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떠나간 아이를 그리워하며

백광욱 2014. 6. 12. 08:50

떠나간 아이를 그리워하며

 

 

떠나간 아이를 그리워하며

밝은 달은 너희 얼굴과 같아
밤마다 동쪽 정원에 떠오르누나
지난 일들 다 한스럽기만 하여라
저 하늘에 원통함 하소연하고프네
머리맡에 눈물은 새로 더해만 가고
꿈속에 떠도는 넋 마주하곤 한다
아직도 쇠잔한 꽃의 향기가 남아
서글프게 술병으로 들어오는구나

月華如汝面
夜夜上東園
萬事皆成恨
九天欲訴寃
新添枕邊淚
時接夢中魂
猶有殘花馥
凄然入酒罇

- 홍경모(洪敬謨, 1774~1851)
「월야억아(月夜憶兒)」
『관암전서(冠巖全書)』 책(冊)2
 



  올해(1800년) 늦봄에 마마가 돌았다. 첫째 아이 경증(慶曾)이와 셋째 아이 복증(福曾)이가 앓다가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첫째는 6살, 셋째는 돌을 열흘 남짓 남긴 때였다. 3월 25일 우이동(牛耳洞) 선영에 둘 다 장사지냈다. 깊은 산 속 덩굴로 뒤덮인 곳에 아이들을 두고 오자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지 여러 날이 지났지만 아픔에 짓눌려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멍하니 앉아 정원 동편으로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노라니 아이들 얼굴이 어슴푸레 떠오른다. 돌이켜보면 살갑게 얘기하며 함께 놀아주지 못한 것만 같아 가슴이 사무칠 뿐이다. 부친을 2살에 여의고 형제도 없는 내게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아이들마저 빼앗아 간 하늘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눈물로 얼룩이 진 베개에 새 눈물을 다시 적시며 지새우는 밤들, 흐느끼다 지쳐 설핏 잠이 들면 꿈속에서 다시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을 본다. 깨어서는 술을 부으며 잔인한 현실을 잊으려는데, 아이들을 조문하는지 봄의 조락(凋落) 속에 시든 꽃의 향기가 술병 속으로 퍼져 온다.

  ……지난해 오늘 밤 너희 형제가 난간에 기대어 등불을 바라보며 이곳저곳 가리키면서 웃던 소리가 귓가를 울리는데, 올해 오늘 밤에는 다시 어디에 있단 말이냐. 너희를 그리워하고 너희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에 잠긴 나는 시를 통해 그 슬픔을 풀어보고 싶었다만 차마 붓을 들지 못하였다. 힘겹게 붓을 들어 써내려 가려니 먼저 울음이 쏟아지고, 울려니 먼저 목이 메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구나. 오늘 이 밤이 되자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배나 더하여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다 애통함을 자아내는구나.…… 「곡아 병서(哭兒幷序)」

  ……너와 동갑인 아이를 보면 생각하고 너와 함께 놀던 아이를 보면 생각한다. 지선(紙扇)과 필묵(筆墨)을 보면서도 생각하고 진기한 물건, 아름다운 그림을 보면서도 생각하고, 밥을 먹으면서도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생각하고, 비가 와도 생각하고 바람이 불어도 생각하고, 달빛 아래 생각하고 꽃들 아래 생각한다.……만약 내가 생각을 할 수 없다면 그만이지만 만약 내가 생각이 있다면 끝없이 이어지는 나의 생각을 어느 때인들 그칠 수 있겠느냐. 아, 애통하구나.……「제망아생조문(祭亡兒生朝文)」

  홍경모는 문형(文衡)을 지낸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의 손자로, 4남 5녀를 낳았는데 이때 처음 두 아들을 잃었다. 3년 뒤 2월에는 넷째 아들과 첫째 딸 역시 마마로 잃는 등 3남 3녀를 일찍 보내고 아들 하나와 딸 둘을 겨우 성가(成家)시킬 수 있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내일은 없다. 어제, 지난달, 지난해, 그때만이 있을 뿐이다. 아이의 얼굴, 몸짓, 웃음을 떠올리고 되새기면서 슬픔과 회한(悔恨)에 사무치는 마음만이 잔해처럼 남는 것이다. 공자(孔子)의 제자 자하(子夏)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 너무 눈물을 흘린 나머지 시력을 잃었다고 한다. 시력만 잃었겠는가. 자식을 잃은 슬픔은 지워지지 않은 채 죽을 때까지 가슴에 응어리로 남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글쓴이 : 변구일(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교육 > 고전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을 찾아  (0) 2014.06.26
관리의 요건  (0) 2014.06.19
완전한 복은 없다  (0) 2014.06.05
사인암에 놀러간 사람, 살던 사람  (0) 2014.05.30
위기를 맞고도 안정시키려 하지 않으면  (0) 2014.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