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착한 사람이 왜 먼저 죽어야 하나

백광욱 2025. 11. 6. 04:40

 

착한 사람이 왜 먼저 죽어야 하나

참언이 성행하여 선인을 해칠 때에는  
성인이라도 잠시 머리를 숙여야 하는 법 

 

苟讒說之殄行兮  雖聖智而低眉

구참설지진행혜  수성지이저미

 

 - 이곡(李穀, 1298~1351) 『가정집(稼亭集)』 제1권 「당고(黨錮)의 화를 슬퍼하며 지은 글」

 

“모진 사람이 오래 살고, 착한 사람은 일찍 죽는다.” 

  주위에서 불의와 불공평한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뤄지는 걸 보면 이런 말이 떠오른다. 우리 사회에서는 능력과는 관계없이 착한 사람이 피해를 보고, 무자비하거나 탐욕적인 사람이 오히려 더 우대받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가령 경영이 어려운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하거나 명예퇴직을 받을 때에도 대개 착한 사람부터 잘리거나 착한 사람들이 먼저 사직서를 낸다. 이기적이고 염치없는 사람들은 끝까지 살아남고, 심지어 사태가 마무리된 뒤에는 승진까지 한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더라도 술수에 능하고 자기만의 잇속을 챙기는 모사꾼들이 권력을 잡는 걸 자주 본다.

  고려 후기의 학자로 죽부인전 등을 저술한 `이곡(李穀)‘ 가정 선생(1298~1351)은 착한 사람이 멋대로 권세를 휘두르는 환관의 손에 무참히 화를 당한 것을 애도하면서 `당고(黨錮)의 화를 슬퍼하며’라는 글을 지었다. 가정 선생은 “참언이 성행하여 선인을 해칠 때에는 성인이라도 잠시 머리를 숙여야 하는 법”이라며, 혹시 난세를 만나더라도 착한 사람이 살아남아 남는 것이 현명할 일이라고 설파한다. 

  많은 흠결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인류가 만든 제도 중 가장 훌륭한 제도로 꼽힌다. 이런 제도를 갖춘 현대 사회에서조차 착한 사람들이 빨리 도태되는 이유는 뭘까. 21세기에도 여전히 무자비하고 몰염치한 사람들이 끝까지 생존하는 건 제도와 관계없이 인간의 유전자 속에 선악과 무관한 생존 경쟁력이 따로 새겨져 있기 때문일까. 사람이 만든 법과 제도 따위로는 고칠 수 없는 필연일까. 

  우리는 그렇지 않는다고 믿는다. 보다 좋은 세상을 맞이하기 위해선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착한 사람들이 살아남아야 한다. 그들이 살아남아서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야 한다. 

  선한 삶은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지만, 인내심을 갖고 힘든 시기를 버텨 내는 일 또한 고귀하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사는 게 한때 비루한 것처럼 보여도 포기하지 않고 우직하게 살아내는 것 또한 착한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선한 사람이 제대로 된 사회적 보상을 받을 때, 결국에는 선이 이긴다는 걸 확인할 때, 우리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게 된다.

 

 

글쓴이   :  이상규
  '한국고전종합DB' 활용 공모전 고전명구 부문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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