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뉴트로
사람의 성품은 음악에 모두 드러난다.
후세의 음악이 옛 음악보다 못하게 된 것은
사람들의 성품이 옛날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人之性情, 皆現於樂. 後世之樂, 不及古樂, 人之性情, 不古故也.
인지성정, 개현어악. 후세지악, 불급고악, 인지성정, 불고고야.
위백규(魏伯珪, 1727∼1798), 《존재집(存齋集)》 〈독서차의(讀書箚義)·논어(論語)〉
뉴트로는 뉴(new)와 레트로(retro)의 합성어이다. 레트로는 복고주의이며 옛것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에 기반한 취향이다. 뉴트로는 뉴가 붙은 만큼 단순히 옛것에 대한 애호가 아니라 옛것을 가져와 새롭게 지금의 것으로 만들어 즐기는 것을 가리킨다. 사실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사례를 보면 레트로와 뉴트로가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도 굳이 구분하자면 뉴트로는 옛것의 핵심적인 기능이나 정서를 뼈대로 하면서도 그대로 쓰지 않고 현대적인 감각이나 디자인을 가미하여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는 가수 임영웅을 좋아한다. 방송국마다 하나씩 나오는 트로트 프로그램 그리고 불후의 명곡이라는 tv프로그램의 애청자이기도 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옛날에 유명했던 가수들의 명곡을 부른다. 그러나 그때 그사람이 아니라 어머니의 자식 혹은 손주뻘 되는 젊은 사람들이 부른다. 그런 점이 재밌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젊었을 때 좋아하던 가수와 노래들이 있다. 요즘은 유튜브에서 그런 노래들을 쉽게 찾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노래들을 잘 듣지 않는다. 옛 가수들을 보고 배웠으나 아무래도 무언가 다를 수밖에 없는, 발달된 음향 기술로 녹음한 젊은 가수들의 노래를 듣는다.
오히려 옛날 노래를 원래 모습 그대로 즐기고자 하는 것은 일부 젊은 사람들이다. 유튜브나 음원사이트에서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것이 보편화된 시대에 어떤 이들은 굳이 LP를 사고 플레이어를 사서 수십년 전에 발매된 옛날 노래를 듣는다. 음질과 편의성을 생각하면 불합리한 방식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문화는 종종 그렇게 불합리한 그림을 그린다.
레트로와 뉴트로의 의미를 대입해보면, 어머니는 뉴트로를 즐긴다고 할 수도 있겠다. 젊은 사람이 LP를 듣는 것은 레트로일까. 추억과 그리움의 환기를 기준으로 한다면 레트로가 아니다. 그 시절을 살지 않았으니 추억도 그리움도 있을 리 없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에게 옛것은 그들의 인생에 지금껏 없었던 새것이다. 그것은 레트로이되 새것으로 받아들이고 즐긴다는 의미에서 뉴트로이거나 아예 뉴이다.
뉴트로의 의미가 무엇이든, 사람들은 왜 옛것을 지금 다시 들여다볼까. 골동품(骨董品)이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오래된 진귀한 물건 혹은 시대에 뒤떨어진 쓸모없고 낡은 물건이다. 오래된 것의 오래되었다는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것은 오래되어 진귀하고 어떤 것은 오래되어 쓸모없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하루하루 새로운 날들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사람들, 그들의 마음이 부여한 의미이다.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거기서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옛것은 진귀한 것이 된다. 먼지를 털어내고 지금 시대의 새것이 된다. 맹자는 지금의 음악이 옛 음악과 같다고 하였다. 좋은 음악이 가진 가치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람들의 성품도 옛날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글쓴이 : 최두헌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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