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자기에게 절실하게

백광욱 2021. 2. 15. 00:01

 

자기에게 절실하게

 

옛사람은 학문을 하면서 모두 자기에게 절실하게 하였으니, 자기에게 절실하게 하는 것이 바로 학문을 하는 요령입니다. 만약 자기에게 절실하게 하지 않으면, 이는 성경현전(聖經賢傳)을 한바탕의 설화(說話)로 삼는 것일 뿐입니다.

 

 

古人爲學, 蓋皆切己, 切己乃爲學之要也. 如不切己, 是將聖經賢傳爲一場話說而已也.
고인위학, 개개절기, 절기내위학지요야, 여부절기, 시장성경현전위일장화설이이야.


- 윤선도(尹善道, 1587-1671), 『고산유고(孤山遺稿)』권2 「진시무팔조소(陳時務八條疏)」

 

< 해설 >

이 글은 고산(孤山) 윤선도가 임진년(1652, 효종3)에 올린 상소인 「진시무팔조소」의 한 문장이다. 진시무팔조소란 ‘지금 임금이 힘써야 할 여덟 가지 일에 대해 아뢴 상소’라는 뜻으로, 이 문장은 이 중에서 여덟 번째로 아뢴 ‘항상 학문에 힘쓰되 요령(要領)이 있게 할 것〔典學有要〕’의 조목에 실린 문장이다.

 

상소는 신하가 임금에게 당대의 현안에 대해 아뢰는 글로 당대 현실 정치의 산물이지만, 그 형식은 기본적으로 사서오경과 같은 경전(經傳)을 중심으로 한 유가 정치의 이론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문장만으로도 오늘날에 비추어 볼 만한 점이 적지 않다.

 

이 문장도 그렇다. 이 문장은 학문, 즉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요령이 있어야 함을 말하는 내용이다. 옛 성현들은 학문을 하면서 모두 ‘자기에게 절실하게〔切己〕’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학문의 요령이며, 그렇지 않으면 성현의 경전을 아무리 많이 읽어서 섭렵하더라도 고작 한바탕의 이야깃거리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윤선도가 이 상소를 올리던 당시와는 비할 수 없이 많은 지식과 정보가 쏟아지며, 제자백가라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천가만가의 설이 종횡으로 범람하는 오늘날이다. 뉴스 기사, 블로그, SNS, 유튜브 등 온갖 매체를 통해 하루에도 천언만어(千言萬語)의 지식과 정보를 접하며, 누군가의 말에 이끌려 고전(古典)이며 신간이며 베스트셀러를 찾아 읽기도 한다. 바야흐로 가만히 앉아서 숨만 쉬어도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는 세상이다.

 

그러나 무성하게 우거진 지식과 정보의 삼림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노라면, 자신이 어디에 와있는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도 모르게 망연히 길을 잃는 날도 허다하다. 그것을 그저 출퇴근길의 소일거리로만 삼거나, 그저 한번 훑어본 것을 대단한 공부로 여기거나, 그저 남의 말을 의심없이 믿고 따르거나, 온갖 잡다한 지식을 아무렇게나 주워다가 산적하게 쌓아놓고는, 정작 그것이 자기에게 무슨 소용인지 알지 못한다.

 

위의 문장이 말하듯, 학문의 요령은 자신에게 절실하게 함에 있다. 어찌 학문만 그러하겠는가. 살아가는 일이 모두 그렇다. 자신에게 절실하게 함이란, 그 수많은 지식과 정보와 번다한 세상사를 마주하여, 그것이 자신에게 무슨 소용이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되물으며,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며,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언제나 자신을 기준으로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성현의 경전을 아무리 많이 읽은들 고작 남들에게 늘어놓기 위한 한바탕의 이야깃거리에 불과한 것이다.

 

글쓴이 : 김지웅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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