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는 자가 강한 자다
포용력이 있으면 남을 이해할 수 있고, 참을성이 있으면 강인하게 됩니다.
남을 이해하면 화내는 일이 없을 것이요 강인하면 마음에 흔들림이 없게 될 것입니다.
容能恕, 忍能強, 恕則無慍, 強則不動.
용능서, 인능강, 서즉무온, 강즉부동.
허목(許穆, 1595~1682), 『기언(記言)』 별집(別集) 권17, 「진천송씨묘표(鎭川宋氏墓表)」
이상현(李象賢)은 그의 아내 진천송씨가 사망하자, 아내가 생전에 자신에게 해주었던 충고를 특기하는 내용의 편지를 허목에게 보내 묘도문자를 부탁하였다. 성격이 편협하고 성급하여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하던 남편에게 아내는 포용력과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고 애정 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남편은 아내의 이 말이 아주 마음에 와 닿고 사무치게 고마웠던 듯하다.
참지 않고 터뜨려야 통쾌하다고 보는 시각은 예나 지금이나 있었다. 최근에 이러한 풍조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듯하다.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즉각적으로 생각을 표출하면 시원스럽게 여겨질 법도 하다. 속도가 중요한 첨단 사회에서 자연히 ‘느림’을 수반하는 ‘참는다’는 행위는 답답하게 보일 수 있고, 심지어는 자신감 없이 패배를 자인하는 모양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눈앞의 상황에만 일희일비 하지 않고 멀리 내다보면, 통쾌한 호승심은 찰나의 우쭐거림에 불과할 뿐이다. 이롭지 못한 상황에 처한다 해도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진중한 자세로 참을 수 있어야 진정으로 강인해질 수 있다. 절망적인 상황, 참담한 결과,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평판, 무시나 조롱 따위를 맞닥뜨리더라도 참을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참을 줄 아는 도량이야말로 단단한 내면과 넉넉한 능력을 가진 진정한 강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다.
진천송씨가 남편에게 해주었던 우리말의 원형(原形)이 어떠하였는지 지금 알기 어렵지만, 남편의 전언(傳言)을 통해 허목이 한문으로 기록한 언명은 유가 경전을 체득했던 유자의 사고방식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서경』과 『논어』, 『맹자』가 천의무봉으로 융합되어 있다.
조선 제17대 임금 효종은 1658년 12월 27일에 송시열에게 “근일부터는 화가 날 만한 일일 경우엔 참고 놔두었다가 밤에 생각하여 화가 점차로 풀린 다음에 처리하므로 과오가 적게 되었다.”라고 자신의 속내를 밝힌 적이 있다. 깜깜하고 고요한 밤이 될 때까지 묵혀두었다가 평정심을 회복한 뒤에 착수하였다는 방법이 실로 지혜롭다. 산처럼 뻗쳐올랐던 노기라 할지라도 결국 시간이 해결해주기도 하고 나 자신의 의지로 다스릴 수도 있다.
한편으로 일상에서 분노를 참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음 또한 인지상정이다. 그렇기에 공자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움을 품지 않으면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라고 하여 그 고아한 경지를 찬미하였으리라. 성이 나는데 꾸역꾸역 참는 것이 아니라 아예 노여워하는 마음 자체가 생기지 않는 경지를 뜻한다. 군자다운 사람이라야 그렇게 할 수 있다.
어느 가정에서나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소망한다. 집안이 화목하려면 가족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참고 또 참아야 한다. 부모자식간, 부부간, 형제간에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불만이 있더라도 참아내면 단란한 가정이 될 수 있고, 이것이 만사형통의 지름길이다. 당나라 장공예(張公藝)의 집안은 가화만사성을 구현한 대표적인 사례로 일컬어지는데, 그 토대는 다름 아닌 ‘백인(百忍)’의 마음가짐이었음을 곱씹어본다.
글쓴이 : 김종민
퇴계학연구원 정본퇴계전서 국역사업팀 연구원
퇴계학연구원 정본퇴계전서 국역사업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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