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비슷해도 괜찮아

백광욱 2020. 11. 2. 00:03

 

비슷해도 괜찮아

 

무릇 ‘진(眞)’이라 말하거나 ‘초(肖)’라고 말할 때에는 그 속에 ‘가(假)’와 ‘이(異)’의 뜻이 내재되어 있다.

 

 

夫語眞語肖之際 假與異在其中矣

부어진어초지제 가여이재기중의


-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연암집(燕巖集)』권7 별집(別集) 「녹천관집서(綠天館集序)」

 

< 해설 >

‘세상엔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상처받기 쉽다.’ 영화 <완벽한 타인> 속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이다. 나는 박지원의 「녹천관집서(綠天館集序)」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영화 완벽한 타인의 이 대사가 떠올랐다. 박지원은 「녹천관집서」를 통해서 당시 사람들의 ‘글 짓는 법’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더 나아가 ‘우리의 삶’ 혹은 ‘나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박지원은 이 글에서 옛글을 모방하여 글 쓰는 것을 마치 거울에 비친 형체, 물에 비친 형체와 그림자의 형체처럼 모두 ‘진짜와 매우 닮은 것’, ‘진짜에 아주 가까운 것’일 뿐 진짜가 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하였다.(倣古爲文 如鏡之照形 可謂似也歟 曰左右相反 惡得而似也 如水之寫形 可謂似也歟 曰本末倒見 惡得而似也 如影之隨形 可謂似也歟 曰午陽則侏儒僬僥 斜日則龍伯防風 惡得而似也 如畵之描形 可謂似也歟 曰行者不動 語者無聲 惡得而似也 曰然則終不可得而似歟 曰夫何求乎似也 求似者非眞也) 즉, 맹자가 말한 ‘사이비(似而非)’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박지원이 말하는 ‘진짜’는 무엇이고, ‘가짜’는 무엇일까? 진짜의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일까? ‘저게 바로 진짜고 이게 바로 가짜야!’라고 누가 명쾌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서른을 앞두고 인생을 되돌아 생각해보니 나의 인생에서 오롯이 ‘진정한 나’, ‘완벽한 진짜 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순간이 언제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까마득히 어렸을 적 기억은 모두 휘발되어 사라졌고, 초등학생 때는 부모님과 선생님께 칭찬받는 것이 좋아서 내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칭찬받는 친구들처럼 꾸준히 학급회장을 도맡아 했던 것 같다. 중, 고등학생 때는 다른 친구들이 다 열심히 공부하니까 나도 당연히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에 가야 된다고 생각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다른 친구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니까 나도 아르바이트를 했고, 다른 친구들이 여행을 가니까 나도 여행을 떠났고, 다른 친구들이 연애를 하니까 나도 연애를 했다. ‘나 정말 이걸 하고 싶어!’라고 생각해서 한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하니까 나도 저 사람들이랑 비슷하게는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슬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이랑 비슷하게 살았던 삶 속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 느낄 수 있는 행복, 슬픔, 추억, 경험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때문에 나는 나의 유년기, 청소년기, 그리고 20대를 그 누구보다 처절하게 열심히 살았고, 너무 행복했고 고마웠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앞으로 남은 인생도 남들과 비슷하게 살려고 노력하면서 그 속에서 나만의 ‘진짜’를 만들어나가며 살아갈 것 같다. 나와 같이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보통 사람들이 너무 완벽해지려다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쓴이 : 문윤미
범계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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