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구리 음사사건과 가짜뉴스
< 번역문 >
근래 평구(平丘)에서 귀신에게 제사를 지낸 일로 구설(口舌)이 분분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일이야 탐구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저 ‘공자께서는 괴(怪)ㆍ력(力)ㆍ난(亂)ㆍ신(神)을 말하지 않았다.’라는 『논어』의 한 구절만 상기하면 됩니다. 말해서도 안 되거늘 더구나 몸소 강신주를 따르고 절을 하겠습니까. 귀신이 자칭하는 성명이 『고려사 열전』에 보이지 않고, 벼슬이름이 직관지(職官志)에 없으며 사적이 야사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또 부러진 비석이나 깨어진 묘지명 조각도 본 지역에서 나온 것이 없으니, 관직을 거론하거나 성씨를 쓴다는 것이 또한 매우 허황한 일입니다. (중략) 이미 단(壇)을 쌓고 제사를 지냈다면 가만히 숨죽이고 있어야 마땅하거늘 줄곧 끊임없이 편지를 보내어 상의하고 있으니, 이는 사람과 귀신이 뒤섞이는 것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사람과 귀신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 바로 지금 해야 할 급무입니다. 귀신이나 도깨비와 얽힌 끝에는 반드시 재앙이 있게 마련입니다. 만약 귀신을 진정시킬 힘이 없다면 피하는 것이 최선의 방도입니다. 바라건대, 모쪼록 힘써 권하여 하루속히 깨끗이 벗어날 수 있게 해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원문 >
近以平丘祭鬼事,口舌不勝紛紜。此事不必用力探究,但誦《論語》一句曰:“子不語怪力亂神。” 語猶不可,矧身爲之祼將興俯哉?其姓名三字,不見於《麗史ㆍ列傳》,其職名不見於〈職官志〉,其事迹不見於野史。又無斷碑破誌之掘出於本地者,則擧其官號,題其姓氏,亦太虛廓矣。(중략) 旣壇旣祭,當帖然收息,而書牘問答,一向不絶,此不幾於人神雜糅乎?絶地天通,政爲今日之急務也。鬼魅之末,必有菑孼,如無坐鎭之力,莫如謹避之爲得。幸須力勸,使之不日淸脫如何?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정본(定本)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권20, 「여김덕수(與金德叟)」
< 해설 >
인간은 누구나 인지와 감정에 편향성을 가지고 있다. 천하 부귀도 사양할 수 있고, 서슬 푸른 폭압에도 맞설 수 있지만 중용(中庸)은 할 수 없다는 공자의 말은 인간의 편향성에 대한 성찰을 환기시킨 경구(驚句)이다.
인지와 감정의 편향성은 상황 해석과 기억의 왜곡으로 귀착된다. 그런데 인간은 정작 스스로 편향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과 기억을 참으로 여긴다. 때문에 편향성이 집단적으로 작동하면 그 어떤 거짓과 조작도 정당화된다. 역성혁명의 승자가 역사를 조작하고 신념에 찬 학자들이 경전을 위조하는 것도 요즘 사회 일반에 자주 회자되는 가짜뉴스 생성의 메커니즘과 다르지 않다.
몇 해 전 옥스포드사전은 세계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선정한 적이 있거니와 가짜뉴스는 조선시대에도 흔했다. 그중 하나. 1821년 여름 무렵, 양평 평구리에 귀신 소동이 벌어졌다. 백주대낮에 고려 말의 청로장군(淸虜將軍) 정득양(鄭得揚)의 혼령이 김기서(金基敍)의 집안에 나타나 제사를 지내 달라 협박하였다는 것이다.
김기서는 평구리에 세거하던 잠곡(潛谷) 김육(金堉)의 후손이다. 벽파로서 심환지 일파로 몰려 곤혹을 치렀고, 1814년에는 순조를 해치려 하였다는 탄핵을 받고 추자도로 유배되기도 했다. 평구리 바로 이웃 미음나루에는 대산 김매순이 정계에서 축출당해 은거하고 있었고, 반식경을 거슬러 올라가 마재에는 1818년 9월에 해배되어 돌아온 다산 정약용이 살고 있었다.
주류세력으로부터 미움과 견제를 받던 일부 지식인들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당색을 뛰어넘어 교유하고 있었다. 이중 다산과 대산은 특히 가까워 당시 다산이 힘을 쏟던 『매씨서평(梅氏書評)』을 가지고 둘은 진지하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고문상서에 대해 문헌 자료 고증을 바탕으로 한 학술성 짙은 토론이었다. 이 와중에 귀신 소동이 벌어졌다.
괴력난신을 멀리해야 하는 유자(儒者)들이 정체불명의 귀신에게 부당한 제사-음사(淫祀)를 지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서울에 퍼졌다. 다산은 화급히 두 벗에게 편지를 띄웠다. 김기서에게는 즉각 제사를 중지하라 일렀고, 대산에게는 김기서의 음사를 만류하라 당부하였다. 위의 편지는 바로 이때 대산에게 보낸 편지이다.
다산의 우려는 적중하여 끝내 사달이 났다. 김기서가 정배되었다. 불똥이 대산에게 튀는가 싶더니 세간의 입방아는 다산까지 이 사건에 얽으려 들었다. “제문은 승지 정약용이 짓는 게 좋을 듯하지만 직각 김매순이 짓는 것만은 못하다.”라는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청로괴적변증설(淸虜怪蹟辨證說)」과 “대산이 제문을 짓고 다산이 비문을 지었다.”라는 송근수의 『용호한록(龍湖閒錄)』의 기록이 당시 부풀려지고 재생산되어 전파된 가짜뉴스의 내용을 증언한다.
다산이 대산에게 보낸 편지에는 고루한 훈계나 계산된 수사가 없다. 벗에 대한 애정 어린 근심이 학자다운 절제된 필치 속에 잘 갈무려져 있다. 청로장군 정득양이라는 귀신의 정체에 대해서도 문헌고증적으로 접하는 다산의 태도가 도리어 딱할 정도로 순진하게 느껴진다. 소동의 와중에 다산과 대산은 귀신이 자칭하는 인물을 탐구했던 모양인데, 이 편지를 쓸 때 다산은 자신이 가짜뉴스의 희생양이 될지 짐작이나 했을까.
편향성은 집단의 권력이나 이익과 관련될 때 증폭된다. 다만 정의나 보편성의 외피를 두르고 있기 때문에 집단 내에 있는 사람은 자신들의 편향성을 곧잘 망각한다. 집단 최면이다. 최면은 편향성을 더욱 가파르게 만든다. 편향성이 가팔라질수록 죄의식은 사라지고 맹목적 폭력은 커진다. 진실은 간데없고 처참한 상처만 남긴다.
다산이나 대산과 같은 인물들을 불안해하는 주류세력의 인식편향은 순수한 학술적 교류도 불온하게 해석하도록 만들었다. 이윽고 음지에 모여 삿된 귀신이나 섬기는 따위 시시한 놈들이라 소문을 흘리고 딱지를 씌웠다. 짐작컨대 망신주고 조롱하는 동안 주류세력은 자신들의 행위가 나라를 위한 길이요 정의라고 확신하였을 것이다.
어이없게도 가짜뉴스를 통해 주류세력이 얻은 건 활발하던 지식인들 간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학술모임을 해체한 것이 고작이다. 정의의 명분을 내걸었다 할지라도 편향성의 맹목으로 자기 성찰을 잃고 저지른 짓은 결국 조선 지성계를 파편화시키고 숨통을 조른 폭력일 뿐이다. 생각해볼 일이다. 이런 끔직한 오류를 저지를 위험에서 과연 어느 누가 자유로울 수 있는가. 두렵다.
글쓴이 : 이규필
경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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