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박하게 처신하지 말라 !
타인을 상대할 적에 모질게 박대해서는 안 되고, 자기를 다스릴 때 너그럽게 용서해서는 안 된다.
待人不可刻薄, 治己不可寬貸.
대인불가각박, 치기불가관대.
유도원(柳道源, 1721~1791), 『노애집(蘆厓集)』 권6, 「일성록(日省錄)」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말의 순서대로 보자면,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이라는 단문의 준말로, 곧 ‘타인을 대할 적에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하고, 자기를 수양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준엄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하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이와 같은 말이 회자되어 의식적으로라도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강조해 왔던 듯하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존심편(存心篇)」에서도 “타인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기를 꾸짖으면 허물이 적을 것이요,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타인을 용서하면 사귐을 온전하게 할 것이다〔以責人之心責己, 則寡過, 以恕己之心恕人, 則全交.〕”라고 하였다. 실로 인정세태를 절묘하게 묘파하면서 인생살이에 적절히 활용할 만한 보배로운 지침이다.
노애 유도원의 「일성록」에서 뽑은 이번 명구의 내용은 ‘춘풍추상’ 및 『명심보감』의 ‘책기서인(責己恕人)’ 과 맥락이 부합한다. 원문에 나온 ‘각박(刻薄)’은 사실 요즘에도 많이 쓰는 말이어서 이 구절만 놓고 생각하면 원문의 음가 그대로 번역어로 취해도 자연스럽기는 하다. 다만 뒷 구의 ‘관대(寬貸)’가 ‘관대(寬大)’와 다른 말이므로 ‘각박’처럼 처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두 말 모두 한 글자 한 글자 풀었다.
필자는 이 두 구절 중에서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더 초점을 맞춰 보고자 한다. 『조씨객어(晁氏客語)』에는 ‘각박하게 구는 것을 총명한 것이라 여기는데, 이는 잘못이다’라고 하였다. 남한테 인정머리 없이 야멸치게 굴고는 저 혼자 총명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헛똑똑이이다. 이해타산을 따져 문전박대하고는 제 자신이 총기가 있다고 자부하지만 결국 득은 없고 실만 있다. 너무 각박하게 굴었기 때문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만큼 매몰차게 행동하면 사람을 잃고 그러다 보면 많은 것을 잃는다. ‘남을 대할 때 조금이라도 너그러운 처신이 복을 받으니, 남을 이롭게 하는 처신이 실상은 자기를 이롭게 하는 바탕이다’라고 한 『채근담』의 경구를 같이 음미하면 의미 파악이 더 선명해진다.
조선시대에 친구네 집에 놀러간 김 선생은 술안주로 나물만 내온 친구에게, 자기가 타고 온 말을 잡아 술안주로 삼자고 하였다. 친구가 ‘그러면 집에 어떻게 갈 거냐’고 묻자, 김 선생의 대답이 걸작이다. ‘닭을 빌려서 타고 돌아가지.’ 친구네 집에서 키우고 있던 닭을 두고 한 농담이었다. 김 선생은 친구에게 ‘왜 저 닭을 잡아 술상에 올리지 않았느냐’고 쏘아붙이지 않았다. 에둘러 말하는 해학으로 옹졸한 마음의 벽을 허물어버렸다. 가벼운 일상 속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각박하게 대하지 않는 행동을 해나갈 수 있다. 연세 드신 어떤 선생님이 학교에서 치마를 짧게 입은 한 학생에게 ‘감기 들겠다’라는 걱정의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너무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지 말라는 꾸지람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될 수 있으면 적을 만들지 말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누구에게나 바람직하다. 규각(圭角)을 세워 송곳을 휘두르듯 상대방의 마음을 후벼 파면 그 사람만 다치는 것이 아니다. 각박하게 처신하면 당장은 이로운 상황에 처한 것 같이 느낄 수도 있겠으나 그 냉기가 종국에는 나에게로 되돌아 온다. 따스한 봄바람처럼 온기가 담긴 말 한 마디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겠다.
글쓴이 : 김종민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BK 동아시아 고전학 미래인재 교육연구팀 연구교수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BK 동아시아 고전학 미래인재 교육연구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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