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바다의 붉은 재앙, 적조(赤潮)

백광욱 2024. 8. 28. 00:04

 

바다의 붉은 재앙, 적조(赤潮)

 

전라도와 경상도의 바닷물 색깔이 변했다. 
전라도 순천부(順天府) 장생포(長省浦)의 바닷물이 15일부터 적색을 띠기 시작하더니 20일에는 흑색으로 변했다. 물고기와 새우가 죽어 물위로 떠올랐다. 바닷물을 떠서 용기에 담아보았더니 평소와 다름없는 색이었다. 
경상도 양주(梁州, 양산) 다대포(多大浦)에서는 18일부터 20일까지 바닷물이 적색을 띠었다가 27일부터 28일까지 또다시 적색이 되었다. 물고기가 죽어서 물위로 떠올랐고 바닷물을 떠서 용기에 담아두었더니 달인 우뭇가사리 액즙처럼 엉겨붙었다. 절영도(絶影島, 영도)에서는 18일부터 20일까지 바닷물이 적색을 띠었다. 동래(東萊) 외평(外坪)에서는 21일에 바닷물이 적색을 띠었으며, 부산포(富山浦)에서는 27일부터 28일까지 바닷물이 적색을 띠었다. 견내량(見乃梁)에서는 21일에 바닷물이 심적색을 띠면서 물고기가 죽었다. 번계포(樊溪浦)에서는 21일부터 24일까지 바닷물이 홍황색을 띠면서 물고기가 죽었고, 두모포(豆毛浦)에서는 20일에 바닷물이 적색을 띠었으며, 포이포(包伊浦)에서는 20일부터 21일까지 바닷물이 적색을 띠었다. 창원부(昌原府) 도만포(都萬浦) 등지에서는 21일에 바닷물이 적흑색을 띠면서 물고기가 죽었고, 진해(鎭海)에서는 21일에 바닷물이 담황색을 띠면서 물고기가 죽었다. 기장(機張)에서는 20일에 바닷물이 적황색을 띠면서 전복과 조개, 물고기가 모두 죽었고, 흥해(興海)에서는 21일부터 23일까지 바닷물이 적색을 띠면서 물고기가 죽었다.



 
全羅ㆍ慶尙道海水變色. 順天府長省浦水, 自壬辰始赤, 至丁酉變爲黑, 魚蝦死而浮出, 若汲水盛器, 則其色如常. 梁州多大浦, 自乙未至丁酉水赤, 自甲辰至乙巳又赤, 魚死浮出, 取水盛器, 凝如煎牛毛汁. 絶影島, 自乙未至丁酉水赤. 東萊外坪, 戊戌水赤, 富山浦, 自甲辰至乙巳水赤. 見乃梁, 戊戌水深赤, 魚死. 樊溪浦, 自戊戌至辛丑水紅黃色, 魚死, 豆毛浦, 丁酉水赤, 包伊浦, 自丁酉至戊戌水赤. 昌原府都萬浦等處, 戊戌水赤黑, 魚死. 鎭海, 戊戌水淡黃色, 魚死. 機張, 丁酉水赤黃, 鮑鮯與魚皆死. 興海, 自戊戌至庚子水赤, 魚死.
《태종실록 13년 7월 27일》

 
   
  폭우와 폭염이 반복되는 힘든 여름이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바닷가에서는 폭염으로 바닷물이 뜨거워지면서 독성을 지닌 해파리가 기승을 부려 해수욕장의 피서객을 위협했다. 그런데 해파리보다 더 무서운 놈이 있으니 바로 적조를 일으키는 코클로디니움(Cochlodinium)이라는 플랑크톤이다. 해파리가 바다의 불청객이라 한다면 코클로디니움은 바다의 무법자다. 이놈은 바닷물의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급속도로 번식하여 바다를 온통 붉게 만들고 주변의 수산물 양식장을 덮쳐 어민들이 소중하게 길러온 조개, 전복, 물고기들을 질식시켜버린다. 때문에 여름이 되면 국립수산과학원에서는 적조의 발생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해안지역의 어민과 관공서는 초긴장 상태에 들어간다.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이 적조(赤潮)현상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자주 나타난다.
 

  ▲적조 (해양수산부 공식 블로그 사진)
 
  
  세종은 한글을 창제하고 금속활자를 제작하여 지식의 대중화에 노력하였을 뿐 아니라 천문을 관측하는 간의대와 강수량을 측정하는 측우기를 제작하는 등 조선의 과학문명을 세계적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세종의 통치기에 편찬된 《정종실록》과 《태종실록》 그리고 세종 당시의 사건을 기록한 《세종실록》에는 세종의 관심이 반영된 듯 적조현상에 대한 지방관들의 보고가 다른 실록들에 비해 매우 자세하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새롭게 번역하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은 원래의 표기방식인 음력 에다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제공한 양력 연월일을 함께 표기하고 있어 태양과 관련된 자연현상을 분석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1413년 7월 27일(양력 8월 23일)에 전라도와 경상도의 관찰사가 동시에 올린 장계에 의하면, 전라도 순천의 장생포 인근에서 7월 15일(양력 8월 11일)부터 20일까지 6일간 적조가 발생했고, 며칠 후 경상도에서는 양산(다대포, 절영도)을 시작으로 동래(외평, 부산포, 두모포, 포이포), 기장, 창원(도만포, 진해), 거제(견내량), 고성(번계포)으로 번졌고 위로는 포항(흥해)까지 적조가 발생했다고 한다. 
 
  당시 해안에 번진 적조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순천에서는 처음에 붉은빛을 띠다가 나중에 검은빛으로 변했으며, 지역에 따라 바닷물이 담황색, 홍황색, 적황색, 적색, 심적색, 적흑색, 흑색을 띠기도 하였다. 바닷물의 수질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장생포의 바닷물을 용기에 담아 수질을 분석했더니 멀리서 본 것과는 달리 수질은 맑고 깨끗했다. 반면 다대포의 바닷물은 마치 달인 우뭇가사리 액즙처럼 엉겨붙었다. 
 
  이렇게 색깔과 수질의 차이를 보인 것은 무엇 때문일까? 현대의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필자 나름의 정리를 해보자면, 적조는 해류를 따라 바다의 표층이나 저층으로 수심을 달리하여 떠다니는 까닭에 지역에 따라 다른 색을 띠게 되며 같은 지역에서도 시간에 따라 차이를 보일 수 있다. 또한 적조를 일으키는 코클로디니움이 점액성 물질을 다량으로 분비하기 때문에 바다 표층에서 발생한 적조에서 시료를 채취한 경우에는 끈적끈적하게 엉겨붙을 수 있다. 
 
  1399년(정종1)부터 1441년(세종23)까지 43년 동안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된 적조 관련 기사는 28건이며, 적조가 지속된 기간은 짧게는 하루 이틀에서 길게는 17일간 계속되기도 하였다. 지역적으로는 전라도 무안에서 경상도 포항까지 우리나라 남쪽 해안 전역에서 발생하였으며, 시기적으로는 양력을 기준으로 8월(9건)과 9월(11건)에 집중적으로 발생하였다. 이렇게 600년전에 발생한 적조현상은 시기와 지역이 현재와 아주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지금은 관공서에서 배를 띄워 황토를 바다에 뿌리고 있고 그때는 조정에서 관원을 보내 해괴제(解怪祭)라는 제사를 지내며 바다에 술을 뿌렸다는 점일 것이다. 어떻게 하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적조는 없어지고 평상을 되찾는다. 
 
  적조의 주원인은 해수온도의 상승과 바닷물의 부영양화이다. 산업화와 함께 증가한 온실가스는 지구온난화를 초래했고 이에 따른 해수온도의 상승은 적조생물이 예전보다 대량으로 증식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한다. 여기에 해안지방에서 흘려보내는 생활 하수와 산업 폐수, 빗물에 떠내려온 농업용 비료, 양식장에서 뿌리는 물고기 사료 등등이 적조생물의 좋은 먹거리가 되어 그들의 번식을 더욱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600년전에도 있던 적조가 지금 새삼 환경문제로 다가온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글쓴이   :  최채기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교육 > 고전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로, 오늘이다 !  (0) 2024.09.10
범 같은 정의  (1) 2024.09.02
더위 견디기  (0) 2024.08.22
여름밤의 길이  (0) 2024.08.09
임리(淋漓), 촉촉하고 자욱한  (1) 2024.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