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부는 외우고 사유하기
사부송유전(四部誦惟詮)
해거자(海居子 홍현주(洪顯周))가 항해자(沆瀣子 홍길주(洪吉周))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항해자가 답했다. “그것은 외우고[誦]과 사유함[惟]에 있다. 글의 외움은 나의 축적을 풍부하게 해주는 방법이고, 내용의 사유는 나의 터득을 확고하게 해주는 방법이다. 외우기만 하고 사유하지 않으면 앎이 흩어져 버리고, 사유만 하고 외우지 않으면 앎이 고갈된다.”
해거자가 말했다. “저는 학문에 뜻은 있으나, 나이가 들어 넓게 섭렵할 수는 없으니, 간략하여 오래 지속하기 쉬운 방법을 전해 받고 싶습니다.”
항해자가 말했다. “너의 질문이 좋구나. 세상에는 넓은 학문을 간략하게 포괄하는 한 묶음의 책이 있는데, 《사부송유(四部誦惟)》라고 한다. 이 책은 그 책들은 여러 서책에 흩어져 있어 아직 한데 모인 적이 없으니, 아마도 알아볼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너는 그것을 원하느냐?”
해거자가 말했다. “감히 여쭙니다. 사부(四部)란 무엇입니까?”
항해자가 말했다. “첫째는 9가지 경서(經書)이다. 둘째는 여섯 가지 사서(史書)로 이를 증명하는 것이다. 셋째는 제자(諸子)의 글로 그 폭을 넓히는 것이다. 넷째는 백가(百家)의 문장으로 발휘하는 것이다.
첫째, 구경(九經)은 《역경(易)》, 《서경(書)》, 《시경(詩)》, 《예기(禮)》, 《논어(論語)》, 《대학(大學)》, 《중용(中庸)》, 《맹자(孟子)》, 《효경(孝經)》이다. 이것들은 모두 성현의 말씀이니 어찌 감히 선별할 수 있겠는가. 그 전체를 녹여낸 다음 정수를 뽑아내야 더욱 깊이 음미할 수 있다. 《대학》과 《중용》은 실로 하나의 완전한 글이니, 둘로 나누어 볼 수 없다.
둘째, 육사(六史)는 《춘추좌씨전(左氏春秋傳)》, 《국어(國語)》, 《전국책(戰國策)》, 《사기(太史公)》,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이다. 《춘추》 원문은 긴 문장이 없어 경문(經文)은 거론하지 않고 그 전문(傳文)을 역사의 으뜸으로 삼았으니, 낮춘 것이 아니다. 삼국 시대 이후로는 세상이 쇠퇴하고 문장 또한 약해져 추천할 만한 것이 없다. 《좌씨전》은 간결하면서도 문채가 있고, 《국어》는 화려하면서도 법도가 있으며, 《전국책》은 자유분방하면서도 엄숙하고, 《사기》는 웅장하면서도 요점이 있으며, 《한서》는 규명하면서도 내용이 충실하고, 《후한서》는 곧으면서도 막힘이 없다.
셋째, 제자(諸子)로는 《장자(莊子)》와 《순자(荀子)》가 있다. 전국시대의 인물이니 웅장한 변론을 펼쳤는데, 길은 달랐으나 문장은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다. 주돈이(周敦頤), 장재(張載), 정호(程顥)·정이(程頤), 주희(朱熹)는 송나라의 현인들인데, 이들의 글은 오직 구경(九經)을 보조한다.
넷째, 백가(百家)는 수 많은 책이 있는데, 또한 네 가지 책을 꼽을 수 있다. 《초사(楚辭)》, 《문선(文選)》, 《문원영화(文苑英華)》,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鈔)》이니, 진한(秦漢)부터 송(宋)까지의 글이 갖추어져 있다. 한쪽에 치우쳐 막혔을 때는 《초사》가 약이 되고, 딱딱하고 비루할 때는 《문선》이 약이 되며, 담백하여 밋밋할 때는 《문원영화》가 약이 되고, 자유분방하여 법도가 없을 때는 《팔대가문초》가 약이 된다.”
해거자(海居子)가 그 설을 받아들여 연천 선생(淵泉先生)에게 가니 선별하여 약간 권으로 만들었다.
四部誦惟詮
海居子問沆瀣子曰:“何如斯可謂之讀書矣?”
沆瀣子曰:“其誦惟乎!誦其文所以富吾蓄也,惟其義所以固吾得也。誦而不惟則流,惟而不誦則竭。”
海居子曰:“吾有志矣,晩不能博,爾願受其約而易久。”
沆瀣子曰:“善,女之問也。宇宙之間,有書一袠,約而括乎博,其名曰《四部誦惟》。其書散在方策,未嘗薈也,盖竢其人焉爾。女欲之乎?”
海居子曰:“敢問何謂四部?”
沆壑子曰:“一曰九經,二曰徵之以六史,三曰弘之以諸子,四曰奮之乎百家之文。一,九經:一曰《易》,二曰《書》,三曰《詩》,四曰《禮》,五曰《論語》,六曰《大學》,七曰《中庸》,八曰《孟子》,九曰《孝經》。是皆聖哲之言,庸敢選乎?旣融厥全,擷其粹,而益味之。《學》曁《庸》,實惟全文,不可斷。二,六史:一曰《左氏春秋傳》,二曰《國語》,三曰《戰國策》,四曰《太史公》,五曰《漢書》,六曰《後漢書》。《春秋》無鉅章,經不擧,傳而冕于史,非降也。三國以降,世彌衰而文罙弱,不足薦也。《左氏》絜而文,《國語》麗而則,《戰策》肆而肅,《太史》䧺而括,《漢書》糾而塞,《後漢》直而通。三,諸子曰《莊》,曰《荀》,戰國也,馳騖乎宏辯,道不偕而辭造夫極。曰周、曰張、曰程、曰朱,宋賢也。是唯九經之輔。四,百家繽乎其庶矣。亦惟有四書,一曰《楚辭》,二曰《文選》,三曰《英華》,四曰《八家》。秦漢至宋賅矣,專而滯,《楚辭》醫,固而窶,《選》醫,淡而泯,《英華》醫,放而不度,《八家》醫。”
海居子受其說,詣淵泉先生,而遴之爲若干卷。
그렇다면 조선 문인들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당시는 공식적인 기록문자가 한자였으므로, 온갖 글을 능수능란하게 쓸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타인의 글을 보아도 거기에 인용된 문구의 출처가 어디인지까지 파악해야 겨우 식자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조대 영의정을 역임한 홍봉한(洪鳳漢)의 집안은 19세기 연천 홍석주(洪奭周), 항해(沆瀣) 홍길주(洪吉周), 해거재(海居齋) 홍현주(洪顯周)라는 걸출한 세 형제를 배출한다. 홍석주는 19세기를 대표하는 고문가로서 당대의 문풍을 주도한 인물이었고, 정치적으로도 순조·헌종대 좌의정을 역임했다. 홍길주는 기발하고 참신한 발상과 형식을 통해 자신만의 글쓰기 세계를 구축하여, 형 홍석주로부터 ‘장자나 사마천에 버금간다.’라는 평을 받았다. 막내 홍현주는 1807년 정조의 서차녀 숙선옹주(淑善翁主)의 부마가 된다.
『해거재시초(海居齋詩鈔)』 서문에 의하면, 홍현주 또한 어려서부터 뛰어난 기상이 있었지만 두 형만큼 독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던 듯하다. 하지만 대체로 막내들이 형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듯 홍현주도 자연스럽게 독서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당대를 대표하는 두 사람이 자신의 형인데다가 홍석주가 1774년생, 홍길주가 1786년생, 홍현주가 1793년생으로 형제 간의 나이 터울이 많이 나다보니, 홍현주의 학문은 두 형의 가르침이 절대적으로 컸을 것이다. 홍현주는 둘째 형에게 간략하면서도 오랫동안 활용할 수 있는 필수 독서를 추천해달라고 문의한다. 그리고 두 형이 막내 동생을 위해 집필한 책이 『사부송유(四部誦惟)』이다.
홍길주는 홍현주에게 경사자집(經史子集) 4부에서 핵심적인 책들을 제시하는데, 첫째, 사서오경(四書五經)이다. 사서오경을 읽을 때는 주돈이(周敦頤), 장재(張載), 정호(程顥)·정이(程頤), 주희(朱熹)의 책을 보조하여 정수를 추출해야 한다. 그다음 『춘추좌씨전』부터 『후한서』까지 6종류 사서(史書)이다. 위(魏), 촉(蜀), 오(吳) 이후의 사서들은 문약하니 읽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이들 사서는 간결함, 엄숙함, 충실함, 곧음 등 각기 특색을 거론하는데, 이를 통해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많이 아는 것보다 사건을 정확하게 논평(論評)하는 힘을 기르라는 의미인 듯하다. 유가의 경서들을 읽고, 고금의 치란을 살펴 경전대로 다스렸는지 징험한 다음, 세 번째로 제자서(諸子書)를 읽는다. 이는 유가 이외의 지식 확장이다. 홍길주는 40종의 제자서(諸子書) 중 『장자』와 『순자』 두 책을 꼽는다. 홍석주의 『홍씨독서록』에 의하면, 『장자』는 비록 유가의 글과 다르게 방탕하게 되는 폐단이 있지만 거침없는 변론은 선진(先秦) 이래로 없다고 평가하였으며, 『순자』 또한 성악설을 주장하는 등 패악함이 심하지만, 선왕의 도를 칭술(稱述)하고, 격언(格言)이 될 부분이 종종 있으며 문장도 『장자』에 짝할 만큼 웅장하고 뛰어나다고 평하였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 집부류의 책들을 읽는다. 홍길주는 『초사(楚辭)』, 『문선(文選)』, 『문원영화(文苑英華)』,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鈔)』를 4종을 꼽는다. 그리고 각각의 글들을 읽었을 때의 효용에 대해 언급하는데, 『초사』, 『문선』, 『문원영화』는 딱딱하고 재미없는 글에 활력을 주고, 이것이 너무 지나칠 경우 『당송팔대가문초』를 보완하는 역할로 삼았다.
사실 홍길주가 아무리 정수(精髓)만 골라줬지만, 사서오경만 해도 외우는 데만 몇 년씩 걸리는 전적이다. 더구나 저 많은 전적들을 언제 다 외운단 말인가. 막내는 둘째 형이 뽑아준 책 목록들을 큰 형 홍석주에게 갖고 가니, 큰 형은 이 책들 중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챕터들을 뽑아 2책으로 만들어 준다. 1책 당 150쪽 정도니까 오늘날 300쪽 정도 된다. 책의 바다에서 필수적인 책들을 뽑고, 1,000책이 넘는 사이즈를 단 2책으로 압축한 두 사람의 식견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후 홍현주는 부마로서 입신할 수 없다는 신분적 제약이 있었지만 대신 왕실을 통해 얻게 되는 최신의 문화 정보를 토대로 한평생 서화의 수집과 문예 활동 및 학술 교류 활동을 벌인다. 이는 모두 두 형이 만들어 준 단단한 뿌리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남는 것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공자의 말씀이다. 처음에 배울 때는 그저 수많은 말씀 중 하나로 넘어갔는데, 번역을 하고 논문을 쓸수록 절실하게 와닿는 구절이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이지만 공부가 깊어질수록 기본기가 중요하고, 그 기본기는 결국 암기와 사유로 귀결된다. 암기는 정보의 습득이고, 사유는 정보의 적용이다. 창의력이란 백지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정보의 축적이 있어야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마르지 않듯, 무궁하게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은 더더욱 직종의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당장 10년 뒤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이럴 때일수록 옛날 문인들의 독서법처럼 박이약(博而約)하는 공부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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