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름을 해치는 자
바름을 해치는 자는 반드시 다른 이를 사악(邪惡)한 자로 몰고 자신은 바르다고 자처하며,
나아가 동류를 불러 모아서 숨을 모아 산을 날리고 모기 소리를 모아 우레 소리를 낸다.
害正之人, 必驅人於邪, 自處以正, 至於招朋萃類, 衆呴飄山, 聚蟁成雷.
해정지인, 필구인어사, 자처이정, 지어초붕췌류, 중구표산, 취문성뢰.
- 최한기(崔漢綺, 1803-1877), 『인정(人政)』권2 「측인문(測人門)2」
< 해설 >
이 글은 조선 말기의 문인인 혜강(惠岡) 최한기의 『인정』 「측인문」에 실린 문장이다. 『인정』은 일종의 정치 에세이로, 정치에 있어서 사람을 감별하고 선발하는 원칙을 제시한 책이다. 당대의 위정자(爲政者)를 염두에 두고 기술된 것이기는 하지만, 인간과 인간 사회의 본질에 관한 통찰이 두루 담겨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에 비추어 볼만 한 점이 적지 않다.
이 문장도 그렇다. 오늘날의 숱한 비리와 범죄, 차별과 혐오, 재난과 참사 앞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타인을 악인(惡人)으로 몰아 희생양을 삼고, 자신은 바르다고 자처함으로서 그 책임을 회피하며, 나아가 합심해서 그것이 공론(公論)인 양 여론을 조성한다. 그러나 비리는 과연 권력자의 전유물인가. 범죄는 과연 범죄자의 일탈에서만 기인하는가. 성별과 인종과 빈부와 지역과 성적취향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서 어느 누가 감히 자유로운가. 재난과 참사의 책임은 과연 그것을 촉발한 당사자에게만 있는가.
우리 사회에 발생하는 비리와 범죄, 차별과 혐오, 재난과 참사는 어느 하나도 예외(例外)적이지 않다. 그것들은 모두 이미 만연하고 팽배한 것이 우연한 기회에 드러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것은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를 내린 관행으로부터, 어떤 것은 약자를 궁지로 몰아 영원히 도태시키는 비정한 풍토로부터, 어떤 것은 소수자에 대한 아무 근거 없는 편견으로부터, 어떤 것은 그저 편의와 이익을 좇아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는 안일(安逸)함으로부터 기인한다. 매일 일간지에 대서특필되는 사건과 사고는, 언제 어디에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모두 함께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불편한 진실과 당연한 책임을 마주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그것을 악인의 예외적인 것으로 몰아넣고, 심지어는 작은 잘못을 크게 부풀려 억지로 악인을 만들어내고는, 그에게 온 사회가 함께 져야 할 막중한 책임을 오롯이 덧씌우기도 한다. 그를 통해 자신은 당면한 책임을 회피하고, 그 잘못된 관행과, 풍토와, 편견과, 안일함에서 편의를 취하고 이익을 얻는다. 자신에게는 아무 잘못도 책임도 없는 양, 그만 제거하면 온 세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정의로울 양 합심해서 악다구니를 쓴다. 그렇다면 과연 악인은 누구인가.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드러난 사건을 기회로 자신이 악인이 아닌가를 뼈저리게 반성하고, 우리 사회가 악한 사회가 아닌가를 통렬하게 물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평온한 마음에 풍파를 일으키고 안온(安穩)한 삶을 위태롭게 하더라도, 이러한 자성(自省)이야말로 진정 바른 사람이 되고 바른 사회를 만드는 방법이다. 그렇지 않고 다른 이를 사악한 자로 몰고 자신은 바르다고 자처하며, 동류를 불러 모아서 숨을 모아 산을 날리고 모기 소리를 모아 우레 소리를 낸다면, 그가 바로 ‘바름을 해치는 자’이다.
글쓴이 : 김지웅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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