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몫이 아닌 기쁜 일이나 실제보다 넘치는 영예를 사람들은 행운이라 하지만 군자는 불행이라고 한다.
非分之喜 過實之榮 人皆曰幸 君子惟曰不幸
비분지희 과실지영 인개왈행 군자유왈불행
- 하려(下廬) 황덕길 (黃德吉 1750~1827)
「삼불행설(三不幸說)」
『하려집(下廬集)』
우리는 간혹 돈에 쪼들릴 때 갑자기 억만금이 떡 하니 생기는 행운이 찾아오길 바라기도 하고, 자신의 힘만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뭐든지 다 해결해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거나 자신이 갑자기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생겼으면 하고 바라곤 한다. 그런데 정이천(程伊川)은 이런 행운을 얻는 것을 불행이라고 말했다.
정이천이 말한 세 가지 불행은 다음과 같다. 젊은 나이에 높은 성적으로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첫 번째 불행이고, 부형의 지위에 힘입어 좋은 관직을 얻는 것이 두 번째 불행이고, 재주가 뛰어나 글을 잘 쓰는 것이 세 번째 불행이다.[少年登高科一不幸 席父兄之勢得美官二不幸 有高才能文章三不幸] 우리가 어려서부터 밤낮으로 배우고 익혀 얻고자 하는 것도 이것이고 가족이나 친지들이 바라는 것도 이것이며, 이것을 얻은 사람을 보거나 들으면 다들 감탄하고 부러워하는데 정이천은 왜 불행이라 했을까?
하려(下廬)는 이에 대해 행운이라고 여기는 것은 코앞만을 보기 때문이며 불행이라고 여기는 것은 먼 앞날을 염려하기 때문이라고 답하였다. 젊은 나이에 큰 성취를 맛 본 사람은 자신의 재능을 믿는 경향이 있다. 언제든지 내가 시작하기만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젖어 오랜 시간 차근차근 공을 들이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부모의 재산이나 지위 덕에 출세한 사람은 자기의 힘으로 얻기보다 남에게 의존하는 버릇이 생기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별 노력 없이도 남보다 나은 성과를 보기 때문에 자만에 빠져 으스대며 남을 깔보기 쉽다. 오랫동안 공들이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남에게 의존하거나 남을 깔보는 것은 불행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이런 행운에는 먼 훗날의 불행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하려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이러한 행운을 거부하라는 소극적인 대응에 있지 않다. 이런 당장의 행운에 젖어 더 큰 행운, 진정한 행운을 맞이하는 노력을 잊지 말라는 경계이다. 어떤 기쁨이나 영예를 삶의 참다운 행운이 되게 하는 길은 그의 말을 되짚어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기쁨과 영예가 내 몫이 되도록, 나의 실제와 걸맞은 것이 되도록 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단히 나를 키우고 내 삶을 가꾸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말하면, 맨 앞에서 말했던 행운이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는 것은 어쩌면 아직 내 삶의 그릇이 그것을 내 것으로 맞이할 만큼 크고 깊지 않아서일지 모른다.
글쓴이 : 오재환(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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