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 속에 쌓이는 빛나난 것들
무슨 일이든 꾸준히 하다보면 이런저런 기회들과 마주하게 마련입니다. 내 능력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내 잠재력을 꺼내주는 사람에게서 연락을 받는 날도 있지요. 비슷한 경험이 종종 있었습니다. 같이 일하자 손을 내밀어 주거나 새로운 기회를 제시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즐거웠습니다. 자존감이 한껏 차오르는 순간이었죠.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습니다. 의심과 조바심, 다양한 감정과 질문들이 뒤섞여 있었죠. 스스로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겠죠. 퇴사 후였습니다. 나에 대한 불신이 더 커지고 든든한 배경이었던 회사가 사라지고 오로지 내 이름만 남았을 때 나 자신이 너무나 미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죠.
멋진 기회 앞에서도 의심했습니다. 아직 능력도 없고 하찮은 것 같은데 왜 나한테 이런 기회가 오는 걸까? 모자람은 너무 크고 잘하는 건 하나도 없어 나서기에도 모호했습니다. 감당할 수 없이 넓은 물 위에 초라한 종이배 한 척을 띄운 기분이었지요. 그렇다고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노를 젓지 않으면 침몰 직전이었으니 말이죠. 사업은 커져야 했고 최소한의 돈을 벌어야 살 수 있었으니까요. 콘텐츠는 더 많은 사람과 만나 관계를 맺어야 일말의 생명력을 얻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보고 듣고 느껴야 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모든 일의 근간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결국 가치있는 것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회사에서 일합니다. 공들여 만들어 마침내 공개하고 영향력을 미치려 최선을 다하지요. 10년 이상 한 분야에서 실수도 하고 칭찬도 받아가며 꾸준히 성장해왔으면서도 작은 확신이 없었던 겁니다. 내가 진짜 잘하는 게 뭔지, 내 약점은 무엇인지 심사숙고할 시간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사에서 팀으로 일할 땐 서로 약점을 감싸주기도 하니까요. 훌륭한 동료들 사이에서는 의심할 게 없습니다. 스스로의 역량을 돌아볼 필요가 없었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임상심리학과 교수 기타 야코프는 <매일, 조금씩 자신감 수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감 있는 사람은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알고 있으며, 모두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이를 보통 자의식이라고 부른다. (중략) 또한 자신감 있는 사람은 성공과 실패로부터 자유롭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인정할 줄 안다. 이를 자긍심이라고 한다.
약점에 대한 인식은 희미한 채 강점만 취하며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던 그때의 자의식은 다소 부풀어 있는 상태였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한껏 좋아하고 진심으로 열심히 일하던 회사가 그 자체로 든든한 배경이었죠. 억대 연봉을 버는 직장도 아니었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고위직도 아니었지만,'에디터'라는 직함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일의 권능과 즐거움을 한껏 누렸습니다. 천직이 있다면 이런 거라고 생각했었죠.
퇴사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회사라는 울타리 밖에서 이름만 남았을 때, 지금까지 만들던 콘텐츠는 회사와 브랜드의 어마어마한 후광효과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회사와 팀의 빛이 사라지자 벌거숭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은 무용지물. 자신감, 자존감, 자긍심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자꾸만 밖에서 확인하고 싶었던 겁니다. 회사가 지켜주던 자존감이 사라지자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게 된 것이죠. 너새니얼 브랜든은 <자존감의 여섯 기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존감은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에 의해 형성된다. (중략) '외적' 요인은 환경을 의미하는데, 여기에는 부모, 교사, 의미 있는 타인, 조직, 문화로부터 전달받는 언어적 비언어적 메세지와 그러한 외부와 교류함으로써 얻는 경험이 있다.
바로 이 외적 요인들이 퇴사 이후의 자존감을 지탱해주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초대와 환대, 기회와 인정으로 가까스로 유지하던 시간. 그마저도 길지 않았죠. 진짜 중요한 건 타인의 평가가 아니니까요. 너새니얼 브랜든은 "개인의 내면에 존재 하는 것. 또는 생각이나 신념, 실천, 행동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을 내적 요인으로 정의했습니다. 외적 요인과 내적 요 인은 자전거의 두 바퀴와 같지 않을까요. 하나가 망가지면 달릴 수 없습니다.
스스로의 힘을 길러내지 못하면 그대로 고꾸라진다는 걸 외적 요인에서 위로받으면서 깨달았습니다. 이제 내적 요인에 집중할 때였습니다. 원래 내 안에 있던 것, 내가 쌓아온 것, 나만이 해낼 수 있는 가치를 바라봐야 한다는 뜻이었죠.
자존감의 두 바퀴를 이해하고 나서야 조금씩 자유를 느낀 것 같습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에 자존감을 위탁한 채 휩쓸리는 대신 스스로를 바라보기로 했죠. 불안해하다 위로 받고, 바닥을 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면서 퇴사 이후의 시간은 그렇게 지내왔습니다.
자존감, 자존심, 자긍심, 자신감... 너무나 많은 기준에 둘러 싸여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 모든 기준을 높여 충족시키기 위해 오히려 전전긍긍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나쯤 낮으면 어떤가요. 채우려고 애쓰지 않으면 또 어떤가요. 시간은 절대 우리를 배신하지 않고, 꾸준함 속에 쌓인 것들은 고스란히 내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를 배신하지 않기 위해. 언젠가 빛날 거라는 사실 하나만을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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