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술 대신 차

백광욱 2025. 4. 7. 04:51

 

술 대신 차

나는 차를 달라 하였고, 다른 사람들이 술을 마실 때마다 꼭 차를 달라고 하여 술 대신 마시면서 말했다.

“차로 술을 대신하니 제 풍류(風流)는 완전히 사라졌군요.”

 

余呼茶, 每諸人飮酒, 必呼茶代之曰, “以茶代酒, 弟之風流, 掃地盡矣.”

여호차, 매제인음주, 필호차대지왈, “이차대주, 제지풍류, 소지진의.”

 

홍대용(洪大容, 1731~1783), 『담헌서(湛軒書)』 「건정동필담(乾凈衕筆談)」

 

 

청나라에 사신으로 간 홍대용은 청나라의 선비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당시 조선은 엄격한 금주령이 시행되고 있었고, 이 말을 들은 청나라 선비들은 술 없이 대체 무슨 재미로 사느냐며 놀라워했다. 사실 홍대용은 금주령이 아니어도 원래 체질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음주 자체를 나쁘게 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술 대신 차를 마시면서 이렇게 농담을 던진 것이다. 
 
  술과 차는 각각 따로도 얘깃거리가 무궁무진하겠지만, 둘 사이의 관계도 나름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술과 차는 어떤 면에서는 음과 양의 관계와도 비슷하다. 술은 피를 빨리 돌게 하고 기분을 들뜨게 한다. 감각과 감성을 증폭시킨다고도 할 수 있겠다. 차는 들뜬 기분은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흐린 정신은 맑게 깨운다.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능도 있다고 한다. 술의 기능이 증폭이라면 차의 기능은 중화(中和)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과도함과 부족함을 모두 경계하고 중용을 중시한 승려와 선비들은 차를 즐겼다. 반면 술은 경사를 축하하거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한 자리에서 쓰여 일상의 굴레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쾌락을 즐기게 해주었다. 괜히 홍대용이 ‘술 대신 차를 마시니 풍류가 사라졌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술이냐 차냐의 선택이 반드시 체질과 기호만을 기준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선택이 특별한 의미를 담을 수도 있었다. 
 
주상(태종)이 태상전(太上殿 태조의 처소)에 조회하였다. 주상이 헌수(獻壽)하고자 하니, 태상왕(태조)이 말하기를,
"앞으로 술과 고기는 먹지 않겠다."
하고는, 차(茶)만 한 사발 마셨다.
上朝太上殿. 上欲獻壽, 太上王曰: "自今不飮酒食肉." 飮茶一椀而止.
《태종실록》 3년 12월 17일 기사
 
  태종 이방원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주도한 두 차례의 왕자의 난으로 태종과 태조 이성계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이 틀어졌다. 1402년(태종2) 11월 태조는 동북면, 지금의 함경도 지역으로 행차했고, 이와 맞물려 함경도 안변 부사였던 조사의(趙思義)가 반란을 일으켰다. 태조가 사주 혹은 지원한 정황이 뚜렷했다. 그러나 12월에 반란은 진압되었고 이후 관련자들에 대한 국문과 처분이 이루어졌다. 태조는 공식적으로는 반란과 관련이 없었기에 처분의 대상이 아니었으나, 수족 같던 그의 측근들이 처형당하거나 세력을 잃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 태종이 태조에게 장수를 기원하며 술을 올렸다. 안주 삼아 고기를 같이 올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태조는 더 이상 술과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고는 대신 차를 마셨다. 이 행위의 의미는 무엇일까.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 혹은 술이 입맛에 맞지 않아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옛날에 삼년상을 치르는 사람은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다. 술과 고기가 상징하는 세속적인 쾌락이 애도하는 사람의 처지와 맞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라에 재난이 일어나면 임금은 식사를 간소하게 하였다. 당연히 술과 고기는 수라상에 오르지 않았다. 재난의 책임이 임금에게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쩌면 태조도 태종에 대한 불만,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애도, 무력한 자신에 대한 자괴감을 술과 고기에 대한 거부로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대신 선택한 것이 차였다. 세상을 호령하던 풍류의 상실과 사유하고 관조하는 삶으로의 이행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술과 차는 각자의 영역이 있고 역할이 있지만 반드시 어느 한쪽만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음과 양이, 낮과 밤이 공존하듯, 술과 차가, 혹은 그것이 상징하는 것들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때 삶과 세상은 썩 괜찮을 것이다.

 

글쓴이   :   최두헌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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