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초당(草堂)에서의 하루

백광욱 2014. 8. 9. 19:39

초당(草堂)에서의 하루

 

 

초당(草堂)에서의 하루

초당에 올라앉으면 사립문 열 것도 없어라
이미 절로 환히 트여 산자락에 기대 있네
적적하게 서책 읽으며 한여름을 지내고
한가로이 두건 젖히고 석양을 보내노라
인가에는 아녀자들 연기 속에 수런거리고
오솔길엔 소와 양이 수풀 속에 돌아가누나
이 백성 모두 제 살 곳을 얻게만 된다면
늙은 선비 본마음에 어긋남이야 어찌 한하리

升堂不用啓前扉
已自虛明倚翠微
寂寂携書經盛夏
悠悠岸幘送斜暉
數家婦子煙中語
一逕牛羊草際歸
但使蒼生皆得所
老儒何恨素心違

- 김춘택(金春澤, 1670~1717)
「초당(草堂)에서 저녁에 바라보다(堂中夕望)」
『북헌거사집(北軒居士集)』 권6
 



  참으로 다난(多難)했던 지난날이었다. 왕실의 인척(姻戚)이기에 조정(朝廷)에서 멀리 떨어져 거리를 두고 살아왔건만 세상 사람들은 나를 놓아두지 않았다. 서로 입장이 다른 정치 세력 사이의 알력과 쟁투에 휩쓸려 많은 상처를 입었다. 스물여덟에 주비(朱棐)의 옥사(獄事)에 관련되었다고 김천(金川)에 처음 유배되었다. 두 해 뒤에 사면되었으나 이윽고 서른둘에는 부안(扶安), 서른일곱에는 해남(海南)과 제주(濟州)에 유배되었다. 4년 뒤에 겨우 임피(臨陂)로 이배(移配)되었다가 다시 두 해 뒤에 풀려나기까지 인생의 전반부를 유배와 해배(解配)가 반복되는 가운데 보냈다.

  광주(廣州) 노산(蘆山)의 기슭으로 거처를 옮겼다. 부친을 장사 지낸 곳이다. 아버지 곁에서라면 지난 시절의 상처들이 조금은 아물 수도 있을 것이었다. 가난한 내 삶에 어울리는 초당을 지었다. 사립문이 겸손히 몸을 낮추고 산속에 포근히 안겨 있는 곳이다. 고요한 산속에서 서책에 푹 빠져 여름의 무더위를 잊기도 하고,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서서 저 멀리 석양을 보내곤 한다. 저만치 있는 마을에서는 오늘도 아녀자들이 밥 짓는 연기 속에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길게 뻗은 작은 길에는 소와 양이 수풀 사이로 총총거리며 제집으로 돌아간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산간(山間)의 담박(淡泊)한 일상. 그러나 불쌍한 이 백성들이 흡족하게 살 수만 있다면 산중 생활이야 얼마든지 버리고 세상에 나갈 수 있으리라. 자신처럼 곤궁한 천하의 한사(寒士)들을 따뜻하게 감싸 주고 싶다고 노래하였던 두보(杜甫)의 마음처럼...*

  이 시를 지은 김춘택(金春澤)은 본관이 광산(光山)으로,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었던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 그의 오대조(五代祖)이고 조부는 숙종(肅宗)의 정비(正妃) 인경왕후(仁敬王后)를 낳은 서석(瑞石) 김만기(金萬基)이다. 대학자(大學者)의 후예이자 벌열가(閥閱家)의 자제로, 정치적 부침(浮沈)에 따라 가문이 화(禍)를 입는 것을 목격하였기에 그는 평생 조행(操行)을 삼가며 포의(布衣)로 삶을 마쳤다. 그가 졸하고 160여 년이 지난 고종 23년(1886) 조정에서는 그의 학문과 삶을 기려 그를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추증(追贈)하였다.

* 자신처럼……마음처럼 : 당(唐)나라의 시인 두보(杜甫)가 초가집이 가을바람에 부서진 것을 한탄하며 지은 「모옥위추풍소파가(茅屋爲秋風所破歌)」시에 “어떻게 하면 천만 칸 넓은 집을 얻어 천하의 한사(寒士)를 크게 감싸 주어 다 기쁘게 하고 비바람에도 끄떡없이 산처럼 평안하게 할까.[安得廣廈千萬間 大庇天下寒士俱歡顔 風雨不動安如山]”라고 하여, 아름다운 이상(理想)을 꿈꾸며 자신은 비록 집이 무너져 얼어 죽게 되더라도 이런 집을 보게 된다면 여한이 없을 것이라고 노래한 일이 있다.

 

글쓴이 : 변구일(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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