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꿈에서 노닌 선경, 선몽대

백광욱 2021. 2. 23. 00:02

 

꿈에서 노닌 선경, 선몽대

 

< 번역문 >

군의 관아 남쪽 십리 즈음에 태백산에서부터 수백 리를 이어와 잔잔히 퍼져 밑바닥까지 맑은 강이 있다. 강의 남쪽 기슭에 십여 장 됨직한 암석이 불쑥 솟아 있고 그 위에 층대가 있으니 장인께서 쌓고 꾸민 것이다. 대의 모습은 넓고 시원하여 높다랗게 반공에 솟아 곧바로 동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골짜기가 솟아 있고, 강이 그 골짜기 사이를 뚫고 나와 대 아래를 휘감아 돌아 깊은 못을 만들었다. 못으로부터 서쪽 하류로는 강폭이 더욱 넓어져서 별빛과 달빛을 머금은 채 아득히 넘실대니, 올라서 바라보면 세상을 멀리 벗어나 선경에 있는 듯하다.

이 대는 본래 이름이 없었다. 그런데 퇴계선생이 손수 ‘선몽대’ 세 글자를 써서 대의 편액으로 걸도록 보내오셨다. 그리고 절구 한 수를 지어 평소 꿈꾸고 상상하신 뜻을 서술하여 승경의 경개를 묘사하였는데, 마치 또렷이 직접 눈으로 보신 듯하였으니 어찌 그리도 기이한가? 몸이 청명하고 마음이 신선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생각이 통하고 정신이 감응하는 것이 어찌 이처럼 맞아떨어질 수 있겠는가?

선생은 유선인지라 평소 학문을 하심에 마음을 맑게 하고 욕심을 적게 하는 데에서 진실로 힘을 얻으셨기에 공부의 깊이와 조예의 정밀함을 섣불리 짐작하여 말할 수 없다. 다만 지금 비슷하게나마 풍채를 상상해보자면 날아오르는 봉황이나 찬란한 오색구름 같아 마음을 더럽히는 티끌이라곤 아예 한 점도 없으니, 바로 때나 겨만으로도 오히려 진짜 신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생각이 마음속에서 움직이고 정신이 우주의 밖에서 노닐어 바람을 타고 번개를 몰아 방호의 일월과 봉래의 연하를 두루 구경하다가 이 대에 이르렀던 것이니, 곧 인간 세상의 한 선경이었다.

 

 

< 원문 >

郡南十里許 有水從太白來 源委數百里 演漾平鋪 徹底淸瀉 由水南涯 有石陡起可十餘丈 上有層臺 外舅氏所築而增飾之者 爲臺遼廓爽豁 高出半空 直矚東北 峽勢束立 水穿峽中出 洄洑臺下 渟爲深潭 自潭而西 水勢益闊 涵泳星月 浩渺瀰漫 登而望之 令人有遺世出塵之想

臺舊無號 退溪子手寫仙夢臺三字 寄爲臺扁 仍成一絶 以敍平日夢想之意 摸寫勝槩 瞭然若所嘗目擊者 何其異哉 自非淸明在躬 志氣如神者 其念慮所孚 精神所格 豈能如是之不爽乎

先生儒仙也 平生爲學得力處 實自淸心寡慾中來 其工夫之淺深 造詣之精粗 未可容易揣論 而至今想像風彩於彷彿 則飄如翔鳳 燁若卿雲 更無一點些滓累其靈臺 是其塵垢粃糠 猶將陶鑄眞仙者也 是以念動於方寸之中 而神遊於八極之外 方壺日月 蓬島烟霞 無不歷覽於駕風鞭電之際 至於斯臺 乃人寰一屳境也

 

- 조우인(曺友仁, 1561~1625), 『이재집(頤齋集)』권2, 「선몽대기(仙夢臺記)」

 

< 해설 >

벌써 우수이다. 더는 참지 못하고 망울을 틔운 매화가지 위로 벌써 볕살이 융융하다. 긴 명절 연휴에도 출입을 삼간 터라 성큼 다가온 봄에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큰일 났다. 어울리지 않게 바람이 났나 보다.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음에도 발이 자꾸 들썩인다. 하지만 코로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터라 마음 한 켠에 못내 조심스럽다. 해서 잠깐 짬을 내어 가까운 선몽대를 찾아 거닐어보기로 했다.

 

나지막하고 친숙한, 그럼에도 속기 없이 담연한 산줄기. 그 사이로 아기자기 돌아 흐르는 맑은 강물, 이름 모를 물새와 희고 넓은 모래톱. 경북 내성천의 모습이다. 봉화에서 발원한 내성천은 영주를 지나며 품을 키워 예천 삼강 주막 앞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동안 굽이굽이 수채화 같은 풍경을 빚어놓았다. 백사장과 물의 절묘한 조화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무섬마을이나 회룡포 등이 모두 내성천에 자리한 승경이다.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면 바로 예천 호명면 백송마을의 선몽대이다.

 

깨끗하고 호젓한 내성천 굽이의 아늑한 솔숲 아래, 비밀한 작은 대를 세운 사람은 퇴계선생의 제자이자 종손자인 우암(遇巖) 이열도(李閱道)이다. 내외의 청요직을 두루 역임하다가 경산현감(慶山縣監)을 지낼 무렵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 은거하였다. 그가 독서당 삼아 지은 조촐한 대가 바로 선몽대인데, 이렇게 이름을 지은 데에는 약간의 이야기가 있다.

 

퇴계 선생은 어느 날 밤 꿈에 신선이 되어 바람을 타고 선경을 유람하였다. 꿈에서 노닌 그 선경이 너무 아름다워 퇴계는 늘 잊지 못하고 그곳을 그리워하였다. 그러던 중 예천에 살던 제자 이열도가 내성천 가에 대를 축조하고 그 일대의 풍경을 일러주며 대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청하였다. 이열도가 묘사하는 광경을 들은 퇴계는 깜짝 놀랐다. 그곳이 바로 자신이 꿈속에서 신선이 되어 노닐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선몽대’ 세 글자를 손수 써서 보내고 아울러 시 한 수를 함께 보내주었다.

 

사연을 기록하여 전한 이는 이열도의 사위 조우인이다. 예천 개포에서 태어나 삼강 아래 매호에서 살았던 조우인 역시 선몽대를 사랑하여 자주 찾았는데, 그는 퇴계를 유선(儒仙)이요 지인(至人)이라 일컬으며 은근히 공자에 비겼다. 신선이나 지인은 어떤 사람인가. 마음이 맑고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조우인은 말한다. 선몽대라는 이름에는 결국 ‘꿈속에서 신선이 되어 노닌 선경’이라는 뜻이 전제되어 있지만 ‘마음이 맑고 욕심 없는 사람이 신선’이라는 깨우침의 의미도 함께 담겨있다.

 

오늘날 우리들의 여행은, 많은 경우 휴식과 힐링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 욕망과 허세로 뒤범벅이 되어 있기 일쑤다. 남들보다 좋은 경치, 좋은 맛집을 찾아 경쟁하듯이 몰려다니고 또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남들에게 자랑하기에 급급하다. 그 사이 어느 갈피에서 욜로와 소확행이라는 말이 그 자극적인 욕망을 더욱 부채질하고 허세를 비호해준다. 욕망과 허세가 가시고 난 자리에는 피로감 가득한 갈증만 남는다.

 

선몽대는 이런 요란뻑적지근한 여행에 피로감을 느낄 때 찾기 좋은 곳이다.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하는 기이한 절경은 이곳에 없다. 우리 산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순박한 시골동네이다. 다만 듬직하고 점잖은 바위가 기품있는 백송 숲과 어울려 서 있고, 그 아래로 해정한 모래톱을 품은 내성천이 잔잔하게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곳이야말로 잠시나마 모든 욕심을 잊고 신선이 되어 한적하게 거닐 수 있는 진짜 선경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꼭 퇴계만이 신선이고 이곳만이 선몽대일 필요는 없다. 맑은 마음으로 욕심 없이 사는 사람은 누구나 신선이요, 거니는 동안 마음을 맑게 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 선몽대가 될 것이다.

 

글쓴이  :  이규필
경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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