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더위와 추위

백광욱 2014. 7. 3. 08:40

더위와 추위

 

 

 

더위와 추위
더위와 추위는 계절 따라 변하는 것
쓰이고 버려짐을 또한 어찌 노여워하리

炎凉隨節變, 用舍亦何憎。
염량수절변, 용사역하증。

- 임득명(林得明, 1767~?)
 「부채[扇]」 
 『송월만록(松月漫錄)』한국문집총간 속110집

 

  
  임득명은 조선 후기의 서화가로 자는 자도(子道), 호는 송월헌(松月軒)입니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적고 다만 중인 신분의 문사(文士)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시ㆍ서ㆍ화 삼절(三絶)로 일컬어졌다고 합니다.

  윗글은 임득명의 문집에 수록된 「부채[扇]」라는 시의 한 구절입니다. 부채는 여름철이면 사람들의 사랑을 받다가 가을이 되어 날이 선선해지면 버려지기 때문에 예로부터 ‘가을 부채[秋扇]’ 하면 사랑을 잃은 여인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많이 쓰였습니다. 또한, 더위와 추위에 따라 변하는 세상인심을 비판할 때도 비유적으로 많이 쓰였죠. 하지만 저자는 이 시에서 ‘이보게, 그런 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세상의 이치이니, 쓰이고 버려지는 것에 대해 특별히 좋아하거나 노여워할 것 없다네.’하는 달관의 경지를 보여 줍니다.

  후한(後漢)의 학자 왕충(王充)의 『논형(論衡)』이라는 책에는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름철의 화로와 겨울철의 부채’라는 뜻이니, ‘때에 맞지 않아 쓸모없는 사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되겠지요. 그렇지만 이 말을 뒤집으면 ‘동로하선(冬爐夏扇)’ 즉 ‘겨울철의 화로와 여름철의 부채’가 됩니다. 무엇보다도 요긴하고 필요한 존재가 되는 셈이지요.

  열심히 부채질하면서 이 여름의 무더위를 넘기다 보면 곧 선선한 가을이 돌아올 것입니다. 물론 그때가 되면 부채는 다시 어느 구석으로 처박히게 되겠지요. 그렇더라도 쓸모가 없어져 버려지는 데에만 초점을 맞춰 좌절하거나 쓰러지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내년 여름 다시 돌아올 자신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하여 쉬는 동안 열심히 종이에 기름칠하고 부챗살에 힘을 길러 두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글쓴이 : 조경구(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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