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려면

백광욱 2017. 6. 20. 08:40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려면

 

제호(醍醐)는 유락(乳酪)에서 나왔지만 유락을 잊고,
금옥(金玉)은 광석에서 나왔지만 광석을 잊는 법이다.

 

 

醍醐出於湩酪而忘湩酪, 金玉出於沙礫而忘沙礫.
제호출어동락이망동락  금옥출어사력이망사력


- 황현(黃玹, 1855~1010), 『매천집(梅泉集)』 권6 「노성무를 보내는 서[送性茂序]」

 

해설

   우유를 정제할 때, 초기의 불순물이 섞인 것을 유락(乳酪)이라 하고 극도로 정제하여 맛이 가장 좋은 것을 제호(醍醐)라고 합니다. 온갖 불순물이 섞인 광석에서 정련해 낸 금옥, 유락을 정제하여 만든 제호처럼 처음에는 불순물이 많이 섞인 상태에서 출발하였더라도 계속 정제하여 순정(純精)한 상태가 되면 지난날 불순물이 섞였던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법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이렇게 박잡한 기초단계를 거쳐야 훗날 완벽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매천(梅泉) 황현(黃玹) 선생이 남원(南原)에 살 때 선생과 세교(世交)가 있는 집의 자제인 노성무(盧性茂)라는 자가 찾아와 배움을 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매천 선생은 자신이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며 그의 요청을 거절하고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노성무는 “선생님이 저를 제자로 받아주지 않으시려면 그만이지 왜 돌아가라고 하시느냐.”고 고집을 피우며 끝내 돌아가지 않아 하는 수 없이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노성무는 부지런해서 새벽 일찍 일어나 글을 외우고, 아침을 먹고 나서는 먹을 갈아 명가(名家)의 글씨를 베껴 쓰는 한편, 시 짓는 것도 일과를 정해 꾸준히 해나갔습니다. 이로 인해 집안 분위기가 확 바뀌어, 평소 게으른 성격의 매천 선생도 아침 일찍 일어나 소죽을 끓이고, 집안 청소를 하는 등 부지런해졌습니다. 이렇게 한 달 넘게 머물다 돌아갈 때가 되자, 노성무는 이렇게 잡다하게 공부하는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매천 선생은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대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을 보니, 학문의 본령에 거의 다가갔다고 생각되네. ‘널리 배우는 것은 장차 돌이켜 핵심을 구하기 위함[博學反約]’이라고 한 것은 공자(孔子) 문하에서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인데, 이는 다른 모든 분야도 그렇다네. 옛사람들의 학문은 한 분야에만 얽매이지 않아서 천하의 책을 보고 만물을 두루 연구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자신에게 맞는 분야에 나아가 핵심을 파악하여 일가(一家)를 이루었다네.……그대는 매일 하는 일이 잡다하다고 걱정하지 말고, 더욱 옛사람들의 책을 가져다가 두루 읽으면서 부지런히 노력해 나간다면, 전공 학문과 뛰어난 기예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될 걸세. 제호(醍醐)는 유락(乳酪)에서 나왔지만 유락을 잊고, 금옥(金玉)은 광석에서 나왔지만 광석을 잊는 법이니, 그대는 잘 선택하도록 하게.
[子之問及此。其爲學也殆庶矣乎。夫博學反約。非止爲聖門敎人之術。凡九流七畧。莫不皆然。故古人之學。未甞規規一塗。擧天下之書。無不披閱。擧天下之物。無不窮格。包羅旁魄。汪溢大肆。而末乃就其才性之所近。撮英薈粹。勒成一家。……子於一日之頃。毋患其駁。而益取古人之書。汛觀博覽。濟之以勤。則專門之學。絶人之藝。或將權輿於斯。夫醍醐出於湩酪而忘湩酪。金玉出於沙礫而忘沙礫。子其擇之。”

   매천 선생의 말씀을 좀 더 풀이하면, 우리가 너무 일찍 전공 분야를 정해 한 우물만 팔 필요가 없고, 우선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두루 쌓은 다음에, 이를 바탕으로 적합한 전공 분야를 정해야 훗날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늘날 이야기하는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과학 영재를 키운다고 과학 학원에 등록하고, 글로벌 시대를 준비한다며 모국어도 서툰 네댓 살 어린아이들을 영어 학원이니 중국어 학원이니 몰고 다니기에 정신이 없는 이 땅의 부모들이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글쓴이이규옥(李圭玉)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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