 변호사 커클랜드는 강간..

바다의 붉은 재앙, 적조(赤潮)

바다의 붉은 재앙, 적조(赤潮) 전라도와 경상도의 바닷물 색깔이 변했다. 전라도 순천부(順天府) 장생포(長省浦)의 바닷물이 15일부터 적색을 띠기 시작하더니 20일에는 흑색으로 변했다. 물고기와 새우가 죽어 물위로 떠올랐다. 바닷물을 떠서 용기에 담아보았더니 평소와 다름없는 색이었다. 경상도 양주(梁州, 양산) 다대포(多大浦)에서는 18일부터 20일까지 바닷물이 적색을 띠었다가 27일부터 28일까지 또다시 적색이 되었다. 물고기가 죽어서 물위로 떠올랐고 바닷물을 떠서 용기에 담아두었더니 달인 우뭇가사리 액즙처럼 엉겨붙었다. 절영도(絶影島, 영도)에서는 18일부터 20일까지 바닷물이 적색을 띠었다. 동래(東萊) 외평(外坪)에서는 21일에 바닷물이 적색을 띠었으며, 부산포(富山浦)에서는 27일부터 28일까지..

더위 견디기

더위 견디기  나직한 처마서 근심 풀며 석양 보내니하얀 달의 흐르는 빛에 낚시터가 서늘한데노나라 들판의 어부가로 물 흐린 것 걱정하고진나라 정자의 계제사에 난초 향기 떠올리며물장구는 물결 쫓는 오리 배우려는 것 같지만닦아 말리니 젖기 싫은 염소 도리어 같아지고친구들 손 맞잡고 모두 깊이 잠들었지만명아주 침상을 비추는 아침 해에 부끄럽잖네 矮簷排悶送殘陽        왜첨배민송잔양素月流輝釣石涼        소월류휘조석량魯野漁歌愁水濁        노야어가수수탁晉亭禊事憶蘭香        진정계사억란초瀊回欲學隨波鴨        반회욕학수파압晞挋還如畏濕羊        희진환여외습양社友相携渾睡熟        사우상휴혼수숙不羞紅旭照藜牀        불수홍욱조려상 - 정약용(丁若鏞 : 1762~18366), 『여유당전서..

여름밤의 길이

여름밤의 길이 병 치르고 일어나니 봄바람은 간데없고시름겨운 여름밤은 길기도 해라 病起春風去, 愁多夏夜長.병기춘풍거, 수다하야장.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신조선사본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제1집 제4권 시문집 시(詩), 「밤(夜)」 마흔 살의 다산(茶山)은 장기(長鬐)의 적소에서 맞은 봄을 병치레로 보내고 처음으로 견뎌내는 여름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 그나마 설핏 든 잠을 흔들어 깨우는 건 떠나온 곳을 향한 그리움. 여름밤이 길기는 강진(康津)으로 옮겨지고 세 해가 지나서도 그 이듬해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모기를 미워하다(憎蚊)」에서 “가마득한 여름밤이 한 해만큼 길어라(漫漫夏夜長如年)”라 읊고 「차운하여 황상의 보은산방에 부치다(次韻寄黃裳寶恩山房)」에서는 “여름 이 밤이 몹..

임리(淋漓), 촉촉하고 자욱한

임리(淋漓), 촉촉하고 자욱한 “돈을 물 쓰듯 한다”라는 표현이 있다. 물이 귀하디귀한 사막기후의 사람들에겐 아연한 말일 것이다. 기후 재앙의 시대, 봄 가뭄이 연례행사가 된 요즘은 우리도 물 부족을 절감하곤 하나, 한국을 포함한 극동아시아는 비교적 물이 풍부한 지역에 속한다. 특히 여름 장마철 습기는 대단하다. 꼭 우기가 아니더라도 습윤한 기후를 체감할 기회는 적지 않다. 비 갠 뒤 내 건너 앞산 중턱에 피어오르는 운기는 한국 전원의 흔한 풍경이다. 새벽 농무를 가르며 촘촘한 물길을 오가는 거룻배를 젓는 삿갓 쓴 어부는 중국 강남을 대표하는 정경이다. 정원의 낙숫물 소리와 함께 음미하는 농밀한 말차는 습기 가득한 일본의 여름 차밭 공기를 응축한 듯한 맛이다.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 사람들 마음속 한구석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