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득명은 조선 후기의 서화가로 자는 자도(子道), 호는 송월헌(松月軒)입니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적고 다만 중인 신분의 문사(文士)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시ㆍ서ㆍ화 삼절(三絶)로 일컬어졌다고 합니다.
윗글은 임득명의 문집에 수록된 「부채[扇]」라는 시의 한 구절입니다. 부채는 여름철이면 사람들의 사랑을 받다가 가을이 되어 날이 선선해지면 버려지기 때문에 예로부터 ‘가을 부채[秋扇]’ 하면 사랑을 잃은 여인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많이 쓰였습니다. 또한, 더위와 추위에 따라 변하는 세상인심을 비판할 때도 비유적으로 많이 쓰였죠. 하지만 저자는 이 시에서 ‘이보게, 그런 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세상의 이치이니, 쓰이고 버려지는 것에 대해 특별히 좋아하거나 노여워할 것 없다네.’하는 달관의 경지를 보여 줍니다.
후한(後漢)의 학자 왕충(王充)의 『논형(論衡)』이라는 책에는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름철의 화로와 겨울철의 부채’라는 뜻이니, ‘때에 맞지 않아 쓸모없는 사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되겠지요. 그렇지만 이 말을 뒤집으면 ‘동로하선(冬爐夏扇)’ 즉 ‘겨울철의 화로와 여름철의 부채’가 됩니다. 무엇보다도 요긴하고 필요한 존재가 되는 셈이지요.
열심히 부채질하면서 이 여름의 무더위를 넘기다 보면 곧 선선한 가을이 돌아올 것입니다. 물론 그때가 되면 부채는 다시 어느 구석으로 처박히게 되겠지요. 그렇더라도 쓸모가 없어져 버려지는 데에만 초점을 맞춰 좌절하거나 쓰러지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내년 여름 다시 돌아올 자신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하여 쉬는 동안 열심히 종이에 기름칠하고 부챗살에 힘을 길러 두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