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사회를 위하여
잘 다스려지는 시대의 재물은 흩어져 있는데 흩어져 있으면 나라가 부유해지며,
쇠락한 시대의 재물은 한 곳으로 모이는데 모이게 되면 나라가 빈곤해진다.
治世之財散 散則國富 衰世之財聚 聚則國貧
치세지재산 산즉국부 쇠세지재취 취즉국빈
- 신최(申最, 1619-1658), 『춘소자집(春沼子集)』3권 「원재(原財)」
< 해설 >
춘소 신최(申最, 1619-1658)는 조선 중기의 저명한 문인이었던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의 손자이자 선조(宣祖)의 부마(駙馬)였던 낙전당(樂全堂) 신익성(申翊聖, 1588-1644)의 아들이다. 당대를 대표하는 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났던 그는 일찍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장래가 촉망되던 인물이었다. 그는 30세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순조롭게 관료 생활을 이어나갈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큰형 신면(申冕, 1607-1652)이 김자점(金自點)의 옥사(獄事)에 연루되어 비극적 최후를 맞은 이후로는 가문이 급격히 몰락하였다. 이에 따라 신최 역시 주로 외직(外職)을 전전하며 낭천(지금의 강원도 화천) 현감(狼川縣監), 함경도사(咸鏡都事) 등을 지내고 40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삶은 고단하였지만, 신최는 누구보다도 큰 포부를 지니고 살았던 인물이었다. 그는 올바른 정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집대성하여 모두 11편의 원(原) 체 산문을 지었는데, 이 연작은 이른바 ‘십일원(十一原)’이라 불리며 큰 반향을 얻었다. 그중 한 편이 재물의 문제를 논한 「원재(原財)」이다. 이 글에서 신최는 부의 분배 문제에 대해 논하면서 부가 분산되어야 나라는 부유해질 것이고, 부가 편중되면 나라는 빈곤해질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세금을 가볍게 하면 재물이 여러 사람들에게 흩어질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넉넉해진 개인의 재정을 활용해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에 기반한 주장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개인의 부가 축적되면 국가도 부강해진다는 생각으로, 신최는 이것이야말로 『예기(禮記)』에서 말하는 “백성들과 그 이익을 함께 한다(與民同利)”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비록 신최는 자신의 이론을 현실에 적용해 볼 기회를 가져보지는 못한 채 삶을 마감하였으나, 그의 견해는 현대의 이른바 소득 주도 성장론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아 현대인들이 한번쯤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이익을 추구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어 부를 가졌건 그러지 않건 간에 조금이라도 더 부를 소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의 소유만이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우려될 때가 많다. 그러나 개인의 이익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는 결국 다툼을 불러일으키게 될 뿐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 보다 공정한 사회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신최가 주장했던 것처럼 부의 집중보다는 공정한 분배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글쓴이 : 김광년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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