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나와 함께 살아가겠노라

백광욱 2026. 2. 5. 00:42

 

나와 함께 살아가겠노라

 

수많은 성인은 지나가는 그림자일 뿐이니, 나는 나에게 돌아가기를 구하리라.

 

千聖過影, 我求還我.

천성과영, 아구환아.

 

- 이용휴(李用休, 1708-1782), 『탄만집(𢾡𢿜集)』 「환아잠(還我箴)」

 

 

 나는 누구인가? 가장 답하기 쉬운 질문일 수도, 가장 답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질문이다. ‘저는 누구누구입니다.’라는 흔한 자기소개는 아주 어려서부터 익숙하게 해온 것이지만 ‘진짜 나’를 ‘나’에게 물어본다면 아마도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조선시대 문인 이용휴(李用休)는 ‘나[我]’라는 존재에 유난히 깊은 관심을 보였고, 이와 관련된 글도 여러 편 남겼다. 「환아잠」 역시 그 가운데 한 작품이다. 이 글은 이용휴가 제자를 위해 지은 잠인과 동시에 스스로의 삶에 대한 다짐을 굳게 새긴 기록이기도 하다. 태어날 때의 순수한 ‘나’는 잃어버리고 살아가며 얻은 명성과 직함에 휘둘려 정신없이 살았던 과거를 돌아보고 ‘참된 나’를 회복하여 살아가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나’를 잊은 채 살아가곤 한다. 어릴 때부터 우수한 대학과 좋은 직장 등 그럴싸한 명찰을 달기 위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나’의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못하고 그저 ‘명찰’을 달기 위해 참고 인내하는 것만을 좋은 미덕으로 여긴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나서는 또 더 높은 목표를 위해 살아간다. 다른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는 날들은 많지만 나를 위해 보내는 날은 적은 말 그대로 ‘나를 타고 가서 돌아올 줄 모르는[乘我未返]’ 상태인 셈이다.

  요즘 세상에 공자나 부처, 예수 같은 성인이 되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야 많지 않겠지만 여러 방면에서 성공한 누군가의 삶을 모델 삼아 따르려 애쓰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롤모델을 갖는 일 자체는 자연스럽고 의미있는 일이지만 맹목적으로 이를 추구하다가 ‘진정한 나 자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작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물론 이 글이 우리에게 완벽한 해답을 줄 수는 없다. ‘나’로 돌아가자고 하지만 여전히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수많은 역할이 있고, 각각의 역할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 힌트는 얻을 수 있다.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남’들의 시선과 기준에 지나치게 매몰되지는 말자는 것, 남의 눈치를 보거나 남의 인정을 갈구하지 말고 내 마음속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는 것이다. 

  어린 아이를 보고 있으면 작품 초반에 언급한 ‘순수한 천리 그대로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는 자기에게 집중할 줄 안다. 계산도 하지 않고 시선도 신경 쓰지 않는다. 아이의 사고와 선택에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보고는 좋아할 줄 알고 싫어하는 것을 보고는 싫어할 줄 안다. 성인이 되어 어린아이와 똑같이 행동하는 것은 물론 안 될 일이지만, 아이의 그 순수한 마음가짐만큼은 오히려 배울 점이 많다. 이렇게 다짐을 해보아도 또 언젠가는 나도 모르게 허울을 좇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어떠한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300여 년 전 ‘나’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 맹세한 한 사람의 말을 떠올려야겠다. 나는 나와 함께 살아가겠노라고.
 
글쓴이   :   김연주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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