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872

'구독'과 '좋아요' 대신 필요한 것

'구독'과 '좋아요' 대신 필요한 것 무릇 눈을 가진 자들은 만약 볼만한 것이 있으면 고개를 숙인 채 그냥 지나는 자가 없으니, 그 욕망이란 것이 이와 같다. 凡有目者苟有可以見 則未有低頭而過者也 其爲欲有如是矣 범유목자구유가이견 칙미유저두이과자야 기위욕유여시의 - 윤기(尹愭, 1741∼1826) 『무명자집(無名子集)』 문고 제10책 「간완욕(看玩欲)」 조선 후기 학자 윤기(尹愭, 1741∼1826)는 대중의 생활상과 풍속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글을 남겼다. 이 글 또한 윤기가 살던 시대에 대한 비평이 담겨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 당시 어가 행렬은 대단한 구경거리였나 보다. 사대부들은 하인들의 손가락질을 받아도 부끄러움을 모른 채 뛰어갔다. 하나라도 놓칠세라 농사일도 내팽개쳐 버리거나, 같이 갔..

이성 통혼 (異姓 通婚)

이성 통혼 (異姓 通婚) 자네가 편지로 보여 준 일에 대해서는, 주자(朱子)의 가르침 중 내외종(內外從) 남매끼리 부부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리를 가지고 말하자면 이성(異姓)의 근족(近族)은 의당 결혼이 불가한 것이 없으나 다만 우리나라는 중국(中國)과 똑같지 않아서 국속(國俗)이 외가(外家)를 중요하게 여긴다네. 게다가 신랑감의 외가 쪽 칠촌은 형제의 항렬이 아니니, 신랑감의 모친 입장을 가지고 말하자면 오촌 당숙(堂叔)과 사돈이 되는 것으로, 이는 온당하지 못할 듯하네. 세상 사람들이 육촌을 사돈으로 삼는 것은 풍속이 돼버린 지가 이미 오래되었지만, 오촌끼리 사돈이 된다는 것은 아직 들어보지 못하였다네. 그래서 가벼이 의논할 수 없으니, 예(禮)를 잘 아는 이에게 다시 물어서 처리하..

간언과 그릇

간언과 그릇 신하가 말을 과감하게 하는 것은 신하의 이익이 아니라, 바로 나라의 복입니다. 蓋人臣之敢言, 非人臣之利, 乃國之福也. 개인신지감언, 비인신지리, 내국지복야. - 하위지(河緯地, 1412~1456), 『세종실록』 22년 9월 17일 이 말은 하위지가 1440년(세종22)에 올린 상소에 보인다. 하위지는 자(字)가 천장(天章), 또는 중장(仲章)이며, 호는 단계(丹溪), 본관은 진주(晉州)로, 군수(郡守) 하담(河澹)의 아들이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따르면 대책(對策)과 소장(疏章)에 능했다고 하며, 문집으로는 후손 하용익(河龍翼) 등이 편찬, 간행한 『단계유고(丹溪遺稿)』가 있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상소는 『단계유고』에 보이지 않는다. 이 상소를 올릴 당시 하위지는 29세로, 종6품..

우연히 봄

우연히 봄 뜰 앞에 작은 풀이 바람결에 향기로워 설핏 든 잠에서 막 깨어 낮술에 취해 보네 그윽한 정원에 꽃 떨어지는 봄날은 길어 주렴 너머로 벌과 나비 늦도록 바삐 나네 庭前小草挾風薰 정전소초협풍훈 殘夢初醒午酒醺 잔몽초성오주훈 深院落花春晝永 심원낙화춘주영 隔簾蜂蝶晩紛紛 격렴봉접만분분 - 기대승(奇大升, 1549~1572), 『고봉집(高峯集)』 기대승(奇大升, 1549~1572)은 조선 중기의 관료로 32세인 1558년 문과에 급제한 후 예문관 봉교, 승지, 병조좌랑 성균관대사성 등의 여러 벼슬을 지냈다. 그는 관료로서의 이력보다는 학문적 성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퇴계 이황과 서신을 통해 사단칠정(四端七情)에 관해 주고받은 논쟁은 우리나라 성리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위 시는 어려운 글자나..

어린 시절 베껴 쓴 <맹자>책에서 발견한 나

어린 시절 베껴 쓴 책에서 발견한 나 책을 햇볕에 쬐어 말리던 날 저녁, 다섯 살에서 열 살까지 갖고 놀던 것들을 모아 둔 상자를 찾아냈다. 모지라진 붓, 부러진 먹, 먼지 쌓인 구슬, 새의 깃털, 등잔 장식, 송곳 자루, 바가지로 만든 배, 싸리나무로 만든 말 따위가 책상 높이만큼이나 나왔다. 때로는 좀벌레 사이에서 기와 조각이 나오기도 했다. 이것들은 모두 이 손으로 가지고 놀던 것들이었다. 서글프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았지만 갑자기 옛날 사람이 된 듯하였다. 오늘의 성장한 내가 놀랍기도 하고, 옛날이 세월이 지나며 변했음이 느껴지기도 했다. 손바닥만 한 책도 10여 권 있었다. 『대학(大學)』‧『맹자(孟子)』‧『시경(詩經)』‧『이소(離騷)』‧『진한문선(秦漢文選)』‧『두시(杜詩)』‧『당시..

생동하는 한강을 바라보며

생동하는 한강을 바라보며 연화봉은 짙푸르러 비 기운 가득하고 바람 따라 쉽게 뜰의 나무 축축해지네. 온 골짝에 겨우내 쌓인 눈이 녹아 삼호가 생동하여 밤새도록 일렁이는 물결. 흰 물새는 그림자 담그고서 맑은 물에 섰고 생선을 건지는 어선들이 석양과 어울리네. 오늘 아침 봄소식을 찾아보았더니 여린 쑥과 작은 버들 언덕에 함께 났네. 花嶺蒼蒼雨氣多 화령창창우기다 隨風容易濕庭柯 수풍용역습정가 消融萬壑全冬雪 소융만학전동설 生動三湖一夜波 생동삼호일야파 白鳥影涵明鏡立 백조영함명경립 靑魚船入暮雲和 청어선입모운화 今朝試覔春消息 금조시멱춘소식 嫰艾纖楊共一坡 눈애섬양공일파 - 채제공(蔡濟恭, 1720~1799) 『樊巖集』 卷16 「春雨連宵, 氷盡水生, 欣然賦之.」 채제공은 정조 재위 기간 동안 정승의 지위에 올라 깊은 신..

밤사이 노는 이야기

밤사이 노는 이야기 때는 구월 보름이었다. 달빛은 희부연데 서리와 이슬이 옷에 내렸다. 동네 어귀는 낙엽이 깊어 정강이가 푹푹 빠졌다. 걸음마다 바스락, 소리를 내니 마을 개들이 모두 놀라 컹컹 짖었다. 방에 들어서는 삶은 닭을 찢고 술잔을 돌리며 동이 트려 할 때까지 이야기했다. 時則九月望也. 月色微晦, 霜露下衣. 洞門落葉深沒脛, 隨步履索索作聲, 洞犬皆爲之驚. 旣入室, 裂烹鷄觴之, 談至將曙. 시즉구월망야. 월색미회, 상로하의. 동문낙엽심몰경, 수보리삭삭작성, 동견개위지경. 기입실, 열팽계상지, 담지장서. - 김택영(金澤榮, 1850~1927), 『소호당문집(韶濩堂文集)』 4권, 「방산서료기(方山書寮記)」 1890년, 이 글을 짓고 저자는 내심 득의(得意)하였다 여기고 있었다. 「방산서료기」가 참으로 좋..

'자(自)테크'와 뜻의 터전

'자(自)테크'와 뜻의 터전 뜻을 세우는 것과 밝게 아는 것과 독실하게 행하는 것 모두가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 志之立 知之明 行之篤 皆在我耳 지지립 지지명 행지독 개재아이 - 이이(李珥, 1536~1584)『율곡전서(栗谷全書)』 권27 「격몽요결(擊蒙要訣)」, 제1장 입지 우리는 돌아본다. 살아온 나날 속에 놓친 기회와 가능성을. 그리고 내가 했던 선택을 톺아보면 아쉬움, 후회, 안타까움을 마주하곤 한다. 회한의 감정이 휘몰아치기 전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가 꿈꾸는 미래를 떠올려본다. 놓치지 않고 꽉 움켜잡을 기회와 무한한 잠재력, 우연과 필연이 겹쳐 만들어낸 최고의 선택까지. 마음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기분에 잠깐 빠져든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뒤척이며 깨어난 침대, 아무 생각 없이 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