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벼 베는 노래

백광욱 2025. 11. 16. 05:22

 

벼 베는 노래

 

벼 베는 아이야
벼 베기엔 아직 이르지 않으냐
기러기는 구름처럼 만릿길 날아오는데
날 춥고 들 깨끗하니 배고파 어디로 갈까
근래 농가엔 끼니때 보리가 떨어져서
푸른 벼 다 베어다가 죽을 쑤어 먹구나
누런 치마의 늙은 아낙은 절굿공이 안고 서서
벼 아까워 찧지 못하고 비비적거리며 흐느끼네
맑은 서리가 기러기 따라 떨어지는 것을 보니
벼 끝에 달린 낟알 곡식이 꼭 황옥(黃玉) 같구나
사람들은 지금 매일 벼 베고 돌아오지만
벼 누렇게 익기 전이라 벌써 배고프다오
그대 보지 못했나 강가 십 리 가득한 갈대꽃을
기러기가 갈대꽃 쪼아 먹는 것이 되레 부럽구나

 

刈禾兒          예화아
刈禾莫早時        예화막조시
客鴈如雲萬里來      객안여운만리래
天寒野淸飢何之      천한야청기하지
比來田家食無麥      비래전가식무맥
盡斫靑禾擣作粥      진작청화도작죽
黃裙老婦抱杵立      황군노부포저립
惜禾不擣撚禾泣      석화불도연화읍
眼看淸霜隨鴈落      안간청상수안락
禾頭粒殼如黃玉      화두립곡여황옥
人今日日刈禾歸      인금일일예화귀
禾未黃時人已饑      화미황시인이기
君不見江洲十里蘆花徧   군불견강주십리노화편
鴈啄蘆花還可羡      안탁노화환가선

- 임상덕(林象德, 1683~1719) 『노촌집(老村集)』 권1 「예화사(刈禾詞)」 경인년(1710, 숙종36)-

 

 ‘쌀 보냈다’
귀농하여 농사를 짓고 있는 형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다. 벌써 추수를 끝내고 갓 수확한 햅쌀을 보내왔다. 고생해서 벼를 키우고 가꾸고 수확까지 한 뒤, 다른 곳에 팔지 않고 가장 먼저 가족에게 부친 것이다. 얼마 전 일이 있어 충남 서천에 다녀왔는데, 기차 창문 밖으로 보이는 들판에는 추수가 한창이었다. 누렇게 익은 벼들을 콤바인이 종횡무진 다니며 베고 있는 모습을 보니 한적하고 정겹기만 하였다. 
 
  위 시는 지금의 농촌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먼저 아직 누렇게 익지도 않은 푸른 벼를 아이가 베고 있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왜 이 아이는 익지도 않은 벼를 베고 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봄에 수확한 보리가 다 떨어져 지금 당장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벼가 익을 텐데, 벼가 익을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릴 여유가 없다. 그래서 이제나저제나 벼가 익기만을 기다리면서 매일 조금씩 푸른 벼를 베어 와 죽을 쑤어 끼니를 때우는 것이다. 그중에 늙은 아낙은 앞으로 굶주릴 날을 예견이나 한 듯, 푸른 벼를 찧으려다 말고 아까운 나머지 벼를 비비적거리며 흐느낀다. 이렇게 사람들은 매일 벼를 베고 돌아오지만, 수확의 기쁨은 전혀 볼 수 없고 앞날의 굶주림을 걱정하며 한숨만 쉴 뿐이다.
 
  이 시에는 사람뿐 아니라 기러기도 등장한다. 기러기는 들판에 떨어진 낟알을 주워 먹기 위해 만릿길을 날아왔다. 그런데 날은 춥고 들판에는 남은 것이 없어 막막하기만 하다. 그러다 강가에 가득 피어 있는 갈대꽃을 보고 그곳으로 우르르 날아가 쪼아 먹는다. 이 모습을 본 사람은 기러기들을 보고 되레 부러워한다. 자신과는 다르게 변변찮은 갈대꽃이라도 실컷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기러기를 사람과 대비시켜 사람들의 처절하고 고달픈 상황을 한층 더 극적으로 연출한 것이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시의 등장인물이 아이와 늙은 아낙뿐이라는 것이다. 추수철이 되면 벼 베는 일이 고될 뿐만 아니라 또 쌀을 운반하는 일도 고도의 노동력이 필요하므로 젊은 장정들이 주체가 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 시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추측해 보건대, 젊은 사람들은 모두 부역에 끌려간 것으로 보인다. 

  작자의 또 다른 시인 〈무안 백성[綿海民]〉에서도 백성들의 고달픈 삶이 그려져 있다.
 
갈재에서 나그넷길 가노라니, 벼가 들판에 가득한데, 길에는 굶주린 사람들 있어, 남자는 앞서고 여자는 울며 따르네. 풀숲 해치면서 진창 이슬에 젖고, 누렇고 검게 떠 사람 꼴 아니네. 묻노라 “그대는 어떤 사람이오? 지금 어느 고을로 가오?” 그가 대답하네 “무안에 거주하며, 한평생 농사짓고 살았는데, 하늘도 무심하사 우리 고을 가물게 해, 전답은 해마다 타들어 갔소. 보리 흉작에 며느리 굶어 죽어, 산에 버려진 채 비바람 맞았다오. 죽은 사람은 참으로 편안하겠지만, 남은 어린 것 어떻게 키울지. 아들은 어란진에 징집되었고, 이 몸은 서울 기병 명부에 올랐소. 늙은 할미 등에 업힌 저 아이, 젖달라고 응애응애 보채오. 작년에 태어난 저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사복시에 예속되었소. 차례차례 도장 찍힌 문서 내려오니, 누가 베틀로 베를 짜겠소. 중략 
-『노촌집(老村集)』 권1 「면해민(綿海民)」
 
  작자는 갈재를 넘던 도중에 유민(流民) 행렬을 만난다. 그중에 한 가족과 대화를 나누는데, 그 가족은 노부부와 어린 손자, 이렇게 셋뿐이다. 흉년으로 며느리는 굶어 죽었고 아들은 해남의 어란진으로 수자리를 살러 갔다. 게다가 자신도 군적에 오르고 어린 손자도 신포(身布)를 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양식도 없는데 신포의 독책을 면하자면 고향을 떠나 떠돌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었다. 이 시의 작자는 임상덕(林象德)으로 그의 고향은 지금의 전남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배뫼 마을이었다. 일찍 조정에서 벼슬하여 고향과 서울을 오가는 중에 유민들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북받쳐 오른 것이다.
 
  이 시들을 보면, 백성들은 늘 힘겨운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흉년이면 먹을 양식이 없어서 굶어 죽고, 조금 살만하면 갖가지 세금으로 수탈하며, 또 부역이나 신포 등으로 갖은 억압을 당하였다. 작자는 이런 백성들의 딱한 삶을 못 본 체하지 않고 그의 시 속에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백성을 향한 연민이나 애민(愛民) 의식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생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고달픈 삶은 어느 시대건 같은 것 같다. 추수가 한창일 때, 시 속의 인물처럼 익지도 않은 푸른 벼를 아까운 마음에 찧지 못하고 흐느끼는 노파와 먹을 양식이 없어 떠도는 가족들을 보며 문득 나의 부모님이 떠오른 것은, 그들의 삶과 자식들 뒷바라지에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신 부모님의 삶이 그리 다르지 않아서였으리라.

 

 

글쓴이   :    최이호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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