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위기를 맞고도 안정시키려 하지 않으면

백광욱 2014. 5. 22. 08:04

위기를 맞고도 안정시키려 하지 않으면

 

 

위기를 맞고도 안정시키려 하지 않으면
상지(上智)의 사람은 미연에 환히 알고 있으므로 난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스리고 나라가 위태롭기 전에 미리 보전하며,
중지(中智)의 사람은 이미 일어난 뒤에 깨닫게 되므로 난인 줄 알고 다스릴 것을 도모하고 위태로움을 알고 안정시킬 것을 도모한다고 하였습니다.
난이 닥쳤는데도 다스릴 것을 생각하지 않고 위태로움을 보고도 안정시킬 방도를 강구하지 않는다면 이는 하지(下智)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上智明於未然。制治于未亂。保邦于未危。
상지명어미연   제치우미란   보방우미위
中智覺於已然。知亂而圖治。識危而圖安。
중지각어이연   지란이도치   식위이도안
若夫見亂而不思治。見危而不求安。則智斯爲下矣。
약부견란이불사치   견위이불구안   즉지사위하의

- 이이(李珥, 1536∼1584)
 「시폐(時弊)에 대해 진달한 상소 임오년(1582, 선조15)[陳時弊疏 壬午]」 
 『율곡선생전서(栗谷先生全書)』

 

  
  율곡 이이가 선조(宣祖)에게 올린 상소의 내용입니다. 지혜가 가장 뛰어난 사람은 위기를 미리 예방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위기가 발생한 뒤에도 수습하지 못하고 안정시킬 방도를 찾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율곡은 이 상소에서 당시 조선의 상황을 위기로 규정하고 경장(更張)을 할 것을 주장합니다. 그가 뒤이어 한 말을 보면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대관(大官)들은 녹봉만을 유지하면서 실지로 나라를 걱정하는 뜻을 지닌 사람이 적고, 소관(小官)들도 녹 받아먹기만을 탐내면서 전혀 직책을 수행하려는 생각을 하지 아니하여 서로 옳지 못한 행위만을 본받으므로 관직의 기강이 해이해졌습니다. … 신 역시 ‘경장(更張)하지 않으면 나라는 필시 망할 터인데 그냥 앉아서 망하기만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경장하는 것이 낫다.’고 말할 수 있으니 경장하여 잘 되면 사직(社稷)에 복이 될 수 있습니다. 경장하여 잘못되더라도 망하는 것을 재촉하는 것은 아니고, 경장하지 않고 있다가 망하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1997년에 국제통화기금에서 구제 금융을 받을 때 나라가 망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 후 온 국민이 힘을 합해서 그 나라를 다시 세웠습니다. 이제 국민소득 2만 불의 선진국에서 산다고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여겼습니다. 그러나 지난 한 달여 기간을 통해 이런 자부심은 다 사라지고 나라가 빈껍데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험이란 것이 예외적인 상황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안전하다 여기는 일상이 위험한 기초 위에 세워져 있었다는 것, 우리가 믿고 있었던 시스템이 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험이 너무 일상적이고 거대한 것으로 느껴지기에 오히려 이제는 그냥 위기와 불안에 대해 체념하려는 마음까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는 일, 일상의 위기를 알았다면 그것을 안정시킬 방도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이 위기는 이 사회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위기로 받아들이고, 위험부담이 균등하게 분배되어 그 위험으로 특별히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입는 사람이 없도록 하여 그 위험을 근원적으로 줄이려 할 때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지혜로운 상지(上智)의 사람이길 바라기는 힘들더라도 가장 어리석은 하우(下愚)는 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글쓴이 : 남지만(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