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벗이여, 그대는 평안한가

백광욱 2026. 1. 16. 04:24

 

벗이여, 그대는 평안한가

 

처자 두 사람과 한 묶음 책 들고서
먼 이역 장한(張瀚)의 거처 찾았구나
배 멈추고 웃으며 농어 그물 걷을 제 
단풍 저문 오송강엔 밤 등불 성글리라
중국 땅이라 말하자면 아득히 머나니
꿈에선들 어찌 고향 산천 볼 수 있으랴
그대 회수(淮水)의 달 손수 희롱한다니
만 리 밖 부평초 신세인들 가련타 할까

 

 

兩口妻兒一束書       양구처아일속서 
天涯遙訪季鷹居       천애요방계응거
停舟笑擧鱸魚網       정주소거로어망
楓晩吳淞夜火踈       풍만오송야화소

 

說到中州也杳然       설도중주야묘연
夢中那得見山川       몽중나득견산천
聞君手弄淮心月       문군수롱회심월
萬里萍蓬不足憐       만리평봉부족련

 

 - 황현(黃玹, 1855~1910), 『매천집(梅泉集)』 권4, 시, “병오고(丙午稿)” 중 「창강滄江에게 부치다[寄滄江]」

 

 

지금으로부터 꼭 120년 전인 1906년, 대한제국 전라남도 구례에 사는 한 선비가 붓을 들었다. 지난해 홀연히 청나라로 떠난 벗이 그리웠던 까닭이다. 두 사람은 문장대가(文章大家)로 나란히 칭송을 받았지만, 한 명은 전라도 시골 출신이었고 또 한 명은 전조(前朝)의 땅 개성 사람... 그나마 한 명은 가족을 데리고 망명하였으니, 이제 이 땅에 남은 이는 그뿐이었다. 그는 붓을 움직여 칠언절구 두 수를 써내려갔다. “그래도 장건(張謇, 1853~1926) 공의 도움을 받았다니 다행이네. 오나라 강에 뜬 달을 희롱하며 농어에 술 한 잔이라, 아아, 그대가 부럽구나, 창강.” 


  하지만 그는 알았다. 벗이 음풍농월이나 하자고 처자와 함께 중원 땅에 간 것이 아니요, 기울어 가는 나라의 운명을 보다못해 관직을 버린 것임을. 그 머나먼 곳에 갔으니 어찌 고향이 그립지 않으랴. 그는 두 번째 시에 그 마음을 담았다. 하지만 그는 그 마음을 곧장 적지 않았다. “아득히 먼 곳에서 고향 산천이 눈에 들어오기나 할까. 천하 명승 회수의 달을 본다니, 허허, 떠도는 처지도 그리 가련할 것 없겠구려.” 반어(反語), 지독한 반어였다. 다시 고향에 오기 어려울 벗의 방랑을 걱정하며,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반어로 엮어낸 것이다. “만 리 밖 부평초 신세인들 가련타 할까!” 


  그렇게 벗의 안부를 묻고 또 그 벗의 평안을 빌었던 선비, 그의 호는 매천(梅泉), 이름은 황현(黃玹, 1855~1910)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리던 벗의 호는 창강이요, 이름은 김택영(金澤榮, 1850~1927)이었다. 한말(韓末) 한문학의 대가로 꼽히는 그 둘은 평생 서로를 존경하였고 또 그리워했다. 황현은 김택영에게 많은 편지와 시를 띄웠고, 김택영은 훗날 황현의 문집을 발간해 주었다. 아무리 먼 곳에 떨어져 있더라도, 이처럼 그리워하고 걱정하는 벗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행복하리라. 아아, 행복하리라.

 

글쓴이   :   강민경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