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 같은 정의
사람들이 바른 선비를 사랑함은 호피를 좋아하는 것과 같다.
살아 있을 때는 죽이려 들고 사후에 아름다움을 칭송한다.
人之愛正士 好虎皮相似 生則欲殺之 死後方稱美
인지애정사 호호피상사 생즉욕살지 사후방칭미
- 조식(曺植), 『남명집(南冥集)』 권1 「우음(偶吟)」
대학에선 진실과 정의가 중요하지만, 사회에서는 이를 중요시하면 어리석다는 핀잔을 듣곤 한다. 사회는 현실적이라 진실보다 이기는 것, 이득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소중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가령 소송할 적에도 진실을 밝히는 변호사보다 승소율이 높은 변호사를 선호한다. 소송으로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기보다 진실을 은폐하여 패소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알 파치노 주연의 옛 영화 <용감한 변호사>(1979)에서 변호사 커클랜드는 강간죄로 기소된 판사의 변호를 맡았다. 그런데 판사가 실제로 죄를 저질렀음에도 검사는 그 죄를 입증할 증거를 찾지조차 못했고, 재판부는 판사라는 이유로 감싸려고만 했다. 진실을 아는 커클랜드는 이 판사가 실제로 죄를 저질렀다며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를 저버린 채 배심원단에게 울분을 토했다.
커클랜드는 진실이라는 정의를 위해 승소할 수 있었던 재판을 유기했다. 그의 이런 행동은 정의를 위한 멋짐이다. 그러나 훗날 다른 의뢰인이 자기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사실을 터놓고 말하기 껄끄러워진다는 맹점이 있어 의뢰인은 줄 것이다. 이것이 그의 현실이며, 어리석음이다.
조식은 바른 선비가 범의 가죽과 같다고 한다. 정의로운 사람을 바른 선비라고 한다면, 정의는 범과 같은 것이다. 정의로운 사람이 있는 사회를 바라지만, 실제로 그 정의로운 사람을 곁에 두기 두려워하는 것은 범을 옆에 두지 않고 그저 호피(虎皮)를 좋아하는 것과 진배없음에도 우리는 정작 그런 사람이 살아서 정의로운 일을 할 땐 곁에 머물지 않는다. 그가 죽거나 위인으로 이름이 실리고 나서야 그를 마음 놓고 칭송한다. 이는 모두가 범이라는 맹수를 두려워하듯, 범을 옆에 두면 자기도 다칠까 두려워서다.
조식은 문정대비를 과부라고 하고 왕을 외로운 후사(後嗣)라며 거침없이 상소를 올렸다. 그 또한 자기 스스로가 범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자신마저 호피가 됨을 알았을 것이다. 범 같은 정의를 위한 그의 어리석음은 정말이지 멋진 어리석음이다. 그 또한 커클랜드처럼 용감한 사람이기에 당당히 나설 수 있었을 것이다.
조식의 명구를 보며, 우리는 다만 당당하지 않을지언정 부끄럽지 말자는 소박한 신조를 지키다 범 같은 정의를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글쓴이 : 이영진
'한국고전종합DB' 활용 공모전 고전명구 부문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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