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師表)를 그리며
(전략)
참된 기풍 멀리 사라지니
큰 거짓이 이에 일어나도다
골목마다 선비들 가득해도
천 리 안에 현인은 하나도 없네
(중략)
하여 나의 도를 행하려 해도
누구에게 물어볼 인연 없었어라
난초 향기 나는 군자 거처 찾아다녀 봤지만
죄다 비린내 나는 생선가게 뿐
남쪽으로 온 고을 다 돌아다니느라
청산의 봄을 아홉 번이나 흘려보냈더니
어찌 생각이나 했으랴 궁벽한 바닷가에
하늘이 맹모 같은 이웃 보내주실 줄
(후략)
(전략)
眞風遠告逝 진풍원고서
大僞斯興焉 대위사흥언
閭巷滿章甫 여항만장보
千里無一賢 천리무일현
(중략)
所以行己道 소이행기도
將向問無緣 장향문무연
歷訪芝蘭室 력방지난실
竟是鮑魚廛 경시포어전
南遊窮百城 남유궁백성
九違靑山春 구위청산춘
豈謂窮海曲 기위궁해곡
天降孟母鄰 천강맹모린
(후략)
- 초의 의순(艸衣意恂, 1786~1865), 『일지암시고(一枝盦詩稿)』 권1 「탁옹선생께 삼가 드리다[奉呈籜翁先生]」 중에서
< 해설 >
이 시는 조선 후기 선승(禪僧)이자 다(茶)와 시(詩)로도 명성을 떨친 초의 의순의 작품으로, 초의가 24세 무렵에 강진에 유배 온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에게 올린 것이다. 시제(詩題)의 탁옹선생이 바로 다산이다. 젊은 초의는 이 당시 유배 중인 다산을 스승으로 모시며 그로부터 유가 경전과 시를 배웠다. 초의는 당시의 혼란한 세태를 말하며 그러한 와중에 자신의 도를 행하기 위해 가르침을 받을 스승은 어디에도 없었노라고 토로한다. 마을마다 골목마다 선비라 하는 이들은 가득했으나 도를 추구하며 세상의 사표가 될 만한 현인군자는 어디에도 없고 죄다 세속적인 명예나 추구하면서 위선을 부리는, 생선가게처럼 썩은 냄새만 풍기는 부유(腐儒)들 뿐이었던 것이다. 참된 기풍이 사라지고 거악(巨惡)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도를 갈구하며 진리를 찾는 이의 발걸음은 고단하기 그지없다. 온 땅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이끌어 줄 인연을 찾아 헤매지만 기약도 없다. 그러한 초의가 진정한 스승으로 받들게 된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중앙 정계에서 축출되어 머나먼 남녘 바닷가로 유배 와 세상으로부터 내쳐진 다산이었던 것이다. 인연은 이렇게 만나졌다.
세상에 제어할 수 없는 혼란이 가중되고 개인의 지혜로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이 누적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현실을 이해하려는 노력, 문제에 맞서 전진하려는 용기, 타인과 화합하고 끌어안으려는 관용을 마음에서 내려놓는다. 나를 누르는 세계의 장애가 너무도 힘겨운 나머지 분노, 혐오, 오해, 차별, 적개심 등의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자신의 갑옷으로 삼고 스스로를 보호하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보호가 아니다. 이것은 자신을 돌보지 않은 채 고립되고 차가운 독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학대하는 것이다. 요즘 같은 때가 바로 그런 때가 아닐까 싶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세계적 혼란 속에서 지치고 힘든 개인들은 심리적 고립과 혼돈 상태에서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 있다.
세상이 혼란하고 인문(人文)이 실종될 때 간절한 것은 사표(師表)이다. 갈등을 조절하고 일신의 힘을 다해 난국을 타개하는 관인(官人), 분노와 혐오 앞에서 대중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고 청빈과 사랑을 실천하는 종교인, 이성과 사리를 들어 대중의 무지를 일깨우고 호소하는 지식인, 즉각적인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길을 내밀고 당면한 불의와 억압에 맞서는 활동가. 세상에 구원의 희망이라고는 한 점도 보이지 않는 그 순간에 우리는 우리를 일깨워줄 사표를 갈급한다. 그러나 돌아보면 관인, 종교인, 지식인, 활동가의 이름이 골목마다 가득 찼으되 천 리 안에 현인을 찾기가 어려운 것은 초의의 때와 지금이 똑같다. 우리의 정신을 일깨워줄 향기로운 이를 찾았으되 죄다 비린내 나는 어물전뿐인 것 같은 현실은 초의의 때와 지금이 똑같다.
그러나 또한 초의의 시에서 나는 온 성을 돌아다니며 아홉 해나 청산의 봄을 흘려보낸 것에 희망을 건다. 사표라는 이름은 언뜻 완성형으로 구현되는 듯하지만, 참된 도는 언제나 진행형으로 구현된다. 진풍(眞風)으로 향해 가려고 갈급하는 그 자리가 바로 진풍이다. 사표를 찾아 헤매며 전진하는 그 자리가 바로 사표이다. 때로 세상에 출현한 큰 스승이 우리를 이끌어 주기도 하거니와, 언제나 자신의 사표는 자기 안에 내재하는 법이다. 사표가 왜 없으랴. 성인과 현인이 남긴 글이 바로 사표이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며 주위에 감동을 주는 내 주변의 소시민들이 바로 사표이다. 사표를 갈급하며 진풍을 찾는 이가 바로 사표이다. 우리가 우리 안에서 사표를 찾아낸다면 난국 속에 어찌 길이 드러나지 않으랴.
다산은 초의를 가르치며 말했다. “물병 하나만 있다면 어딘들 샘이 없겠는가. 대지팡이 하나만 있다면 어딜 간들 길이 없겠는가.[但有一甁 何處無泉 但有一筇 何往無路]” 요컨대 사표가 보이지 않아 답답한 그 순간에 답은 나의 물병과 나의 지팡이에 있다.
당(唐)나라 때의 선승인 백장 회해(百丈懷海)는 말했다. “견처(見處)가 스승과 똑같으면 스승의 덕 반절 밖에 얻지 못한다. 견처가 스승을 넘어야 도를 전수받을 수 있다.[見與師齊 減師半德 見過於師 方堪傳授]” 요컨대 의타심만 내지 말고 용맹 투철하게 내가 참된 길을 얻으려는 마음에 답이 있다.
혼란한 시국에 사표를 그리다보니 초의의 시가 평소와는 다르게 읽히는지라 부회(附會)하여 말빚을 늘어놓았다. 발원컨대 부디 사표가 되어야 할 이도 사표를 갈급하는 이도 모두 사표가 되어지기를.
글쓴이 : 이승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권역별거점번역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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