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그저 달일 뿐이지만
보는 것은 똑같은 달이어도,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법
所見同一月 人情自殊視
소견동일월 인정자수시
- 이수광(李睟光, 1563~1628), 『지봉선생집(芝峯先生集)』16권 「견월사(見月詞)」
< 해설 >
달은 예로부터 무한한 영감을 불러일으킨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인류가 달에 착륙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달이 지구의 둘레를 도는 천체라는 사실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에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여전히 우리를 신비의 세계로 이끌고 간다.
계수나무 아래에서 떡방아를 찧는다는 달 토끼는 전래동화에 단골손님으로 자주 등장한다. 불사약을 훔쳐 먹고 달나라로 도망가서 두꺼비가 되었다는 항아(恒娥)의 이야기는 『회남자(淮南子)』에 전해 온다. 달에 계화(桂花)니 옥토(玉兔)니 은섬(銀蟾)이니 하는 별칭이 붙게 된 까닭이다.
임제(林悌)는 「무어별(無語別)」에서 “열다섯 살 어여쁜 아가씨 남부끄러 말 못하고 헤어지고선, 돌아와 겹 대문 닫아건 뒤에 배꽃 비친 달 보며 눈물 흘리네.”라고 하여, 이화(梨花)의 월(月)을 슬픈 이별의 메타포로 사용하였고, 황진이(黃眞伊)는 「영반월(詠半月)」에서 “누가 곤륜산 옥을 잘라내어, 직녀의 머리빗을 만들었을까. 견우 한번 떠나간 뒤에, 수심 젖어 푸른 허공에 던져버렸소.”라고 하여, 반달에서 머리빗의 이미지를 차용하였다.
달은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풍류와 낭만의 무대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들보에 비친 달빛을 벗의 얼굴로 착각하였다는 시성(詩聖) 두보(杜甫)의 「몽이백(夢李白)」은 그리움을 읊은 대표적인 시라고 할 것이다. 「파주문월(把酒問月)」을 비롯해 「월하독작(月下獨酌)」이라든가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 등의 작품을 통해 시선(詩仙) 이백(李白)은 그야말로 달밤의 음유시인(吟遊詩人)으로서 제일가는 낭만객이자 풍류객임을 증명해보이고 있다.
한국의 현대 작가 중에도 달 예찬으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나도향(羅稻香)은 그믐달 같은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고백했는가 하면, 김동리(金東里)는 거꾸로 꽉 찬 보름달을 사랑한다고 토로하지 않았던가. 모두 똑같은 달을 보았을 것이 분명한데, 왜 이렇게도 느낌이 판이한 것일까.
위에 소개한 구절은 조선 중기 문인 이수광(李睟光)의 「견월사(見月詞)」라는 시의 한 부분으로, 『지봉집(芝峯集)』 16권 「속조천록(續朝天錄)」에 수록되어 있다. 「속조천록」은 작자 나이 50세를 전후한 1611년 8월부터 1612년 5월 사이의 시들을 모아놓은 것인데, 세자의 면복(冕服)을 청하는 일로 동지사 겸 주청사로서 명나라에 사행을 다녀오면서 쓴 작품들이다. 「견월사」는 「속조천록」의 수록 순서로 미루어 짐작할 때, 1611년 8월 말에서 9월 초순경에 여로에서 지은 시인 듯싶다.
「속조천록」 앞부분에 중추 보름날 객지에서의 쓸쓸함을 읊은 시가 있는 것을 보면, 작자는 추석도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는 「견월사」에서 “집 떠나면 달 보고 시름에 젖고 집에 있으면 달 보고 즐거워하네. 똑같은 달을 보는 것이건만 마음 따라 다르게 보인다오.[離家見月愁, 在家見月喜, 所見同一月, 人情自殊視]”라고 말한다. 그리곤 발 닿는 곳이 곧 나의 집이며 달관한 자는 본래 무심하다고 한다. 이어 술잔 속의 달로 시를 지어 회포를 풀어내자, 그 마음이 마치 환한 달처럼 맑아졌다고 노래한다.
그러나 필자는 시구처럼 그가 그리움을 정말 떨쳐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였듯이, 달이 슬퍼 보인 것은 그의 마음이 슬펐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가 타향에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국사를 봉행하기 위함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한없이 고향타령만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낙천적인 기질과 달빛 아래 술잔을 매개로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현재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인 뒤, 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날을 조용히 꿈꾸지 않았을까.
올해 추석은 귀성에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또 그 때문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견월사」의 지은이처럼 가족을 보지 못한 사람들 역시 있었을 것이다. 이번 한가위에는 날이 흐리긴 하였으나 구름 사이로 보름달을 볼 수 있었다. 보는 이의 숫자만큼 다른 달이 되는 이치야 피할 수 없다고 해도, 올해의 달만큼은 하나같이 애틋하고 그리운 심정으로 바라보지 않았을는지. 저 달이나마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길 바라면서, 지금 그리운 마음에 비례해 훗날의 반가움은 더욱 클 것이라 생각해 본다.
글쓴이 : 이제유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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