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떠돌이 백성들의 탄식(流民嘆)

백광욱 2014. 5. 15. 09:41

떠돌이 백성들의 탄식(流民嘆)

 

 

떠돌이 백성들의 탄식[流民嘆]

곤란에 처한 백성들이여!
흉년 들어 너희가 먹을 것이 없을 때
나는 너희를 구할 마음 있어도
너희를 구해낼 힘이 없구나.
고통에 빠진 백성들이여!
추위에 너희에게 덮을 것이 없을 때
저들은 너희를 건질 힘이 있어도
너희를 건질 마음이 없구나.
잠시나마 소인 심보를 돌려
군자의 마음을 먹어 봤으면.
잠시나마 군자의 귀를 빌려
백성의 목소리를 들어 보았으면.
백성이 말을 해도 임금이 모르니
오늘날 백성 모두 살 터전을 잃었네.
궁궐에서 백성을 근심하는 조서를 내렸다 해도
주ㆍ현에 오면 그저 빈 종이 돌려보듯.
백성 고통 묻겠다며 서울 관원 특파하여
역마로 하루에 삼백 리를 달려온들
백성들은 기운 없어 문턱도 못 나서니
마음속에 있는 말들 만나 할 겨를이 있을까
군마다 서울 관원 보낸다 해도
관원에겐 귀가 없고 백성에겐 입이 없네.
회양 태수(淮陽太守) 급암(汲黯)을 기용한다면
살아남은 백성들을 구할 수 있으련만.

蒼生難蒼生難
年貧爾無食
我有濟爾心
而無濟爾力
蒼生苦蒼生苦
天寒爾無衾
彼有濟爾力
而無濟爾心
願回小人腹
暫爲君子慮
暫借君子耳
試聽小民語
小民有語君不知
今歲蒼生皆失所
北闕雖下憂民詔
州縣傳看一虛紙
特遣京官問民瘼
馹騎日馳三百里
吾民無力出門限
何暇面陳心內事
縱使一郡一京官
京官無耳民無口
不如喚起汲淮陽
未死孑遺猶可救

- 어무적(魚無迹, ?~?)
「유민탄(流民嘆)」
『속동문선(續東文選)』
 



  이 시를 쓴 어무적은 연산군 때 시인으로, 사직(司直)을 지낸 어효량(魚孝良)과 천비(賤婢)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자로 태어나 국법에 구애되어 과거를 보지 못하였지만, 재주가 뛰어나다는 이름이 있어 후에 면천(免賤)되어 율려습독관(律呂習讀官)이라는 말직을 지냈습니다.

  이 시에서는 먼저 곤란에 처한 백성이 굶주려 곤궁하고, 헐벗어 고통받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데 대한 무력감을 토로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무언가 하고 싶어도 할 만한 힘이 없는데, 무언가 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할 마음이 없다고 개탄합니다. 중앙에서 백성을 생각한다며 만든 온갖 지시 사항들도 지방에 오는 사이 한낱 쓸모없는 종잇장이 되어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임금이 백성들의 말을 듣지 못하는 사이 백성들은 모두 터전을 잃고 뿔뿔이 흩어집니다. 가슴속 가득한 말을 펼 기력조차 없는데, 서울서 내려온 관리는 들을 귀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한(漢) 나라의 급암은 동해 태수(東海太守)와 회양 태수(淮陽太守)를 거치는 동안 선정(善政)을 베풀었다는데, 이런 지도자를 만나야 아직 죽지 않고 붙어 있는 목숨 구할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7년(1501) 7월 28일 기사에는 어무적이 율려습독관으로 있으면서 올린 장문의 상소가 실려 있습니다. 이 상소의 첫머리에, 재앙의 징조가 자주 나타나는 것이 미진한 데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며, ‘새는 지붕은 위에 있지만, 새는 줄 아는 자는 밑에 있다.[屋漏在上 知之者在下]’라는 말로 자신이 상소를 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 말은 위에서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건 고스란히 아래에 있는 사람들 몫임을 비유한 것입니다.

  어무적은 상소에서 몇 가지 조목들을 나열해 폐단을 바로잡을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그 첫째는 큰 근본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군주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성실하게 해야 천리(天理)가 이기고 인욕(人欲)이 사라져 군자가 가까이 오고 소인(小人)이 멀어지며, 아첨하는 사람이 간사(奸邪)함을 부릴 수가 없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 성패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선비들의 기개(氣槪)를 기르는 일에 대한 것입니다. 선비들의 기개를 진작시키는 길은 언로(言路)를 크게 틔워서 어진 이를 끌어올리고 부정(不正)한 사람을 물리치는 것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무적은 이밖에도 사대부들의 잔치 때에 노래하고 춤추는 여악(女樂)의 사치하는 폐단을 없애 공검(恭儉)한 교화(敎化)를 펼칠 것, 곡식을 축내는 술[酒]을 금지할 것, 이단을 금하는 법을 세울 것, 성(城)을 쌓는 것 같은 큰 역사(役事)를 일으키지 말 것 등을 주장하였습니다.

  조선 중기 어무적이 지적한 병폐들이 오늘날의 병폐와 겹치면서 시대가 달라도 문제의 원인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에는 변함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국민의 생명과 윤리는 뒷전이 되고 권력과 이윤만이 판을 치는 사회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믿으면 속는 것이 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국민들은 떠돌이 백성마냥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구할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구할 힘이 없는데, 구할 힘이 있는 사람들은 구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아 답답할 뿐입니다.

 

글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