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슈퍼문 아래에서

백광욱 2026. 2. 20. 01:34

 

슈퍼문 아래에서

 

오랜 비 끝에 어렵사리 맞은 갠 밤  
동대로 산보하니 하루 지각한 달이 뜨네.

 

剛因積雨得新晴 步出東臺遲月生

강인적우득신청 보출동대지월생

 

 - 최립(崔立,1539~1612), 『간이집(簡易集)』 「열엿샛날 밤.

이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달구경을 하였다.[十六是日方爲月望]」 1~2구

 

2025년 11월 5일 밤, 슈퍼문이 뜬다고 했다. 밤 10시 19분에 가장 둥근 모양을 이룬다는 기사를 보고, 아파트 작은 공원에 삼각대를 세웠다. 달은 이미 높이 돋아 멀리까지 비추고 있었다. 시계를 보며 10시 19분을 기다렸다가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주어진 시간은 단 1분. 나는 블로그 제목까지 떠올렸다. ‘가장 둥근 시점. 10시 19분의 달’

  뷰파인더로 본 달은 생각보다 작아서 노출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안경을 벗고 작은 LCD에 집중하다보니 땀이 났다.

  렌즈 너머로 달을 보던 한 어르신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달이 참 밝긴 하죠?”

  나는 웃음만 지었다. 가장 둥근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10시 20분이 되자 이제 ‘의미 있는 시간대’가 지났다고 생각하고 삼각대를 접었다.
 
  최립(崔立, 1539~1612)은 영동지방 여행 중 보름달을 맞았다. 그러나 그날은 비가 내려 보름날이 아닌, 하루 늦은 기망(旣望), 즉 16일에 달을 보았다. '지각한 달이 뜨네(遲月生)’이라는 표현에 미소가 나왔다. 이 시의 앞에는 심한 가뭄을 겪는 영동지방에 ‘한번 억수로 쏟아져서 농민을 위로해 주었으면(「志喜雨」)’이라고 읊었는데, 보름까지 정말 비가 내린 것이다. 긴 가뭄 끝에 내린 단비였으니, 달이 하루 늦게 나타난 것은 오히려 은혜로운 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시의 3, 4구의 표현도 인상적이다. 16일에 뜬 달이 진실로 꽉 찼다는 것이다. ‘걸음쇠로 그린 원에 꽉 찼다(規正滿)’는 표현은 11월 5일에 내가 본 슈퍼문을 떠올리게 했다. 최립은 말한다. ‘비 때문에 달구경 못한 사람들은 억울하기도 할 것이오, 그러나 내려야 할 비도 내렸고 저렇게 꽉 찬 달도 보았으니 이제 마음을 푸는 게 어떻소?’
 
  11월 5일에 찍은 달은 노트북 배경화면에 밝게 떠 있다. 완벽하게 둥근 시간을 맞추었고 300mm 렌즈로 당긴 달은 표면까지 잘 표현되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나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없다. 좀 더 천천히 찍을 걸 그랬나. 아내와 같이 나올 걸 그랬나. 높이 뜬 달, 밝은 빛. 그래도 어딘가 아쉽다. 소원이라도 빌 걸... 아니다. 아쉬움은 그 탓이 아니다. 

  “어르신도 달구경 나오셨어요?”라고 했어야 했다. 아쉬움을 덜면 의미가 보태진다. 그 시간에는 그랬어야 했다. 
 

*덧붙임 : 보름달의 크기는 때마다 달라서 경우에 따라 16일 기망에 완전히 둥근 달이 되기도 한다는 기사가 있다.

 

 

글쓴이   :    김동현
  '한국고전종합DB' 활용 공모전 고전명구 부문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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