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올해 소원

백광욱 2026. 2. 13. 02:33

 

올해 소원

 

한가한 나그네가 한가한 삶에 익숙해지니
몸이 편안하여 하는 일마다 좋구나
혼자서 말하다가 이내 크게 웃고
홀로 앉았다가 문득 시를 읊조린다
띠는 꼭 맞아 허리에 찬 것도 잊었고
갓은 가벼워 머리에 쓴 것도 모른다네
일생이 이렇게 좋다면야
다시 무슨 말로 축원할까

 

閑客閑居熟     한객한거숙
身安事事宜     신안사사의
獨言仍放笑     독언잉방소
孤坐忽吟詩     고좌홀음시
帶適腰相忘     대적요상망
冠輕髮不知     관경발부지
一生如許好     일생여허호
更欲祝何辭     갱욕축하사

 - 임상덕(林象德, 1683~1719) 『노촌집(老村集)』 권1 「춘첩(春帖)」 임오년(1702, 숙종28) 

 

 새해가 되면 우리는 저마다 소원을 빈다. 시험을 준비하는 입시생은 합격 소원을, 건강이 안 좋은 환자는 건강 소원을, 아이를 원하는 여인은 아이 소원을. 꼭 이런 특정한 상황에 있지 않은 보통 사람도 올해는 장사가 잘되었으면 한다거나 주식 가격이 올랐으면 한다거나 몸이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거나 자녀가 잘 자랐으면 하는 등, 각자 올해 꼭 이루었으면 하는 일들을 마음속으로 빈다.

  소원을 비는 장소와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동해에서 일출을 보거나 산 정상에 올라 일출을 보며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기도 하고,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기도 제목에 소원을 적거나 절에서 기왓장에 소원을 적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소박한 소원을 빈 사람이 있다. 바로 글의 작자인 노촌(老村) 임상덕(林象德)이다. 그가 새해에 이루고 싶은 일은 과거 급제나 출세가 아닌 시골집에서 조용하고 한가하게 사는 것이었다. 이런 소원은 조선의 유학자라면 그다지 유별난 게 아니다. 조선 시대 유학자는 보통 입신출세(立身出世)하여 벼슬을 하다가 정쟁(政爭)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벼슬살이에 싫증이 나거나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은거를 꿈꾸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작자가 처한 상황은 조금 달랐다. 그의 나이 20세이던 1702년(숙종28)에 자신의 소원을 담은 이 춘첩(春帖)을 지은 것이다. 이때 그는 아직 벼슬에 나가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고 박학하여 벌써 17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훗날의 일이지만 23세에 초시(初試), 회시(會試), 전시(殿試)에 모두 장원급제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었다. 지금 같으면 검사나 의사도 쉽게 했을 전도유망한 청년이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삶을 살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을 찾기 전에 우선 위 시를 살펴보자. 

  위 시는 전라남도 무안(務安) 출신인 임상덕이 서울에 있다가 18세에 백부 임세온(林世溫)의 후사가 된 뒤 다시 무안으로 내려와 지내는 동안 지은 작품으로 보인다. 어릴 적 서울과 무안을 오가며 생부 임세공(林世恭)의 엄한 훈육 속에서 공부에 매진하다가 다시 시골에 오니, 너무나 한가하고 평화로워 모든 일이 마음에 맞았다. 그래서 혼자 말하다가 이내 크게 웃기도 하고 혼자 앉아 있다가 시를 읊조리기도 하였다. 거추장스러운 형식은 모두 내려놓았기에, 허리띠를 찼는지 모를 정도로 꼭 맞았고 갓도 썼는지 모를 정도로 가벼웠다. 구속됨이 없이 자연과 하나 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삶이다. 평생 이렇게 살 수 있다면 굳이 뭐하러 소원을 빌겠는가.

  같은 해에 지은 같은 제목의 칠언절구에서도 그가 추구하는 삶을 엿볼 수 있다.

 

반년 동안 강호에서 은거한 백성 되어           半歲江湖作逸民
뽕밭 삼밭 일구고 우물 파니 평생 봄이로다    桑麻耕鑿百年春
한가하여 절로 세속의 흥취 적어지니            蕭然自少塵中趣
무릉도원이 일마다 진짜일 필요 없지            不必桃源事事眞

반년 동안 강호에 묻혀 지내면서 태곳적 순박한 사람들처럼 누에치고 길쌈하며 목마르면 우물 파서 마시니 백년 평생이 봄날처럼 태평하다. 이렇게 한가한 삶에 젖어 들다 보니 세속의 명리(名利)에는 관심이 적어진다. 마지막 구절이 백미이다. 그 옛날 진(秦)나라 유민(遺民)들이 숨어 살았다던 무릉도원이 실제 존재하는지 따질 필요 없이, 지금 강호에서 자신이 누리는 이 평온한 삶이 바로 낙원이라는 만족감을 표현하고 있다.

  위 시의 제목이기도 한 ‘춘첩(春帖)’은 봄을 맞이하여 기원을 쓴 종이로, 보통 입춘 날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새해 첫날에 쓰기도 하였다. 이 글을 입춘 날 썼는지 아니면 새해 첫날에 썼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 해의 기원을 기록한 것임은 틀림없다.

  이제 다시 그가 은거를 꿈꾼 이유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자. 조심스럽게 예상해 보자면 이렇다. 승지를 지낸 증조부 임련(林堜)이 벼슬을 일찍 사양하고 바닷가 산의 원림(園林)을 즐겨 무안으로 이사를 왔다. 부친 임세공은 증조부의 가업(家業)을 이어받아 과거와 벼슬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말년에는 소옹(邵雍)의 ‘안락와(安樂窩)’를 본떠 거처하는 방의 이름을 ‘의침와(欹枕窩)’라고 지어 참된 본성을 기르며 처사(處士)의 삶을 살았다. 임상덕은 이런 선조들의 삶을 동경한 것으로 보인다.

  훗날 임상덕이 요직(要職)에 들어갔음에도 물러나겠다고 하자, 부친은 ‘강산이 이토록 좋으니 부자(父子)가 손잡고 거닐며 세상을 벗어난 사람이 된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느냐.’라고 하며 그의 사직을 적극적으로 찬성하였다.

  사람들은 소원을 빌 때, 올해는 돈을 더 많이 벌었으면 한다거나 승진해야 한다거나 더 큰 집으로 이사 가야 한다는 등,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는 데 집중하는 듯하다. 하지만 작자처럼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소박하게 사는 삶도 멋진 것 같다. 늘 인기 순위 1위를 달리는 유명 개그맨의 소원은 올 한 해도 무탈하게 지내는 것이었다.

 

글쓴이   :   최이호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