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나의 깨달음이 되기를
< 본문 >
만물을 잘 관찰하는 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만물이 없다.
善觀物者 無物不爲助
선관물자 무물불위조
- 안정복(安鼎福, 1712∼1791), 『순암집(順菴集)』12권 「상헌수필(橡軒隨筆)」
< 해설 >
이 세계 속에서 우리는 모든 만물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나의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이고 만물에 감응해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어떤 일, 어떤 사람, 혹은 무언가에 의해 내 마음이 즐겁기도 슬프기도 또 화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마음은 만물에 좌우되고 마는 수동적인 존재인 것 같다. 그렇긴 해도 때로는 만물을 고요히 관찰하다 보면 특별한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다. 이름 모를 작은 풀이 아스팔트를 뚫고 자라나거나 붉은 매화가 눈보라 속에 꽃을 피우는 것을 보고 고난 극복의 다짐을 상기한 것 등이 그러하다. 얼마나 만물을 잘 관찰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이 수동적이냐 주체적이냐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만물을 잘 관찰하려면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당장 굶어죽을 판에 눈 속에 핀 매화를 관찰하기란 어렵다. 반면 도량이 큰 사람은 생사를 가르는 순간,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일지라도 그 순간과 상황마저 관조의 대상이 되어 이를 통해 깨달음을 추구하는 여유가 있다. 송나라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는 자신에게 비난과 조롱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이를 문학의 원천으로 승화시켰다고 한다. 이 정도는 되어야 천태만상의 만물이 모두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어려운 일 앞에서는 마음의 여유를 잃고 만다. 지금의 고난을 통해 분명 배울 점도 있고, 또 이 고난이 나를 한층 성숙시킬 수도 있을 터인데, 이를 깨닫지 못하고 눈앞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분분하여 내 본모습을 잃을 때가 있다. 만물을 관찰하지 못하고 그냥 만물에 휩쓸려 가버린 것이다. 나 역시 만물을 관조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을까? ‘만물을 잘 관찰하는 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만물이 없다.’는 구절을 보면서 삶의 모든 순간이 깨달음이 되기를 바라본다.
글쓴이 : 김준섭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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