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백광욱 2013. 5. 9. 14:19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만일 아껴 쓰지 않았다면 오래전에 굶어 죽었을 걸세.

如不節用 餓死久矣
여불절용 아사구의

- 임헌회(任憲晦, 1811~1876)
 「잡저(雜著)」
 『고산집(鼓山集)』

 

  
  고산(鼓山)이 늘 집안사람에게 아껴 쓰라고 권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이를 보고서 핀잔을 섞어 “자네는 아껴 쓰지 않은 적이 없네만 자네의 가난은 예전 그대롤세. 아껴 쓴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하였다. 위는 이에 대해 고산이 답한 말을 적어 놓은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계획하거나 시도할 때 늘 최선의 결과를 기대하는 성향이 있다. 공부를 시작하면 무엇이든 척척 이해하여 뛰어난 학자가 되는 것을 기대하고, 사업을 시작하면 막대한 이익을 거둬 큰 부자가 되는 것을 기대하고, 돈을 저축하면 조만간 태산과 같은 돈이 모이길 꿈꾼다. 이러한 기대는, 일을 시작할 때 나중의 성공적인 이미지를 미리 향유함으로써 동기를 유발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최선의 결과는 말 그대로 결과 중의 최선이다. 우리가 실제 경험하는 결과는 최선 이외의 결과가 대부분이다. 미리 가정한 기대와 실제 드러난 결과 사이에 괴리가 있을 때 일을 계속하려는 추진력이 줄어든다. 소위 맥이 빠진다. 그래서 쉽사리 그 일을 그만두게 되고 더 나아가 그 일을 다시 시도할 의욕까지 잃는다.

  고산의 위 말은, 우리의 어떤 시도나 노력의 결과를 앞이 아닌 뒤를 보고서 판단하는 방법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는 한참 노를 저어도 앞으로 나아간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뒤를 보고 말하면 노를 저은 덕분에 뒤로 떠내려가지 않은 것이다. 앞면만을 보고 결과를 판단하는 것은 그 일을 진행했던 노력의 실제 가치를 늘 과소평가하게 한다. 더욱이 그 앞이라는 것이 허울 좋은 기대일 때는 특히 그렇다. 어떤 결과를 판단할 때 고산의 위 말을 한 번쯤 상기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글쓴이 : 오재환(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