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근심을 잊는 방법

백광욱 2024. 7. 19. 00:04

 

근심을 잊는 방법

 

숭문동 골짝 어귀에는 이끼가 자라고     
긴긴 여름날 사립문은 한두 집만 열렸어라     
푸른 풀 돋아나는 연못엔 산새가 내려앉고     
흰 구름 낀 울타리엔 시골 중이 찾아오누나     
항상 편히 앉아서 또 종일을 보내다가     
문득 한가한 정취 일면 술잔을 든다오     
근래 인사가 적어서 점점 기쁘기만 하니     
헛된 명성을 세상에서 또 누가 시기하랴

 

崇文谷口長莓苔        숭문곡구장매태
長夏柴門一兩開        장하시문일양개
靑草池塘山鳥下        청초지당산조하
白雲籬落野僧來        백운이락야승래
尋常宴坐還終日        심상연좌환종일
忽漫幽情自引杯        홀만유정자인배
漸喜年來人事少        점희연래인사소
浮名世上更誰猜        부명세상갱수시

 - 신광수(申光洙, 1712~1775) 『석북집(石北集)』 권4 「편히 앉아[宴坐]」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철 시골 마을은 무더워서 왕래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사립문도 한두 집 열렸을 뿐 대부분 닫혀 있다. 간혹 산새나 야승(野僧)이 먹을 것을 찾아 마을로 내려올 뿐이다. 시인은 이때 시골집 서재에 앉아 책을 읽거나 밖의 풍경을 구경하면서 날을 보내고, 술 생각이 나면 술잔을 든다. 게다가 인사도 적고 비방하는 사람도 없다. 도시의 여름과는 다르게 한가롭고 여유로운 생활이다. 하지만 8구의 ‘부명(浮名)’이 반전을 가져온다. 바로 명성만 있고 실질이 없는 헛된 명예로 인해 곤궁한 삶이 뒤따른 것이다.
 
  이 시의 작자 신광수(申光洙)는 지금의 충남 서천군 화양면 활동리인 숭문동(崇文洞)에서 자랐다. 35세 때인 1746년(영조22) 가을 한성시(漢城試)에 응시하여 「관산융마(關山戎馬)」로 2등을 차지하였는데, 이 시는 당시 가사(歌詞)로 불려질 정도로 매우 유명하였고, 심지어 지금도 서도소리로 불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유명세와 다르게 무척이나 가난하여 벗인 목만중(睦萬中)에게 20전(錢)을 얻어 쌀을 사고 정범조(丁範祖)에게 30전을 얻어 생활비를 마련할 정도로 궁핍하였다. 게다가 벼슬도 인연이 없어, 50세 되던 1761년에야 처음으로 말단 관직인 영릉 참봉(寧陵參奉)에 제수되었다.
 
  그는 시인으로서 당대 명성을 떨쳤지만 가난하고 벼슬도 한미하여 불우한 삶을 보냈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명성과 실질이 괴리된 삶은 그를 매우 힘들게 하였다. 그가 자신의 삶을 술회한 글에 “그다지 신명(神明)에게 죄를 얻은 것은 없지만, 헛된 명성이 빌미가 되어 운명이 기구하게 되었다.[無甚得罪於神明者, 而只坐浮名爲祟, 仇命相謀.]”라고 할 정도였다.
 
  잘났건 못났건 근심 걱정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인은 한가한 생활을 통해 궁핍에 대한 근심을 잊어보려고 한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힐링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 이런 방법도 있다. 공자(孔子)는 “사람이 멀리 내다보지 않으면 가까운 근심이 닥친다.[人無遠慮, 必有近憂.]”라고 하였다. 십 리, 백 리를 내다보고 걸으면 눈앞의 돌멩이쯤이야 아무 문제가 되지 않듯, 눈앞의 근심 걱정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삶의 방향을 크게 설정하여 나아간다면 사소한 근심 걱정은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글쓴이   :  최이호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