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나의 이름은

백광욱 2020. 10. 7. 00:04

나의 이름은

 

< 번역문 >

나의 먼 일가 진주 김종기 군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에게 다소 문명이 있다 하여 먼저 편지를 보내 교유를 청하였다. 이후로 문자와 관련된 나의 일을 도운 적이 매우 많았는데 『한사이정』의 간행에 더욱 크게 힘을 다하여, 오백 년 왕조의 명철한 왕과 왕후, 어진 재상과 장수, 이름난 유자와 선비, 효자와 정녀의 일이 거의 후세에 전해질 수 있도록 하였으니, 이야말로 천하의 장자가 아니겠는가. 하루는 군이 나에게 편지를 보내 “나의 벗이, 내가 독산에 살고 있다 하여 독은이라고 불렀는데 오랜 시간 동안 전파되었기에 마침내 사양하지 못하였으니, 그대가 설 하나를 지어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였다. “은의 의미는 하나가 아니니, 그대의 벗이 가리키는 의미는 어디에 있습니까?” 군이 말하였다. “그대가 그저 상세히 말해주십시오.” 내가 말하였다. “위야나 임포 같은 부류는 구준, 한기, 범중엄 등 여러 사람이 등용되던 때를 만나 자신의 재주가 그들만 못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벼슬하지 않았으니, 이는 아래 단계의 은자입니다. 매복이나 관녕 같은 부류는 왕망, 조조에게 차마 더럽혀질 수 없어 옥사산 및 요동의 들판에 은거하였으니, 이는 가운데 단계의 은자입니다. 장량은 한(韓)나라의 멸망을 슬퍼하여 만금의 재산을 흩어 역사(力士)를 뽑아 진시황을 습격하려다 실패하고는 한(漢)나라에 의탁하여 계책을 세워 끝내 진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그러다 만년에 이르러서는 신선술과 벽곡술을 칭탁하여 자신을 보전하였으니, 위 단계의 은자입니다. 아래 단계의 은자는 그대에게 걸맞은 부류가 아니니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가운데 단계의 은자는 그대에게 걸맞은 부류이지만 그들의 일이 자신의 몸만 선하게 하는 데 그쳤으니, 그대가 그들을 본받게 할 수는 없습니다.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의를 좋아하는 그대가 본받을 만한 은자는 장량이지 않겠습니까. 공자께서 ‘인에 대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 원문 >

吾遠宗晉州金種驥君好文學, 以余薄有文名, 先馳書問交. 自是以往, 助余文字事者甚多, 而於韓史釐正之刊, 尤大出力, 使五百年明辟哲后賢相良將閎儒名士孝兒貞女之事, 庶幾得傳於後世, 此非天下長者哉! 一日君抵書言曰, 吾朋友以吾家於篤山, 呼爲篤隱, 久而傳播, 故遂不得辭, 子可爲一說否? 余曰, 隱之義非一, 子之朋友所指之義, 在於何歟? 君曰, 子第詳言之. 曰, 如魏野林逋之流, 當寇準韓琦范仲淹諸人登庸之世, 自知其才之不及諸人, 而不之仕, 此隱之下也. 如梅福管寧之流, 不忍受汚於王莽曹操, 而避居于玉笥山及遼東之野, 此隱之中也. 張留侯痛韓之亡, 散萬金之財, 募力士擊秦皇不得, 歸漢畫策, 竟以滅秦. 至其晩年, 托於神仙辟穀之術, 以全其身, 此隱之上也. 下焉者, 於君非其倫也, 不足言. 中焉者, 於君爲其倫, 然其事止於獨善其身, 則不足以使君效之. 以君之輕財好義, 所可效者, 將不在留侯哉! 孔子曰, 當仁, 不讓於師.

 

-김택영(金澤榮, 1850~1927), 『소호당집차수정잡수(韶濩堂集借樹亭雜收)』권2, 「독은별호설(篤隱別號說)」

 

< 해설 >

요사이 방송가의 가장 큰 화제는 단연 ‘부캐’이다. 본디 온라인 게임 용어로, 주로 가동하는 캐릭터라는 의미의 ‘본캐’ 이외의 보조 캐릭터를 가리키는 말이다.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한 인물을, 프로그램 내에서 진행되는 에피소드에 따라 예닐곱 가지의 ‘부캐’로 설정하여 각각 이름을 달리 주고 그에 맞는 역할을 부여한다. 에피소드에 따라 유명 인물을 패러디하기도 하고 시청자들의 의견을 받아 새로운 이름의 인물을 창조해내기도 한다. 어느 ‘부캐’로 분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분장과 의상처럼, 해당 인물은 캐릭터에 녹아들어 연기하면서 역할을 수행해나가고, 이는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웃음을 준다. 이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부캐’ 열풍은 점차 확산되고 있고 당분간 방송가의 유행이 될 듯하다.

 

‘부캐’가 대중을 매료시키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그가 누구인 줄 누구나 뻔히 아는데도 뻔뻔하리만치 다른 사람인 양 연기하는 능청스러운 그 모습에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대중에게 이미 익숙한 존재에 여러 이름을 부여함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하여 대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면이 좀 더 본질적이지 않을까 싶다. 이로 보았을 때 이름 자체가 존재를 온전히 대체할 수 없지만, 존재에 있어서 이름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다는 사실을 반증할 수 있겠다.

 

이름의 무게에 대해서는 옛 사람들도 인식하고 있었던 듯하다. 어떤 사람을 부르는 기제가 성명(姓名) 이외에도 자와 호가 있었던 점을 생각해보면 그 인식이 오늘날보다 더 뚜렷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자(字)는 대체로 이름의 뜻을 뒷받침하는 글자를 가져다 지었기에 어떤 새로운 의미를 담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다. 이와 달리 호는 자신의 호를 스스로 짓든, 다른 사람의 호를 짓든, 대체로 짓는 사람의 바람과 지향을 대상에 투사하는 경우가 많다. 대상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그 존재가 지향점에 닿기를 바라는 것이다.

 

위는 1924년에 김택영이 김종기에게 호를 지어주면서 그 배경과 이유를 설명한 글이다. 저자는 먼저 대상과 교유를 맺은 계기를 서술하고, 그를 천하의 장자라고 인식하게 된 이유가 자신의 편찬 사업, 그 중에서도 『한사이정』 의 간행에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이는 맥락상 금전적인 도움이었던 듯하다. 대상에 대한 서술은 간략하면서도 이미지는 명확하게 전달된다.

 

그런데 저자가 1925년에 지은 「김종기소전(金種驥小傳)」의 내용은 비교적 상세하면서도 차이가 다소 있다. 저자가 단군 이래로 조선까지 근 오천 년 간의 우리나라 역사를 다룬 『한국소사(韓國小史)』라는 책을 쓸 때 조선 태조의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에 대해 사실대로 기술하였고, 이 사실을 기휘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책의 간행을 앞두고 유림의 성토를 받게 되었는데, 금력이 모자랐던 저자가 김종기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유림의 성토를 함께 받을까 염려하는 말을 하였으나, 그가 흔쾌히 도와주더라는 내용이다.

 

두 글에서 저자가 편찬했다는 책 제목이 다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유추할 수 있겠지만 사실을 특정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다만 저자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김종기소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저자는 애초에는 대상을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에 입전된 사람들처럼 재산을 써서 인의를 행함으로써 한 세상을 호협하게 사는 인물로 인식하였다가, 『한국소사』를 간행할 때에는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명신 인상여(藺相如)와 함께 역사에 길이 남을 대의(大義)를 지닌 사람이라고 평가하였다.

 

이는, 대상이 장량과 같은 은자를 지향하길 바라는, 저자의 바람과 다시 만난다. 그리고 그 바람은 결국 저자 자신에게 향해 있다. 어찌 보면, 조국인 한(韓)의 원수를 갚기 위해 한(漢)에 의탁하여 조국의 원수인 진나라를 멸망시킨 장량의 모습은, 일본에 침략당한 대한(大韓)을 떠나 중국으로 망명하여 조국의 문화 계승을 위해 역사와 문학 서적을 간행하는 데 평생을 바친 저자 자신과 닮아 보이기도 하다. 또한 저자가 대상에게 하필 역사 속의 수많은 은자들 중 장량을 본받으라고 한 이유는, 그가 결국 조국의 원수를 갚고 속세를 훌쩍 떠나 유유자적하게 살았기 때문이었으니, 이는 저자의 바람이기도 했으리라.

 

‘독은(篤隱)’이라는 호를 가진 옛 사람은 재물을 써서 인의를 실천하였으면서도, 모르긴 모르겠거니와, 평생 동안 이 글을 읽고 또 읽으며 끊임없이 장량을 바라고 지향했을 것이다. 이름이란, 살아 있는 동안은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다른 사람들이 부르고 또 부르기에 더욱 스스로를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수십 번은 더 불렸을 내 이름을 생각하며, 지금 내가 바라고 지향하는 이름은 무엇인가 돌아본다. 그 이름을 되뇌고 되뇌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그러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글쓴이 : 강만문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