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하늘은 푸르고 푸른데

백광욱 2025. 12. 30. 01:12

 

하늘은 푸르고 푸른데

 

하늘을 보면 푸르고 푸른데,

‘하늘 천(天)’ 자는 푸르지 않으니

이 때문에 싫어할 뿐입니다.

 

視天蒼蒼, 天字不碧, 是以厭耳

시천창창, 천자부벽, 시이염이

 

  -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연암집(燕巖集)』 권5 「답창애3(答蒼崖[之三])」

 

위 구절의 출처는 연암 박지원의 수필, ‘답창애(答蒼崖)’. ‘창애에게 답하다.’라는 뜻으로, 당대의 문장가 창애 유한준에게 연암 박지원이 보낸 세 번째 편지이다.

 

  세 번째 편지의 내용은 천자문과 관련이 있다. 연암이 마을의 어린아이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는데, 아이가 글 읽기를 싫어하자 연암은 공부를 멀리해서는 안 된다고 꾸짖는다. 그러자 아이는 어른 연암을 흠칫하게 만드는 대답을 한다. “하늘을 보면 푸르고 푸른데, ‘하늘 천()’ 자는 푸르지 않으니 이 때문에 싫어할 뿐입니다.”

 

  천자문의 첫 문장은 天地玄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왜 하늘을 검고 어둡다고 표현했을까? 옛사람들에게 하늘은 숭고한 신성(神聖)의 세계였다. 만물의 시작이자 절대 닿을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 알 수 없는 세계는 암흑과도 같았으니 天地玄黃이라는 문장이 탄생하게 되었다.

 

  지고한 뜻을 담아 문장을 지었지만, ‘푸른 하늘의 모습은 미처 담지 못한 걸까? 아이는  자는 푸르지 않다고 따진다. 순수한 눈으로 본 하늘은 푸르고 푸르기만 한데, 어른들은 天地玄黃이라는 난해한 문장을 들이밀고는 왜 이해하지 못하냐며 읽기 싫어하는 아이를 꾸짖기만 한다. 지고한 뜻을 담아냈을지는 몰라도 당장 눈앞의 푸름은 담아내지 못한 듯하다. 아이가 이를 지적하자, 어른들은 할 말이 없어진다.

 

  어른들이라고 하늘이 푸른 줄 몰랐을까. 하늘이 푸른 건 누구나 안다. 단지 어른들은 푸른 하늘 너머의 검고 신비로운 하늘을 알게 된 이후, 그곳에 집중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편 아이들은 이해 못 한 채 수용해야만 했을 것이다.

 

  공부하고 지식을 넓혀갈수록, 우리는 더 열린 시야와 사고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더 편벽 해지기도 하고, 가장 기본적인 것을 간과하기도 한다. 마음과 생각이 이미 그 지점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다른 이가 어디까지 배웠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고려하지 못한 채 일방적인 소통을 강행하기도 한다. 애매하게 아는 사람만 이러할까? 글쎄, 그런 차원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대학(大學)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무엇을 못 보고 있을까? 스스로 알기 어렵다면,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한 방법일지 모른다. 물론 어린아이의 일침에 흠칫할 자세 또한 준비해야 하리라.

 

글쓴이   :    이지승
'한국고전종합DB' 활용 공모전 고전명구 부문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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