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말할 때 사람들은 모기 같은 소리로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건 모기의 몸을 보고 만든 말이지, 모기의 소리를 듣고 한 말이 아닐 것 같습니다. 소리를 재어 데시벨로 표시한다면야 모깃소리는 천둥소리에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작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다가와 귓가를 앵앵대는 모깃소리라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피곤하면 천둥소리에도 개의치 않고 잘 수 있지만, 이 모깃소리에는 신경이 곤두서 잠을 설치게 됩니다.
그런데도 시인은 모기를 피해 방으로 들어가지 않기로 합니다. 온몸을 모기에 물려 박박 긁는 한이 있어도 놓칠 수 없는 풍경이 눈앞에 있기 때문에 그 자리를 뜰 수가 없습니다. 놓칠 수 없는 풍경은 다름 아닌 휘영청 밝은 가을 달의 모습입니다. 모기에 물리는 일을 감수할 만큼 가을 달이 매력적인 것은 가을 달을 보면 마음이 밝아지기 때문입니다. 생활 속에서, 사람들 관계 속에서 뾰족해지는 마음이 가을 달을 보는 동안 절로 둥글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렇게 귀한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야 그깟 모기에 물리는 것이 대수냐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성가시게 한 모기를 용서할 수는 없나 봅니다. 날이 추워져 서리가 내리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일러줍니다.
윤선도는 1636년 12월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배를 타고 강도(江都)로 달려갔으나 길이 막혀 도로 해남(海南)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안을 여쭙지 않았다는 이유로 1638년 6월 체포되어 영덕(盈德)으로 유배됩니다. 이 시는 그 후 다시 석방되어 해남으로 돌아와서 지은 시입니다.
달을 감상하고 소소한 일상을 읊은 시를 두고 정치적인 상황을 결부시켜 해석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산수 속에서 달을 감상할 수 있는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것도 말 많은 세상에서 이런저런 풍파를 다 겪은 후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체득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을 보는 마음이 큰 어려움을 모르던 시절과는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먼 길을 돌아온 뒤에야 본래 자리에서 보는 풍경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윤선도가 정철(鄭澈), 박인로(朴仁老)와 함께 조선의 3대 가인(歌人)으로 불리게 된 데에는 풍파도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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