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화 : 접시꽃과 해바라기
규화에게 물었네
그렇게 후미진 곳에 뿌리박고서
좋은 때마저 이미 저물었으니
어느 날에나 해를 보겠나
규화가 답하네
이르고 늦음은 각기 때가 있다오
팔십에 목야에서 날리던 이가
누구인지 그대는 알 것이오
問葵花 문규화
托根何僻荒 탁근하벽황
年光已遲暮 연광이지모
何日是傾陽 하일시경양
葵花答 규화답
早晩各有時 조만각유시
八十揚牧野 팔십양목야
君知是爲誰 군지시위수
- 정온 (鄭蘊, 1569~1641), 『동계속집(桐溪續集)』 권1 「규화에게 묻다(問葵花)」
< 해설 >
정온은 42세라는 늦은 나이로 문과 급제하였으나 제대로 벼슬도 못하고 광해군 때에 10여 년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였다. 이 시를 지은 연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후미진 곳에 피어 햇빛도 제대로 못 보는 규화에 자신의 처지를 이입한 것으로 보아 불우했던 시절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또 80이 넘어 문왕을 만나 목야에서 전군을 호령하며 은나라를 무찔렀던 강태공(姜太公)의 고사를 인용하여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역시 규화의 입을 빌려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규화는 무슨 꽃을 말하는 것일까? 보통 규화는 향일화(向日花)라고 하는데 해를 향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 예로부터 충심을 상징하는 용어로 쓰였다. 그래서 해바라기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여기서의 해바라기는 요즘 우리가 흔히 만나는 노랗고 키 큰 씨 많은 해바라기가 아니다. 해바라기는 북미가 원산지로 1700년대 이후에야 중국에 들어오고 우리나라에는 개화기 이후에 수입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규화는 접시꽃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접시꽃은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자생하던 꽃으로 시골집 구석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매일 새로운 꽃송이가 나와서 일일화(一日花)라 하고, 또 촉규화(蜀葵花)란 한자음이 와전되어 채키화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아욱과에 속하는 꽃이다. 최치원의 유명한 「촉규화」란 시에 나오는 꽃이 이 접시꽃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니, 자생의 역사도 유구한 편이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중에 「규(葵)」라는 글이 있다. 그 글에서는 『시경』, 『제민요술』 등에 나오는 먹을 수 있는 규는 아욱을 말한 것이고, 붉거나 흰 꽃이 피는 것은 촉규(蜀葵)이며, 해를 향한다는 꽃은 황규(黃葵) 즉 해바라기라고 분류하였다. 그러면서 “내가 아이 적에 황규, 곧 속명(俗名) ‘해바라기’를 화분에 심었더니 줄기는 삼 같고 잎은 패모(貝母) 같았다. 줄기 끝에 누런 꽃이 피었는데 꽃 심지가 조밥 같아 그다지 곱지는 않았다. 해를 따라 동서로 움직였는데 목이 굽어서 담뱃대 같았고 한낮에는 하늘을 향하였다.” 라고 하여 한글로 해바라기란 명칭을 썼다. 그러나 이덕무가 심었던 황규는 오늘날의 해바라기가 아니라 닥풀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잎모양이 패모 같다는 표현이 그렇고 무엇보다 해바라기꽃은 이름과 달리 향일성을 띠지 않는다.
정리해보자면 규화는 아욱과의 초본식물인 접시꽃인데 일일화, 촉규화 등으로 불렸다. 그 중 황규(황촉규)는 닥풀로 역시 아욱과 식물이지만 무궁화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그 뿌리가 종이를 만들 때 접착료로 쓰여서 닥풀이라고 한다. 그 밖에 규곽(葵藿)은 아욱과 콩잎을 말하는 것으로 주로 ‘보잘것없는 충심’이나 ‘하찮은 정성’을 표현하는 겸사로 쓰였다. 이들은 모두 오늘날 해바라기는 아니다. 위 시에 나오는 규화도 후미진 곳에 피었다는 것으로 보아 접시꽃을 말하는 듯하다.
옛날에 규화를 해바라기라고 부른 이유는 향일성(向日性)이란 속성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해바라기라는 고유명사의 수입품종 꽃이 명칭의 대표성을 띠고 있어 규화를 해바라기라고 부를 경우 오해의 여지가 있게 된다. 꽃이름 풀이름 하나를 번역할 때도 주의를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글쓴이김성애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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