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고불고론 (觚不觚論)

백광욱 2025. 11. 20. 05:04

고불고론 (觚不觚論)

 
천지의 사이에는 하나의 이치일 뿐이다. 크게는 천하의 만물이 모두 하나의 이치이며, 작게는 사물의 미세함도 하나의 이치이다. 하나의 이치라는 것은 다르지만 같게 보는 것을 말한다. 이 이치는 하나이면서 만 가지이고 만 가지이면서 하나이며, 은미하면서도 드러나고 드러나면서도 은미하다. 하나이면서 만 가지에 흩어져 있고 만 가지이면서 하나에 근본하니, 하나는 이치의 요체이고 만 가지는 이치의 다름이다. 은미하면서 드러남으로 귀결되고 드러나면서 은미함에 깃들어 있으니, 은미함은 이치의 오묘함이고 드러남은 이치의 작용이다. 
 
  세상에서 만 가지 이치가 하나에 근본한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자가 몇 명이겠는가. 하나에 근본하면서 한 조각의 말에 모두 갖추어져 있고 지극히 은미하면서 한 마디 말에 밝게 드러나니, 이것이 성인의 말씀이 되는 이유이다. 성인의 말씀은 넓고 깊어 한 마디 말이 하나의 이치가 되고 만 가지 이치가 한 마디 말이 되니, 공자께서 말씀하신 “고(觚)가 모나지 않다[觚不觚]”는 것은 말과 표현은 비록 간략하지만 포함된 뜻은 또한 만 가지 이치에 귀결된다. 
 
  ‘고(觚)’라는 것은 모난 물건이다. 사람이 그릇을 만들 때에 모두 정해진 제도가 있으니, 모나면서 둥글지 않은 것이 있기도 하고 또한 둥글면서 모나지 않은 것이 있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모난 것을 바꿔 둥글게 만들면 모난 것이 모난 것이 아니게 되고, 둥근 것을 고쳐 모나게 만들면 둥근 것이 둥근 것이 아니게 된다. 그것을 고쳐서는 안 되는 이유는 마땅히 모나야 하고 마땅히 둥글어야 하는 이치가 있기 때문이다.  
 
  주(周)나라가 쇠퇴하자 ‘고(觚)’를 만드는 사람이 그 제도를 잃어 모나게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공자가 이렇게 탄식한 것이다. 하남(河南)의 정자(程子)가 공자의 말을 해석하면서 말하기를, “그릇 하나를 거론하였지만 천하의 사물이 모두 그렇지 않음이 없다.”라고 하여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고, 사람이 사람답지 않고,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은 것으로써 고(觚)가 모나지 않은 것에 비교하였다. 아, “고불고(觚不觚)”라는 세 글자는 공자에게 있어서는 은미하게 하나의 이치가 된 것 같지만 정자에게 있어서는 만 가지 이치가 되었다. 정자가 없었다면 누가 이 한 마디 말이 만 가지 이치를 포괄하여 이 같이 깊고 절실하며 드러내 밝히고 있음을 알 수 있었겠는가. “고(觚)” 한 글자를 들었지만 모든 이치가 다 그 안에 있는 것이다. 
 
  임금이 되어 임금의 도를 다하는 것은 임금의 고(觚)이고, 신하가 되어 신하의 직분을 다하는 것은 신하의 고(觚)이고, 사람이 어진 것은 사람의 고(觚)이고, 나라가 다스려진 것은 나라의 고(觚)이다. 만약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고, 사람이 어질지 않고, 나라가 나라답지 않다면 이는 ‘불고(不觚)’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춘추시대에는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은 경우가 많았으니, 모든 나라가 다 그러했다. 사람이 사람답지 않고 나라가 나라답지 않았으니, 모든 나라가 다 그러했다. 천하를 아파하는 성인의 마음으로 쇠퇴한 시대에 처하여 당시의 임금, 신하, 사람, 나라를 보았다면 당시의 임금, 신하, 사람, 나라가 고(觚)가 되었겠는가. 시대를 아파하는 마음이 문득 마음에 일어 바로 고(觚)라는 한 글자에 드러낸 것이다. 그 뜻은 혼연하여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으니 참으로 일반 사람들이 헤아려 알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정자가 하나의 이치를 가지고 성인의 말을 깊이 연구하고 성인의 뜻을 깊이 탐구하여 말로 표현되지 않은 깊은 뜻을 미루어 넓혀 후세를 깨우쳤으니, 이를 통해 성인의 말씀은 현인을 통해서 밝게 드러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성인의 말이 오로지 당시 사람들이 모나게 만들지 않은 것 때문이며 달리 깊은 뜻이 없다고 말을 한다면 이는 성인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다. 성인의 말은 은미하여 겉으로 드러난 흔적이 없어 보이는 것이 많으니, 반드시 평이하게 말하고 바로 설명한 뒤에 성인의 말을 알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성인의 말은 이치일 뿐인데, 정자의 말은 그 이치를 잘 탐구했다고 말할 만하다. 만약 이 이치를 들어 또 반복해 미루어 나간다면 그 이치가 어찌 그저 임금이 되고, 신하가 되고, 사람이 되고, 나라가 되는 네 가지에 그치고 말겠는가. 
 
  고(觚) 한 글자는 포괄하지 않음이 없으니, 가볍고 맑아 위로 올라가는 것은 하늘의 고(觚)이고, 무겁고 탁하여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땅의 고(觚)이고, 땅에 우뚝 솟고 바다로 흐르는 것은 산과 언덕과 강과 못의 고(觚)이고, 봄에 꽃이 피고 가을에 잎이 지며 나무에 둥지를 틀고 굴에 사는 것은 초목과 조수의 고(觚)이다. 그 밖의 형형색색, 사사건건 모든 것에 고(觚)가 있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는 절로 그러한 이치이다. 만약 이 이치에 어긋나면 하늘은 하늘이 될 수 없고, 땅은 땅이 될 수 없고, 산과 언덕과 강과 못은 산과 언덕과 강과 못이 될 수 없고, 초목과 조수는 초목과 조수가 될 수 없다. 아아, 이치는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니, 하나이면서 만 가지이고, 은미하면서 드러난다. 하나를 통해 만 가지를 알 수 있고, 은미함을 통해 드러난 것을 알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공자가 은미하게 말한 이유이며 정자가 미루어 넓힌 이유일 것이다. 
 

 

天地之間, 一理而已. 大而天下萬物, 皆一理也, 小而事物細微, 亦一理也. 一理云者, 異而同之謂也. 是理也, 一而萬也, 萬而一也, 微而著也, 著而微也. 一而散於萬, 萬而本於一, 一爲理之要也, 萬爲理之殊也. 微而歸於著, 著而寓於微, 微爲理之妙也, 著爲理之用也. 世之能通萬理之一本者, 幾何人耶? 一本而兼該於片言, 至微而昭著於一語, 所以爲聖人之言, 而聖人之言, 廣博淵深, 一言爲一理, 萬理爲一言, 則仲尼所稱觚不觚者, 辭雖約, 語雖簡, 而意之所包, 亦歸於萬理也. 夫觚者, 物之有稜者也. 凡人造器, 皆其制, 或有方而不圓者, 亦有圓而不方者. 若使方者改而爲圓. 則方者非方也, 圓者改而爲方, 則圓者非圓也. 其所以不可改者, 以其當爲方當爲圓, 而有理存焉故也. 方周之衰, 爲觚者, 失其制而不爲稜, 故夫子有是歎焉. 河南程子, 釋夫子之言曰, 擧一器而天下之物, 莫不皆然. 至以君之不君, 臣之不臣, 人而不人, 國而不治, 爲比於觚之不觚. 噫, 觚不觚三字, 在夫子, 隱然若爲一理, 而在程子, 顯然爲萬理也. 微程子, 則孰知一言之包括萬理, 如此其深切著明哉? 擧一觚字, 而象理盡在其中矣. 夫爲君而盡爲君之道者, 君之觚也. 爲臣而盡爲臣之職者, 臣之觚也. 人之仁者, 人之觚也. 國之治者, 國之觚也. 若使君不君, 臣不臣, 人不仁, 國不國, 則不得不爲不觚也. 春秋之時, 君不君, 臣不臣者, 多矣, 國皆是也. 人不人, 國不國者, 多矣, 列國皆然也. 以聖人傷天下之心, 處於衰世, 而見當時之君之臣之人之國, 則其當時之君之臣之人之國, 爲觚者乎? 傷時之心, 忽起於方寸, 而遽形於觚之一字. 其意渾然, 不露圭角, 固非衆人所能測識, 而程子以一理, 而深究聖人之言, 深探聖人之志, 推廣言外餘意, 以詔後世, 可以見聖人之言待賢人而明也. 若曰夫子之言, 專爲時人之不爲稜, 而無復餘意, 是未知聖人之心者也. 聖人之言, 類多隱然若無形跡, 不必平言直說而後, 可以知聖人之言矣. 聖人之言, 理而已矣. 程子之言, 可謂善窮其理矣. 若擧此理, 而又反覆推之, 則其理豈止於爲君爲臣爲人爲國四者哉. 觚之一字, 無所不該焉, 則輕淸而上者, 天之觚也. 重濁而下者, 地之觚也. 鎭峙于地, 朝宗于海者, 山陵川澤之觚也. 春榮秋落, 木巢穴處者, 草木鳥獸之觚也. 其餘形形色色, 事事物物, 亦莫不有觚, 此自然之理也. 若反於是理, 則天不得爲天, 地不得爲地, 山陵川澤, 不得爲山陵川澤, 草木鳥獸, 不得爲草木鳥獸矣. 嗟夫, 理在穹壤間, 一而萬也, 微而著也. 以一而可知其萬, 以微而可知其著, 此仲尼之所以微言, 而程子之所以推廣也歟.

- 심언광(沈彥光) 『어촌집(漁村集)』 권9 「고불고론(觚不觚論)」 -

 

『논어』 「술이(述而)」편에 “觚不觚면 觚哉觚哉아”라는 공자의 말이 있다. 앞뒤에 아무런 상황 설명 없이 공자의 말이라 하면서 이 7자만 기록되어 있다. 이를 글자대로 번역하면 “‘고(觚)’가 모나지 않으면 ‘고’이겠는가. ‘고’이겠는가.”이다. 문법적으로는 아무 어려울 것이 없지만 현재에 잘 쓰이지 않는 “觚”라는 글자의 의미를 모른다면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觚”는 형용사로는 ‘모나다’, ‘각지다’의 뜻이고, 명사로는 고대 의식에 사용하던 술그릇의 한 이름이다. 고대에는 모양과 용도에 따라 고(觚), 작(爵), 치(觶), 굉(觥), 준(尊), 호(壺), 유(卣), 뢰(罍) 등 각기 이름을 달리하는 많은 종류의 술그릇이 있었는데, ‘고’도 그 중 한 종류이다. 그런데 이 ‘고’라는 술그릇이 많은 이름 중에 하필 ‘모나다’라는 뜻을 지닌 ‘觚’라는 글자의 이름을 얻은 데에는 매우 단순하고도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 술그릇의 모양이 둥글지 않고 각진 모가 나있기 때문이다. 육각면체로 뭉쳐진 설탕을 ‘각설탕’이라 이름하고, 네모지게 각진 파이프를 ‘각파이프’라 이름 붙인 것과 같은 것이다. ‘각설탕’이라 이름 붙여진 설탕이 둥근 모양이라면 그것을 각설탕이라 할 수 있겠으며, ‘각파이프’라 이름 붙여진 파이프가 둥근 형태라면 그것을 ‘각파이프’라 할 수 있겠는가. 또한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학생’ 또는 ‘학자’가 공부를 하지 않으면 그를 ‘학생’ 또는 ‘학자’라 할 수 있겠으며, 남을 가르치고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스승’이라 하는데 그럴 능력과 자질이 없는 사람을 ‘스승’이라 할 수 있겠는가.
 
  붙여진 이름이 실상에 맞지 않으면 더 이상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데 “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가 그것이며, 그 이름이 제대로 이름값을 하는 것이 바로 “君君, 臣臣, 父父, 子子”인 것이다.(『논어』 「안연(顏淵)」 11장) 말은 매우 지당하여 달리 토를 달 것이 없지만 현실은 이름과 실상이 어긋난 경우가 매우 많다. 그리고 또 이를 지적해 바로잡아야 하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방관 또는 동조하면서 바로잡기는커녕 더욱 조장하는 경우도 있다. 조선시대의 폭군인 연산군의 시대에 공길(孔吉)이라는 광대가 있었는데, 그는 연회의 자리에서 연산군에게 『논어』의 이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는 말을 했다가 곤장을 맞고 유배를 갔다고 한다.(연산군일기 11년 12월 29일) 당시 수많은 고관대작과 선비들은 다 어디를 갔기에 광대인 공길이 연산군에게 임금다운 임금이 되라는 충고를 하고 있는 것인가. 
 
  이름이 이름값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명(正名)’인데, 공자는 위(衛)나라를 위한 정사에서는 이름을 바로잡는 ‘정명(正名)’을 우선해야 함을 강조하기도 하였다.(『논어』 「자로(子路)」 3장) 당시 위나라는 영공(靈公)의 뒤를 이어 그의 손자인 첩(輒)이 임금으로 있었는데, 망명한 아버지인 괴외(蒯聵)와 갈등관계를 이루고 있었으며, 그 후에 결국 아버지와 아들간의 왕권 다툼으로 이어져 임금으로 있던 아들이 쫓겨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父不父, 子不子’의 상황 속에서 공자의 ‘정명’이라는 처방이 나온 것이다. 당시에 상황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이름이 이름값을 못하는 것이 어디 위나라뿐이었겠으며, 어찌 나라의 정치 상황뿐이었겠는가. 이를 탄식하며 한 말이 바로 “觚不觚”인 것이다.
 
  제(齊) 나라의 선왕(宣王)이 맹자에게, 탕왕(湯王)이 당시의 천자였던 걸왕(桀王)을 내쫓고, 무왕(武王)이 당시의 천자였던 주왕(紂王)을 정벌한 사실이 있느냐고 물으면서 신하가 그 임금을 시해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아울러 물은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맹자는, 잔학한 짓을 행하는 자는 더 이상 임금이라 부를 수 없고 일개 사내라 불러야 하니, 일개 사내를 정벌한 일은 있고 임금을 시해한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주왕(紂王)은 오직 자신의 부인의 말만 따르면서 그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기괴한 방식의 형벌을 시행하고, 간언을 하는 훌륭한 신하의 심장을 도려내고,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늘 술에 빠져 살았으니 이런 자를 어찌 임금이라 할 수 있겠는가. 백성을 보호하고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이 임금의 기본 역할인데 이 역할을 하지 않고 오히려 백성을 학대하여 못살게 하니 임금이 임금답지 않은 것이고, 임금답지 않은 임금은 더 이상 임금이 아닌 것이다. 임금이 아닌 자가 임금 노릇을 하고 있으면 이를 끌어내 바꿔야 하니, 이것이 바로 혁명(革命)이다. 이름값에 부합하지 않은 결과가 어디까지 이르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름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경계해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술그릇 이름 하나를 거론한 것에 불과하지만 천하 사물에 적용되지 않음이 없으니, 위정자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경계가 여기에 담겨있다고 할 만하다. 
 
▲亞醜方觚(商後期) <대만 고궁박물관 소장>
 
 ▲獸面紋觚(商後期) <대만 고궁박물관 소장>

 

 

글쓴이   :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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