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잘하는 점이 있으면 드러내 주고
남에게 잘못한 점이 있으면 덮어 주어라.
남이 나에게 대들어도 맞서지 않고
남이 나를 비방해도 말없이 참는다면
대들던 사람이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비방하던 사람도 스스로 그만둘 것이다.
人有善而揚之, 人不善而掩之.
인유선이양지, 인불선이엄지.
人犯我而不較, 人謗我而默默, 則犯者自愧, 謗者自息矣.
인범아이불교, 인방아이묵묵, 즉범자자괴, 방자자식의.
- 김충선(金忠善 1571-1642),〈가훈(家訓)〉,《모하당집(慕夏堂集)》
1592년 가등청정(加藤淸正)의 선봉장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한 스물두 살의 청년 사야가(沙也可)는 명분없는 전쟁에 회의를 품고 부산에 상륙한 지 8일째 되던 날 조선에 투항합니다. 그리고 조총과 화약의 제조 기술을 조선에 전수하며 조국 일본에 대항하였고, 그 공로로 선조 임금으로부터 김충선(金忠善)이란 이름을 하사받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1624년의 이괄의 난과 1636년의 병자호란에서도 그는 전투에 참여하여 전공을 세웁니다. 그의 이름대로 조선의 충신(忠臣)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조선인에게는 여전히 이방인이었습니다. 아무리 나라에 많은 공을 세우고 조정으로부터 특별한 혜택을 받은들 여전히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현대 사회에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방인들이 많습니다. 중소기업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 농촌에서 다문화가정을 꾸리고 있는 이주 여성,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 이들 모두 우리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핍박과 착취를 일삼기도 합니다.
위의 가훈은 김충선이 왜란이 끝나고 대구 달성에 정착한 후 지은 것입니다. 일반 사대부의 말이라면 그저 평범한 교훈에 지나지 않겠지만 귀화인 김충선이 남긴 말이기에 오늘날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글쓴이 최채기(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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