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이 나라 천고의 어둠을 깨친, 한글

백광욱 2025. 10. 17. 03:48

 

이 나라 천고의 어둠을 깨친, 한글

 

초성(初聲)은 중성(中聲)의 왼쪽이나 위에 있고
ㆆ과 ㅇ은 우리말에서 같이 쓰이네
중성 열하나는 초성에 붙나니
원과 가로획은 아래, 세로획은 오른쪽에 쓰네
종성(終聲)을 쓰고자 하면 어디에 둘꼬
초성과 중성 아래에 붙여서 쓰게
초성과 종성을 합쳐 쓰려면 각기 아울러 쓰고
중성 또한 어울림이 있으니 다 왼쪽부터 쓰게
우리말의 네 가지 소리 어떻게 가리는고
평성(平聲)은 ‘활’이요 상성(上聲)은 ‘돌〯’이라
‘갈〮’은 거성(去聲)이요 ‘붇〮’은 입성(入聲)이니
이 넷을 보면 다른 것도 알리라
음으로 말미암아 왼쪽의 점으로 사성을 가려
하나는 거성, 둘은 상성, 없으면 평성이라
우리말의 입성은 정해진 바 없으나 역시 점을 더하니
한문에서의 입성은 거성과도 비슷하도다
방언(方言)과 속어[俚語]가 모두 같지 않아서
소리는 있어도 글자가 없어 통하기가 어렵더니
하루아침에 지으시매 신의 솜씨에 견줄 만하여
이 나라 천고에 어둠을 열어젖히셨네

 

初聲在中聲左上       초성재중성좌상
挹欲於諺用相同       읍욕어언용상동
中聲十一附初聲       중성십일부초성
圓橫書下右書縱       원횡서하우서종
欲書終聲在何處       욕서종성재하처
初中聲下接着寫       초중성하접착사
初終合用各並書       초종합용각병서
中亦有合悉自左       중역유합실자좌
諺之四聲何以辨       언지사성하이변
平聲則弓上則石       평성칙궁상칙석
刀為去而筆為入       도위거이필위입
觀此四物他可識       관차사물타가식
音因左㸃四聲分       음인좌점사성분
一去二上無㸃平       일거이상무점평
語入無㝎亦加㸃       어입무정역가점
文之入則似去聲       문지입칙사거성
方言俚語萬不同       방언리어만부동
有聲無字書難通       유성무자서난통
一朝制作侔神工       일조제작모신공
大東千古開朦朧       대동천고개몽롱

- 작자 미상,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 “합자해(合字解)” 중 <결(訣)>

 

우리는 누구나 그의 은덕을 누리며 산다. 
 
  아무리 역사나 옛것에 관심없는 이라도, 이 나라에 살면서, 하고 싶은 말을 적으며 상대와 소통하려면 오백여 년 전 한 임금이 만든 스물여덟 글자를 써야만 한다. 첫소리 초성(初聲)과 가운뎃소리 중성(中聲), 끝소리 종성(終聲)에 어떤 자모(字母)를 붙였다 떼었다 하느냐에 따라 세상 어떠한 발음이든 거의 다 표현하고 읽어낼 수 있는, 그런 글자가 바로 한글 - ‘훈민정음’이다. 그 훈민정음의 원리를 하나하나 풀어놓은 책이 바로 훈민정음해례이다. 
 
  ‘국보’라는 이름값, 그리고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1906~1962)이 이 책을 구하고 지켜온 전설 같은 이야기는 참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이 책을 읽어본 이는 몇이나 될까? “나랏말ᄊᆞ미 듕귁에 달아”를 외우던 중학교 국어 시간을 떠올리며, 한 번 훈민정음해례 해석본을 구해 펼쳐본 적이 있다. 언어학이나 음운학을 잘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절대 쉽지 않은 책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장 한 장 넘기며 조금씩 읽어나갔다. 반 넘게 읽었을 때, 한글 자모의 조합을 논하는 “합자해” 부분의 마지막에서 이 시를 만났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구성원리가 어떻게 되는지, 이 7언 20구의 한시보다 명쾌하게 설명하기도 쉽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렇게 구성한 글자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또 발음의 높낮이에 따라 글자는 어떻게 구분하는지도 이 시를 지은 분은 그리 어렵지 않게 풀어내고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 한 마디가 있었다. 
 
방언과 속어가 모두 같지 않아서
소리는 있어도 글자가 없어 통하기가 어렵더니
하루아침에 지으시매 신의 솜씨에 견줄 만하여
이 나라 천고에 어둠을 열어젖히셨네
 
  글 모르는 백성이 제 뜻을 펴게 하고자, 세종께서 “신의 솜씨”로 지은 훈민정음이 “이 나라 천고에 어둠을 열어젖혔다”고 외치고 있는 게 아닌가. 광오(狂傲)하다 싶을 정도로 당당한 말이었다.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던 그때, 세종과 그를 돕던 이들이 가졌을 자부심이 한가득 느껴졌다. 이 한시를 읽고서야 훈민정음해례의 가치가 나에게 와 닿았다고나 할까. 이로부터 얼마 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을 관람하다가 전시 말미에 펼쳐진 진본 훈민정음해례에서 저 마지막 문장, “이 나라 천고에 어둠을 열어젖히셨네[大東千古開朦朧]”를 보고 얼마나 반갑고 또 가슴이 뜨거워졌는지 모른다.
 
  10월이다. 이제 한동안 텔레비전에 한글을 사랑하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겠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다시 우리는 한글을 원래부터 있던 것인 양 무심코 쓸 터이다. 온 백성이 그렇게 훈민정음을 써서 자기 뜻을 펴게 하는 게 세종의 뜻이었으니만큼, 그 자체야 나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한글로 글을 적을 때, 어쩌다가 한 번쯤은 그 옛날 한 임금과 그의 신하들이 가졌던 자부심을 떠올리고, 그 결과물인 ‘한글’을 자랑스러워해 보는 것은 어떨까. 만약 한글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의 문자생활이란 과연 어떠할까 상상하면서.

 

글쓴이   :  강민경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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